[이정모의 과학] 새벽이면 저절로 눈이 떠지시나요?

2018.12.09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아빠 새벽 여섯 시에 깨워줘요. 꼭.”

거의 10년 전의 일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딸은 며칠 동안이나 이렇게 졸랐습니다. 곧 열릴 학교 운동회 때 새천년체조를 부모님들 앞에서 한답니다. 그래서 텔레비전 방송에 맞춰서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저는 새벽마다 아이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여섯 시야. 일어나.” 물론 딸아이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저도 깨울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새천년체조보다는 잠이 더 중요한 것 같았거든요.

오늘 밤 안에 리포트를 작성하지 못하면 나쁜 성적을 받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잠을 잡니다. 브라질월드컵 축구 중계방송을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소파에 쓰러져 잠에 빠져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도대체 왜 잠을 자야 하는 걸까요?

잠에 대한 과학 연구는 1953년에야 제대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잠이 꿈을 꾸는 렘수면과 네 단계의 비(非)렘수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게 서서히 밝혀지죠. 사람만 꿈을 꾸는 게 아닙니다.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걔네들도 잠을 자면서 땅을 파헤치는 동작을 하잖아요? 꿈을 꾸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꿈을 꾸기 위해서 잠을 자는 걸까요? 설마요!

잠을 자는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이라는 설입니다. 2006년 3월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반드시 잠이 들지 않더라도 누워서 편히 눈만 감고 쉬기만 해도 잠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이때 잠잘 때처럼 외부로부터 정보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불을 끄고 어떤 음악이나 라디오 뉴스 같은 것도 들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이때 뇌가 할 일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양쪽 귀 뒤쪽 깊숙한 곳에 ‘해마’라는 뇌 부위가 있습니다. 정말 해마처럼 생겼어요. 기억을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곳입니다. 해마는 용량이 작습니다. 그래서 24시간 분량만 저장할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앞쪽의 기억에 새로운 기억을 덮어쓰기 합니다. 마치 자동차 블랙박스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십 년 전의 일도 생생하게 기억하잖아요. 해마가 온갖 기억을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으로 분류해서 필요한 기억만 대뇌신피질로 보내기 때문입니다. 기억을 분류하는 데 6시간이 걸립니다. 이 말은 우리가 잠을 여섯 시간은 자야 한다는 뜻입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해마는 기억을 분류 불능으로 처리해서 삭제해버립니다. “잠은 매일 최소한 여섯 시간씩 충분히 잤습니다”라는 수능 만점자 인터뷰가 거짓말이 아닙니다.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라는 고등학교 어느 학급의 급훈은 반만 맞습니다.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안 자면 졸린다’가 맞는 말이죠.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인간처럼 수명이 길어서 기억 관리가 필요한 동물도 있는가 하면 수명이 단 몇 시간에 불과한 동물이 있는데 모두 잠을 자거든요. 하루살이 수컷이 그렇습니다. 그들의 수명은 기껏해야 15시간입니다. 짝짓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죠. 오죽하면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입을 퇴화시켰겠습니까? 먹지도 않고 암컷만 찾아다니는 녀석들도 잠을 잡니다. 이것은 잠이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이것을 잠을 자는 이유에 대한 두 번째 이론이 설명합니다. 잠은 뇌에 쌓인 노폐물을 씻어내기 위해서 필수적이라는 것이죠. 2013년 10월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잠을 자지 못하면 뇌에 노폐물이 쌓여서 탈이 난다고 합니다. 여기서 노폐물은 온갖 잡스러운 기억에 대한 은유가 아닙니다. 진짜로 쓰레기가 쌓이는 것입니다. 바로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입니다.

살수차가 물을 뿌려서 도로를 청소하는 것처럼 뇌는 뇌척수액으로 아밀로이드 베타를 씻어냅니다. 뇌척수액이 흐르기 위해서는 신경세포 사이의 틈새가 넓어야 합니다. 그런데 뇌가 활동할 때는 틈새가 좁아집니다. 뇌척수액이 깊이 침투할 수 없지요. 잠을 자면 틈새가 넓어져서 뇌척수액이 구석구석 아밀로이드 베타를 씻어낼 수 있습니다.

잠을 자야 하는 세 번째 이론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적응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뇌는 무려 1.4kg이나 됩니다. 500CC 맥주잔 세 개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정말 크지요. 하지만 우리 전체 체중의 2%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에너지는 20%나 사용합니다. 에너지 효율이 아주 낮은 기관입니다. 그래서 활동하지 않을 때는 꺼두는 게 좋습니다.

잠은 우리 노력으로 이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잠을 참으려고 해도 뇌는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으면 스위치를 스스로 꺼버리거든요. 아무리 차가 쌩쌩 달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뇌는 스위치를 끕니다. 졸음운전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결과는 뻔합니다. 그 누구도 잠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잠을 자는 시간은 왜 서로 다를까요? 모시고 사는 장인어른은 여덟 시 뉴스만 끝나면 주무십니다. 그리고 새벽 다섯 시도 안 돼서 텔레비전을 켜시죠. 10년 전에 새벽 여섯 시에 깨워달라고 보채던 딸은 어제도 새벽 두 시가 훌쩍 지난 다음에야 잠이 들었을 겁니다. 우리 식구도 수면 패턴이 서로 다릅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잠을 자야 기억도 분류하고 쓰레기도 청소하고 에너지도 절약합니다. 캄캄한 밤중이 잠자기 가장 좋은 시간이죠.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캄캄하다고 모두 뇌를 꺼두면 맹수의 공격에서 자신을 지킬 수가 없잖아요. 번갈아가면서 보초를 서야 합니다. 2017년 7월 <영국왕립학회보 B>에는 아프리카 원시 부족인 하드자족의 수면 행태를 분석한 결과가 실렸습니다. 50~60대는 20~30대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연령대마다 수면 시간이 다르다보니 항상 전체 구성원 가운데 3분의 1은 깨어 있거나 선잠을 자게 됩니다. 연구팀은 잠을 자면서도 맹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해결법으로 노인이 될수록 새벽잠이 없어지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노인들이 근면 정신이 투철해서 일찍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이 게을러서 늦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그저 가족을 지키기 위한 정상적인 활동일 뿐입니다. 새벽이면 저절로 눈이 떠지시나요? 나이가 드신 겁니다.

 

이정모

필자 이정모는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생화학을 전공하고 대학 교수를 거쳐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지냈다. <250만분의 1>,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내 방에서 콩나물 농사짓기> 등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과학도서와 에세이 등 60여 권의 저서를 냈고 인기 강연자이자 칼럼니스트로도 맹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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