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욕구로 이뤄진 동물이다. 배고프면 먹고 싶고, 좋은 걸 보면 갖고 싶다. 이런 욕구 때문에 자꾸 뭔가가 필요하다. 물론 꼭 필요한 게 있다면 당연히 사야 한다. 내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 중에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언젠가 쓰레기가 된다. 물건으로 제대로 쓰이지도 못했는데 환경에도 해를 끼친다.
매거진 /ssssl(쓸)>배민지 편집장은 물건이 우리 손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부터 낭비를 줄이는 게 제로웨이스트라고 말한다. 부정기물로 시작한 <쓸>은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로 물질적 소비를 줄이고(Small), 느리지만(Slow)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Social life)를 생각해보자는 뜻을 잡지 이름에 담았다. 현재 2호까지 출간한 <쓸>은 11월이면 5개월 만에 3호가 발간된다.
▶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전하는 매거진 의 배민지 편집장 ⓒC영상미디어
“업사이클협회에서 기획과 교육을 진행하는 일을 했어요. 업사이클에 관심이 생긴 것도 쓰레기가 너무 많으니까 이걸 좀 줄여보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업사이클로는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겠더라고요. 그때 제로웨이스트를 알게 됐죠. 제로웨이스트는 중요한 문제인데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부터 한번 시작해보자 해서 제로웨이스트 운동을 하게 됐어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전파하고 다니는 배 편집장의 일상을 살펴봤다. 그는 휴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휴지가 필요한 모든 순간에는 손수건이 등장한다.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하면서 손수건은 꽤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휴지를 대신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건을 포장하고 음식을 담는 데도 사용한다. 린스를 안 쓴 지 꽤 됐다. 샴푸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서 파는 일반 샴푸 말고 비누처럼 생긴 샴푸바를 사용한다. 화장도 거의 하지 않는다. 어쩌다 립스틱이나 한번 바를 뿐이다. 화장품을 담는 용기가 쓰레기로 버려질 것을 생각하면 안 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세제도 베이킹소다와 밀가루로 대체했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었다. 일반 세제와 마찬가지로 베이킹소다와 밀가루도 포장 상태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사무실 생활은 집보다 더 어렵다. 음식은 식당에 가서 먹어서 쓰레기를 배출할 일이 거의 없지만 문제는 종이였다. 마감이 코앞에 닥치면 배출되는 종이 양이 어마어마하다. 배 편집장은 사무실에서 나오는 종이를 줄일 방법을 찾고 있다. 그가 고민하는 문제는 우리가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는 일회용품에 노출된 사람이 실천하기에는 분명 익숙지 않은 일이다.
느리지만 지속가능한 삶으로 가는 길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알맹@망원시장’ 프로젝트, 일명 알맹이다. 알맹은 전통시장에서 흔히 사용하는 플라스틱 비닐을 줄이고 소비자가 쉽고 편하게 장바구니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든 프로젝트다. 어떤 일이든 시작이 그러하듯 알맹의 시작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 시장 상인에게 먼저 알리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상인들은 비닐을 많이 안 써도 되니까 장바구니를 사용하는 걸 좋아할 거 같잖아요. 그런데 막상 부딪쳐보니 예상과 너무 달랐어요. 당근이나 파처럼 흙이 묻은 채소를 사러 가면 에코백에 그냥 담아간다고 해도 흙 묻어서 안 된다고 굳이 비닐봉지에 넣어서 건네요. 심지어 왜 그러냐고 뜯어 말리는 분들도 있었어요.”
달라지지 않을 것 같던 시장 분위기가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최근 쓰레기 대란을 겪으면서 일회용품을 줄여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덕분이다. 요즘은 시장에 가도 “에코백에 바로 담아주세요” 하는 소리를 어색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고.
▶ 서울 마포구에 있는 망원시장에서 ‘알맹@망원시장’ 서포터들이 장바구니를 이용해 물건을 사고 있다. ⓒ조선DB
이런 변화는 망원시장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배 편집장 주위에 쓰레기 문제에 관심 없던 이들도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었다. 심지어 배달음식을 시키면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데 배달시켜도 되느냐고 지적하는 사람도 생겼다. 물론 텀블러를 산 사람들 중에는 텀블러를 놀리는 사람도 있고 배달음식을 시키지 않는 게 좋은 걸 알면서도 전화기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경각심이 생긴 사람이 많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라 반갑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쓰레기를 줄이는 생활이 일상이 되기 위한 인프라가 국내에는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해외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제도와 문화적 기반이 마련됐다. 영국은 스타벅스에서 플라스틱 컵을 다시 가져오면 컵 값을 돌려주고, 미국은 호텔마다 일회용 패키지를 쓰지 않고 통에 담아 쓰는 디스펜서가 구비된 것처럼 말이다. 배 편집장은 몇 달 전 환경부에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 시스템을 갖췄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으니 하루빨리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생활에서 제도까지 쓰레기 줄이는 법만 내내 고민하는 그에게 제로웨이스트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팁을 물었다.
“거부할 줄 알아야 해요. 필요하지 않은 것은 단호하게 거절하는 용기가 중요하더라고요. 이거 하나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받다 보면 걷잡을 수 없이 쓰레기가 늘어나요. 플라스틱 비닐부터 하나씩 거절하다 보면 나중에는 좀 더 수월해지더라고요. 그리고 불편함도 감수해야죠. 텀블러를 챙기고 손수건을 들고 다니는 게 귀찮을 수 있어요. 하지만 조금만 불편함을 감수하면 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잖아요. 식상한 말이지만 나 하나쯤이 아니라 나부터 시작하자라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요즘은 텀블러든 빨대든 다양한 제품이 나와 있으니까 가볍게 실험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