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출판협회(International Publishers Association)가 공식 발표한 2016년도 세계 출판산업 통계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의 선두국가인 독일의 출판시장은 매출액 57억 달러(약 6조 5000억 원)로 세계 3위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2018년 출판유통 해외사례 현장조사 사업’을 위한 독일 현장조사단(5명으로 구성, 이하 조사단)은10월 7일부터 15일까지 7박 9일간의 일정으로 독일로 출국했다. 독일출판서점협회 회장과 프랑크푸르트도서전유한회사 사장의 면담 및 출판 관련 단체와 기업 탐방 등을 통해 세계적인 출판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우리나라의 출판산업 유통구조 개선 방안 등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 미디어캠퍼스 교육시설 ⓒ안병윤
조사단의 최대 성과는 독일 출판산업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미디어 캠퍼스’의 현주소와 그 역할에 대해 자세하게 파악하고 알게 됐다는 것이다. 독일의 출판산업은 출판사와 유통사 그리고 서점 간의 통합된 조직인 독일출판서점협회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출판산업의 각 부분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움직인다. 독일출판서점협회는 산하에 프랑크푸르트도서전유한회사와 마케팅 전문회사인 엠파우베(MVB) 외에, 미디어캠퍼스를 두고 있는데 이 미디어캠퍼스는 일종의 직업학교로 출판사나 서점에서 현재 근무하고 있거나 향후 취업을 원하는 청소년을 출판 및 출판유통업종의 전문 인력으로 육성하는 곳이다.
조사단은 10월 11일 먼저 미디어캠퍼스의 학교 시설을 둘러본 뒤 다음 날 오전에는 프랑크푸르트도서전 행사장 내 독일출판서점협회 부스에서 미디어캠퍼스의 각종 교육 프로그램과 학교 운영 현황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동부에 위치한 미디어캠퍼스는 1만 3000㎡ 부지에 강의실, 숙박시설, 식당, 카페, 학생활동실 등 다양한 용도의 시설물을 갖추고 있는데, 우리 조사단이 방문할 당시 강의실 신축 건물을 공사 중이었다. 이 학교는 1946년에 쾰른에서 처음 개교했고 당시 교명은 ‘Buchh·ndlerschule(서적상학교)’였으며 1962년에 프랑크푸르트로 이전한 뒤 2009년부터 ‘미디어캠퍼스 프랑크푸르트’, 간단히 줄여서 ‘미디어캠퍼스’라고 부르고 있다. 학교 운영 예산은 학생들이 내는 학비와 주정부 보조금으로 이루어진다. 학교 시설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모델 서점’으로, 진짜 서점처럼 꾸며놓고 학생들이 도서 진열과 매장 인테리어 및 고객 응대 등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창의적으로 직접 해보는 체험 교육의 공간이다.
미디어캠퍼스의 교육기간은 실무교육을 포함해 총 2.5년에서 3년 사이인데 우리나라의 인문계 고교에 해당하는 독일의 김나지움 출신 학생들은 기 수료한 교육 내용을 공인받아 교육기간이 2.5년으로 가장 짧다. 학생들은 독일 정부가 주관하는 IHK시험(유통산업 세일즈맨 자격증시험)을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으며 졸업생들이 직장에서 승진 등을 위해 학사 자격증을 원하면 이곳에서 추후 관련 교육과정을 거쳐 학사 자격증도 받을 수 있다. 학생들은 졸업하기 전까지 9주로 이루어진 합숙교육을 의무적으로 총 2회 수료해야 하며 각각 숙식비를 포함해 3300유로(약 4백만 원)씩 지불해야 한다. 이 합숙교육 기간 동안 수업은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진행되는데 우리 조사단이 방문할 당시와 같은 프랑크푸르트도서전 행사 기간 중에는 수업이 낮 12시까지만 진행되고 학생들은 점심식사 후 바로 도서전 행사장으로 이동해 자유롭게 참관한다.
미디어캠퍼스의 재학생 주요 교육 내용
미디어캠퍼스의 재학생 수는 약 600명이고 학생들의 결석률 0.02%는 이 학교의 첫 번째 자랑거리다. 두 번째 자랑거리는 출판업종 종사자들을 포함한 다양한 연령층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심화교육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정착이다. 이 ‘심화교육 프로그램’은 창업, 마케팅, 구매, 고객관리 등 출판사나 서점을 창업하고 경영하는 데 꼭 필요한 실용적인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어 그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미디어캠퍼스의 심화교육 담당 교직원인 호프만 씨는 이 ‘심화교육 프로그램’ 건수가 인터넷 강의(1건당 평균 1시간 30분)를 포함해 2009년의 연간 총 25건에서 2018년에는 연간 103건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 인터넷으로 진행되는 각종 ‘심화교육 프로그램’을 수강 중인 일반인이 1000명 정도라고 밝혔다. ‘심화교육 프로그램’ 건수가 이렇게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약 10년 만에 4배 증가했고 앞으로도 계속적인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에 지금 미디어캠퍼스 교내에서는 강의실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독일 뮌헨에는 ‘미디어 아카데미’라는 또 하나의 교육시설이 출판인들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교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시설 규모와 교육 인원 및 프로그램 수준 등 여러 면에서 미디어캠퍼스와 비교할 정도는 못 된다고 한다. 미디어캠퍼스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극 대응하고자 유명한 블로거 운영자 1명을 채용해 SNS 마케팅 업무를 전담시키는 한편 지역서점의 문화 활동과 콘텐츠 개발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독일의 지역서점이 각 지역 독서문화의 허브가 되도록 적극 후원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최근 독일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유명한 성공 스토리가 있다. 그 주인공은 놀랍게도 미디어캠퍼스 교직원 출신인 홀거손 씨다. 그는 미디어캠퍼스에서 교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창업교육을 포함한 각종 심화교육 프로그램을 열심히 공부하다가 마침내 서점 창업을 결심했고 퇴직한 후에는 독일의 소도시 ‘잉겔하임’에서 마치 가정집의 실내처럼 인테리어를 꾸민 지역서점 ‘herr holgersson(홀거손 씨라는 의미)’을 창업했다(누리집 www.herrholgersson.de/). 아이방처럼 꾸민 공간에는 동화책만 배치해 꼬마 손님들을 모여들게 했고 거실에는 소설류를 진열하는 한편 부엌에는 각종 요리책을 전시해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가정집 같은 매장 여기저기에 다양한 문구류를 전시해 판다. 동네 아이들 인원수만큼 선물상자를 만들어놓고 주민들이 책과 문구류를 사서 생일을 맞은 동네 아이의 선물상자에 바로 넣어주도록 유도한 마케팅 전략이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 서점은 이제 ‘잉겔하임’ 지역의 독서와 문화생활의 메카가 되었다.
조사단과 함께 ‘미디어캠퍼스’를 탐방한 (사)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박대춘 회장은 ‘모델 서점’ 등 이 학교의 시설물 이곳저곳을 세심하게 살펴본 후, “미디어캠퍼스는 청년 일자리 창출과 출판업종 종사자들의 심화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외에, 예비창업자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우리가 이 학교를 벤치마킹해 우리나라에서도 서점인들의 심화교육과 서점 예비창업자들의 창업 실무를 적극 지원해줄 수 있는 ‘상설적인 서점 학교 건립 방안’을 모색해보겠다”고 밝혔다.
안병윤│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유통선진화센터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