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웅~ 웅웅~”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기계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11월 19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보문특수칼라’를 찾았을 때의 모습이다.
이날 가장 눈에 띈 것은 큰 소리를 내며 작동하는 인쇄기였다. 길이 17미터, 폭 2미터30센티미터의 커다란 기계는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이 기계는 ‘UV 옵셋 인쇄 기계’로 화장품 포장지 등에 사용되는 특수 용지를 인쇄할 때 사용된다. 가격은 기능에 따라 20억~40억원 대를 훌쩍 넘길 정도로 고가다.
보문특수칼라는 건강식품, 화장품 포장지 등과 같은 특수용지를 인쇄하는 중소기업이다. 보문특수칼라의 고광옥(52) 대표는 20년째 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고 대표는 지난해 27억원에 달하는 UV 옵셋 인쇄 기계를 담보로 기업은행에서 4억7천만원을 대출받았다.
고 대표는 “경기가 어려워 자금을 융통하는 게 쉽지 않은데 고가의 기계를 담보로 해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어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에서 동산담보대출을 받기 전까지 고 대표는 제2금융권에서 기계를 담보로 대출받았다.
“캐피털 회사에서 대출받았을 때 금리가 8퍼센트 대 정도였죠. 금리 외에 이것저것 따지면 10퍼센트 정도였어요. 워낙 금리가 세서 많이 부담스러웠죠.”
하지만 현재 고 대표는 기업은행에서 4퍼센트 대의 금리로 대출을 받고 있다. 고 대표는 “금리가 거의 절반으로 떨어지니 감당해야 할 비용이 줄어들어 마음이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원금 갚는 기간을 연장받게 된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캐피털 회사에서 돈을 빌리면 연장을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처음 계약할 때 정한 기간을 그대로 맞춰야 하죠. 하지만 은행과 거래를 하면 신용도가 있는 경우 2년에서 3년 정도 연장할 수 있어요. 지금처럼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중소기업에는 더더욱 큰 도움이 돼요. 이 제도가 진작에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고 대표가 이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1년 전 시작된 한 제도 덕분이다. 국내 은행들은 2012년 8월부터 ‘동산담보대출 신상품’ 판매를 실시해 왔다. 중소기업들이 보유한 기계·기구, 재고자산, 농축수산물 등 동산을 담보로 대출상품을 새롭게 개발해 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시행 1년간 2,400여 중소기업서 이용
2012년 8월 농협, 수협, 광주은행 등 3개 은행은 유형자산, 재고자산, 농축수산물, 매출채권을 담보로 한 4종의 상품을 출시했다. 이밖에 나머지 은행들은 농축수산물을 제외한 유형자산, 재고자산, 매출채권을 담보로 한 3종의 상품을 출시했다.
2012년 8월 8일 ‘동산담보대출 상품’이 출시된 이후 올해 8월 7일까지 2,457개 업체들이 6,279억원을 대출받았다. 이 중 유형자산은 2,721억원(43.3퍼센트), 재고자산 1,965억원(31.3퍼센트), 매출채권 1,444억원(23퍼센트), 농축수산물은 150억원(2.4퍼센트)에 달했다.
이 제도는 중소기업 중에서도 영세한 제조업체에 대한 자금지원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중소 제조업체들은 부동산 담보가 부족해 은행 대출에서 소외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동산담보대출 상품’이 마련돼 중소 제조업체들이 실질적인 자금지원을 받고 있다.
고 대표는 “중소기업에 가장 큰 어려운 점은 바로 자금력”이라며 “저리 대출을 받아야만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동산담보대출을 활성화하기 위한 인프라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동산의 실질적인 가치를 적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감정평가 인력을 양성하고, 은행권 공동으로 담보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 기업금융개선국 이성재 기업금융개선총괄팀장은 “대출 금액을 큰 폭으로 확대하는 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이 제도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더 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움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혜민 기자 2013.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