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국 각지의 산 북사면 산기슭 숲속 그늘에는 노루귀가 자란다. 봄 일찍 남부지방에서 3~5월에 꽃핀다. 남부지방 남녘 바다 근처로 갈수록 붉은 꽃 색깔을 띤 것들이 많이 핀다. 자주색, 흰색, 붉은색 꽃 모두 노루귀의 같은 종(種)이다. 간혹 꽃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종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 제주 한라산 북사면 숲속 그늘이나 바위틈에는 새끼노루귀가 흰 꽃을 피운다. 이 종은 풀잎에 짙은 색의 얼룩 무늬가 있어 쉽게 구별된다. 꽃은 약간 작지만 식물은 노루귀보다 잎이 더 큰 편인데 이곳에서는 새끼노루귀라 불린다.
울릉도 성인봉 숲속에는 한국 특산식물(토종식물)인 나무와 풀이 많이 자라고 있다. 이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대개 ‘섬’이란 말이 앞에 붙어 구별되도록 했다. 섬초롱꽃, 섬백리향, 섬노루귀 등이 있다. 이 중 섬노루귀가 풀잎이 가장 큰 편으로 꽃이나 풀잎 등 노루귀 중 가장 아름답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른봄 3월이면 이들 섬노루귀들을 화훼농가에서 다량 재배해 시장에 내놓는 인기 품목 중 하나였다.
노루귀는 생명력이 강인해서 농가에서 재배해 시중에 팔아도 그 것을 집 안에 심으면 여러 해 동안 꽃을 피운다. 대개는 예쁜 화분에 심어 겨울에 얼어 죽을까봐 따뜻한 온실이나 실내에 두는데, 이러면 이들은 곧 생명을 잃는다. 야생화들은 혹독한 겨울을 지낼수록 꽃이 더 아름답게 잘 피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야생식물들의 특성 중 하나다. 늘푸른잎의 남쪽 식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눈 속에서 겨울을 나는 것이 좋다.
야생화들, 특히 노루귀의 이름은 꽃 밑에 붙은 꽃싸개잎(포)이 노루귀 모양으로 세모꼴이며 가장자리에 긴 흰 털이 많이 나 노루의 귀와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중 섬노루귀가 더 많이 닮은 편이다.
필자는 1980년대쯤에 섬노루귀를 찾아보려고 울릉도를 여러번 들어간 적이 있다. 하지만 섬 지방은, 더구나 봄철일 경우에는 내가 바라는 시기에 들어갈 수 없었다. 지금이야 쾌속선과 큰 여객선이 수시로 드나들지만, 당시는 어쩌다 서두르면 꽃이 피기 전에 도착하고 어느 때는 꽃이 지고 난 후에나 당도하기 때문에 헛고생만 하고 왔다. 이 작은 야생화 한 송이의 아름다운 사진을 얻으려면 운이 좋아도 1년 만에야 얻을 수 있었다.
3~5월 이른봄 울릉도에 갈 일이 있다면, 산 높은 곳이 아니더라도 낮은 지대 북사면 그늘 속을 눈여겨 살펴보면 섬노루귀를 만날 수 있다.
어느 섬노루귀는 근 십 년이나 걸려서야 꽃과 열매의 모습을 모두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우리 땅에 사는 많은 야생화들 가운데는 자원식물(資源植物)이 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개중에는 이미 원예자원이 되어서 시장에 나오는 종(種)도 있다. 그러나 꽃을 찾아다니다 보면 또 새로운 종을 만날 수 있다. 필자는 40여 년 동안 야생화를 찾아다녔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종을 만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야생화의 종이 풍족한 것은 아니다. 야생화의 종은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 산에 오르는 많은 사람들이 예쁘다고 꽃을 꺾거나 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뿌리째 파내는 일이 있다. 한 번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야생화는 다시는 그 자리에서 만날 수 없다. 우리 꽃 야생화를 사랑한다면 꽃의 아름다움만 보고 식물은 손대지 않는 것이 좋다. 쉬운 말로 깃대종 식물이기 때문에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
글과 사진·김태정(한국야생화연구소장) 201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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