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야구의 시즌이다. 이제 올해 야구장에 갈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들이 초등학생 시절만 해도 함께 자주 야구장을 갔지만, 중학생이 된 뒤로는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아들을 데리고 야구장에 가는 즐거움이 사라져가고 있다. 나 역시도 어린 시절 아빠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야구장을 갔었다. 야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처음 야구장에 갈 때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경기장에 다가갈수록 느끼는 흥분이다. 시간이 흘러 경기를 이해하고 팬이 되어 푹 빠지게 되면 그것을 즐기게 된다.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백화점에 가까이 다가가면 심장이 평소보다 더 빨리 뛰고 기분이 고양된다고 한다. 야구장 가는 과정이 그렇다. 차를 몰고 올림픽대로로 가다가 저 멀리 야구장 건물이 눈에 들어올 때, 주차를 한 뒤 야구장으로 점점 다가갈 때, 입장권을 끊고 드디어 야구장 내부로 진입할 때, 그리고 드디어 관중석으로 향하는 좁은 통로를 지날 때면 흥분이 점점 고조된다. 만약 통로를 지날 때 관중석 쪽에서 함성이라도 들리면 그야말로 아드레날린이 급속도로 분비된다.
▶ 1, 2 야구장의 관람석으로 진입하려면 어둡고 좁은 복도를 지나도록 되어 있다. 스탠드에 들어서야 비로소 푸른 잔디의 야구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화 ‘루키’의 한 장면 3 오늘날의 오픈 콘코스는 좁은 통로를 통해 야구장 관람석으로 들어가는 묘미가 사라진 대신, 화장실을 가거나 식음료 코너에서 음식을 먹으면서도 필드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김신
이런 기분을 만드는 것은 야구장, 아니 모든 건축물이 갖고 있는 은폐와 노출의 묘미에서 온다. 건물의 기본은 일단 담을 쌓아서 그 안쪽을 비와 바람, 추위와 더위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동시에 타인의 시선도 차단한다. 하지만 개인 주택이나 사적인 건물과 달리 스타디움처럼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목적인 건물은 이런 차단의 기능이 조금 다르게 작동한다. 그곳은 건물의 안쪽을 살짝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유발하고 그들을 끌어들이는 장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요즘 메이저리그 야구장의 트렌드는 티켓을 사지 않은 사람들, 야구장 근처를 지나가는 행인에게도 어느 정도 야구장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개방형 야구장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시각적으로는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는 상태에서 청각적인 방법을 통해 드러냈다. 바로 ‘소리’다.
대형 스타디움에서 들려오는 함성 소리만큼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은 없다. 그것은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세이렌의 노래만큼이나 스포츠팬을 강력하게 유혹한다. 볼 수 없고 소리만 들리기 때문에 그곳에 더욱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다. 직접 경험할 수 없고 상상할 수밖에 없을 때 사람은 그것에 대한 궁금증으로 몸이 달아오르기 마련이다. 이런 경험이 있다. 예약해서 야구장을 향해 가는데, 조금 늦어서 경기가 이미 시작되었다. 경기장에 다가가다가 갑자기 함성 소리를 듣는다. 그 순간 내가 왜 늦었는지 자책하면서 가슴이 뛰고 발걸음이 빨라진다. 스타디움 안쪽으로 들어서고 이어 스탠드로 가는 좁은 통로를 지난다. 그곳은 약간 어두워서 터널 같은 느낌을 준다. 저쪽으로 밝은 빛이 보인다. 점점 관중석이 가까워지고 드디어 푸른 잔디의 드넓은 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마치 고속도로의 긴 터널을 통과했을 때 받는 느낌과 비슷해서 나는 그것을 ‘터널 효과’라고 부른다. 내가 말하는 터널 효과는 물론 과학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 감정의 상승 효과를 만들어내려면 우선 은폐와 노출의 줄달음이 있어야 한다. 일단 보여주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의 정보를 조금씩 흘리면서 조바심 나게 해야 한다.
▶ 2001년에 개장한 피츠버그의 새 구장인 PNC 파크는 앨러게니강의 다리에서 보면 관중석이 훤히 보인다. ⓒ김신
미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줄잡아 20여 개의 야구장이 새로 지어졌다. 이들 모든 경기장은 포플러스(Populous)라는 스타디움 전문 건축회사가 디자인했다. 포플러스가 21세기형 야구장을 정의한 셈이다. 그 회사가 정의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개방형’이다. 소리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야구장 내부를 경기장 밖의 사람들에게 살짝 노출하는 것이다. 과거 1960~1970년대에 지어진 많은 야구장들은 외야가 완전히 막혀서 경기장 밖의 사람들에게 전혀 노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21세기형 야구장들은 외야를 시각적으로 개방해 지나가는 사람들이 경기장 안쪽을 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AT&T 파크의 경우는 일부 구역에 한정해서 지나가는 행인이 서서 무료로 경기를 볼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외야를 개방하면 사람들은 경기는 못 보더라도 관중석의 군중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기에 대한 호기심이 유발된다.
또 하나는 콘코스(Concourse) 공간을 개방형으로 만드는 것이다. 콘코스 공간은 관중석 바깥쪽의 식음료 판매점과 화장실 같은 편의 시설이 있는 긴 통로를 말한다. 과거의 구장들은 콘코스와 스탠드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야구장은 콘코스 공간에서도 선수들이 뛰는 필드를 완전히 볼 수 있도록 개방했다. 이것의 장점은 콘코스 공간으로 가더라도 경기 상황을 놓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음식을 먹으면서도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그에 따라 터널 효과의 묘미가 사라졌다. 과거에는 경기장에 들어서더라도 경기장이 막혀 있어서 작은 통로로 들어가야만 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오늘날의 야구장은 경기장에 들어오는 순간 선수들이 움직이는 필드는 물론 관람석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21세기에 신축된 광주챔피언스필드와 대구라이온즈파크도 이런 경향을 따라 디자인되었고, 내년에 개장할 창원마산야구장 역시 오픈 콘코스 야구장이다. 이제 통로를 지날 때의 그 고조되는 흥분의 감정은 추억이 될 듯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숨기기와 드러내기의 적절한 절충을 통해 야구장 내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고 유혹하는 방식은 유지되고 있다. 아니, 개방형으로 더욱 조바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김신은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