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을 선택하는 사람들

유슬기 위클리 공감 기자 2018.10.21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사는 게 이러하지 않을까. 기어도 없는 자전거를 타고 바득바득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그 누구도 내 수고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남들 뒤꽁무니를 좇으며 숨이 턱턱 막히도록 빡세게 올라가 봤자 쓸데없이 에너지만 탕진하고 내 몸만 상하는 것. 차라리 진즉에 내 육체와 자전거의 한계를 깨닫고 일찌감치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을 올랐다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그냥 나답게 올랐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뭐, 중간에라도 깨닫고 자전거에서 내려서 다행이었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결혼 9년 차인 윤동교 작가는 언젠가부터 사는 게 지겹고 인간관계가 피곤했다. 만사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과 권태에 짓눌려 일상을 꾸역꾸역 버티다가, 딱 한 달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러누워 있자고 결심하고 제주도로 떠났다. 그리고 알았다. ‘아, 나는 허송세월이 체질이구나’, 이 깨달음은 그의 책 <딱 한 달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에 담겼다. 책의 첫 파트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번아웃증후군.”

번아웃증후군에 걸린 우리에게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은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극도의 피로, 연료의 소진’을 뜻한다. 독일의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가 제시한 개념이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에서 피로와 무기력,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현상을 뜻한다. ‘연료 부족’이라는 경고등이 켜졌는데도 계속 달리는 바람에 생기는 일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1세기 현대인의 가장 위험한 병으로 ‘번아웃증후군’을 꼽았다. 경제 전문지에서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에서 응답자 중 862명이 ‘번아웃증후군’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질병에 가장 취약한 부류는 ‘근면하고 성실한’ 이들이다. 일을 좋아하고 추진력이 강한 사람들은 쉼의 필요성을 잊는다.

자신의 열정이 체력과 건강, 때로는 가정까지도 불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과부하가 걸린 업무량을 줄이고 개인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는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과로사회’에서는 이 역시 쉽지 않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전문의 김진국 씨는 현대인에게 ‘슈퍼맨·슈퍼우먼 콤플렉스’를 내던지라고 조언한다.

“사람들은 ‘불꽃같은 삶’을 우상시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구국의 소녀 잔 다르크나 유관순이 아닙니다. 성웅 이순신이나 안중근도 아닙니다. 불꽃이 화려할수록 그림자도 짙습니다. 사그라지고 나면 재만 남습니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구체적인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실존적인 존재입니다.”

실존적인 우리가 구체적인 삶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은 ‘휴식’이다. 윤동교 작가는 한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뒤,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동안 달려오던 관성을 이겨내야 하고, 내 안의 잔소리꾼을 잠재워야 하며, 생각과 감정의 늪에서 헤엄쳐 나와야 하고, 거대한 심심함의 무게를 견뎌내야 하며, 1초가 1분 같은 시간의 왜곡 속에서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엄청난 일”이었다고 말이다.

휴식을 가장 방해하는 건 ‘자신’이었다. ‘이렇게 계속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하루하루를 이렇게 보람 없이 살아도 괜찮은 걸까’라고 묻는 자기 안의 이성이었다.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쓴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 씨는 “애초에 후회 없는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 선택을 했는지를 기억하고 집중하라”고 말한다. 즉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집중하라는 뜻이다.  

1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알에이치코리아 2 <여보, 우리 1년만 쉴까?>│무한출판사 3 <딱 한 달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레드우드

1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알에이치코리아 2 <여보, 우리 1년만 쉴까?> 무한출판사 3 <딱 한 달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레드우드

여보, 우리 1년만 쉴까

여기 다른 삶을 선택한 한 부부가 있다. 이들은 아이를 낳은 뒤, 동반 휴직을 했다. 이들의 ‘쉼’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심장이 약하게 태어난 아이 온유를 위한 휴식이었다. 부부는 태어난 아이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신혼집을 비우고 여행을 떠났다. 제주도와 가평, 베트남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이었다. 가족의 ‘방랑기’는 <여보, 우리 1년만 쉴까>라는 책에 담겼다. 온유는 이 긴 여정 동안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의 출산부터 염려로 가득했던 부부의 마음에 햇살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 가족에게 불어닥친 화(禍)를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절망 속에 기회를 만들어 화를 복으로 바꾸었고, 이 흐름을 보란 듯이 즐겼습니다.”

만약 엄마인 문평온 작가 홀로 이 일을 겪었더라면,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을까’에 함몰되고 말았을 것이다. 남편이 직장을 쉬고 이 문제에 함께 뛰어들었기에 둘은 정서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소진’되지 않고 ‘전화위복’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실제로 ‘감정 번아웃’을 겪는 이들은 약자를 상대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크리스티나 마슬라흐 교수는 “친밀한 접촉에 상당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서적 고갈이나 냉소주의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나 감정노동자들에게 ‘번아웃증후군’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다. 돌봄노동에는 일종의 ‘자기착취’ 경향이 있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진행한 ‘사회복지사 인권 상황 실태 조사’에서 이들의 인권 보장 수준은 10점 만점에 평균 5.6점을 기록했다. 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지킬 건강권, 불행에 맞서거나 회피할 방어권 등이 취약했다.

체력과 감정의 ‘번아웃’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현상에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그 첫걸음이 멈추는 것이다. 휴식은 ‘자발적인 멈춤’이다. <딱 한 달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의 윤동교 작가가 제주도로 떠나 ‘자발적 고립’을 자처한 이유도, <여보, 우리 1년만 쉴까>의 문평온 작가 부부가 집을 떠나 ‘자발적 방랑’을 한 이유도 일상에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와 잣대, 시선에서 벗어나 당당하기 위해서다. 이들에게 한 달이라는 시간과 1년이라는 기간은 ‘일상에서 나를 떼어두고 보는 힘’을 길러주었다. 그래야 시동을 끄고, 연료를 채울 수 있다.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올해 3월 발간된 책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는 출시 직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38만 부가 넘게 팔렸다. 곰돌이 푸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느릿느릿 숲 속을 거닌다. 푸의 친구들은 그를 답답해하며 재촉하기도, 조언을 하기도 하지만 푸는 빙긋 웃을 뿐이다. 푸의 태도는 한결같다. ‘적당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잃지 않겠다’는 태도다.


번아웃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은 것 같다.
- 예전과 달리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것 같다.
- 만사가 귀찮게 느껴지고 특히 업무에 대해 생각하면 피로감과 불편함이 느껴진다.
- 출근을 해도 시간이 꽤 지나야 업무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거나, 카페인 도움 없이는 업무 집중력을 높일 수가 없다.
- 잠을 자도 피로가 누적되는 것 같고, 이전에 비해 더 빨리 더 쉽게 지친다.
- 직장 동료나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점점 무관심해지고, 그들을 만나는 것이 꺼려지거나 불편하다.
- 예전에 비해 짜증, 불안 등 감정조절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 면역력과 회복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고 불면증, 두통, 요통, 감기 등이 쉽게 낫지 않는다.

* 0~2개 보통, 3~5개 주의, 6~8개 심각
참고도서│<나는 오늘도 소진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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