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하러 갔다 또 한잔 ‘노포’는 이런 곳

유슬기 위클리 공감 기자 2018.12.02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한 입 베어 물면, 한 시대가 입 안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백년식당>을 쓴 요리사 박찬일은 ‘노포’를 기행한 뒤 소회를 이렇게 기록했다. 노포(老鋪)는 오래된 식당을 말한다. 시대를 흐르며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다. 박찬일은 노포는 곧 ‘맛있는 식당’이라고 말한다. 매 계절 새로운 식당이 생기고 없어지고를 반복하는 냉정한 요식업계에서 대를 이어온 식당이라는 건 ‘맛있는’ 식당이어야 가능하니 말이다. 그 ‘맛’에 젊은 층이 반응하고 있다. 허름하고 후미진 어느 식당에서 이들은 맛뿐 아니라 ‘멋’을 느낀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 ‘#노포’를 검색하면 4만여 개의 게시물이 뜬다. ‘노포기행’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이영자, 송은이, 최화정, 김숙이 진행하는 TV 프로그램 ‘밥블레스유’에서도 최근 ‘노포 특집’을 진행했다. 서울 을지로의 어느 뒷골목, 기름때 묻은 철공소와 철물점과 잉크 냄새 번지는 인쇄소 골목이 남아 있는 이곳에서 이들은 “옛 홍콩영화 같은 정취를 느꼈다”고 말했다. 막상 노포의 주인들은 당황한 기색이다. 식탁이 8개 남짓인 을지로의 ‘세진식당’은 손님들이 몰려오는 통에 눈코 뜰 새가 없다. “이렇게 몰려와도 앉을 자리가 없는걸…”이라며 주인장은 손사래를 쳤다. 오징어제육볶음과 생태찌개가 유명한 이곳은 예약 전화를 걸어 식사하러 가겠다고 말해도 “날도 추운데 여기까지 뭐하러 오시려고 그래”라는 반응을 보인다. ‘할 수 있는 만큼만 정성껏’도 노포의 한 특징이다.

후미진 골목에서 풍기는 얼큰한 냄새
계림

을지로에서 청계천을 따라 내려오면 세운상가 뒷골목이 나온다. 한때는 ‘닭도리탕’ 골목이라고 불릴 정도로 식당이 많았지만, 세운상가가 쇠락하면서 뒷골목 식당들도 함께 사라져갔다. 좁은 골목길에 이제 살아남은 식당은 몇 되지 않는다. ‘계림’은 3대째 이어온 식당이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처음 오신 손님은 초면이라 반갑고/두 번째 오신 손님 구면이라 반갑고/세 번째 오신 손님은 단골이라 반갑고/네 번째 오신 손님은 가족 같아 반갑습니다’라는 붓글씨가 눈에 띈다. 요즘은 닭도리탕보다는 ‘닭볶음탕’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여기서는 ‘닭도리탕’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쓴다. 45년 된 간판부터 거의 바뀐 것이 없다. 손맛도 그대로다. 어머니에게서 계림을 물려받아 운영 중인 김하영 씨는 “닭발을 우려서 육수로 사용하는데, 그 맛이 변하지 않아서 오래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종로 3가 뒷골목에 자리한 계림(사진 위)

종로 3가 뒷골목에 자리한 계림(사진 위) 가업을 잇고 있는 김하영 씨(사진 오른쪽)  ⓒC영상미디어
 
식당 안은 매콤한 닭도리탕에 반주를 곁들이는 50~60대 손님들부터, 맛집을 찾아왔다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까지 북적였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는 골목 뒤까지 길게 줄을 서야 맛볼 수 있는데, 오후 서너 시쯤 되면 그래도 빈자리를 한두 테이블은 볼 수 있다. 오래된 단골이든, 맛집을 찾아온 첫 손님이든 이들의 식탁에서는 닭도리탕이 공평하게 끓고 있다. ‘계림’의 특징 중 하나는 ‘마늘 폭탄’이다. 잘 다진 마늘을 한 국자 퍼서 닭도리탕에 올리면 깊은 맛이 난다. “마늘의 아린 맛이 날 것 같지만, 육수에 퍼지면서 오히려 단맛이 난다”는 게 김하영 씨의 설명이다. 젊은 손님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오래된 식당의 정취와 깊은 국물의 맛을 담는다.

닭도리탕

ⓒC영상미디어

“평일에는 닭을 130~200마리 정도 준비해요. 주말에는 300마리가 넘게 나가고요. 준비된 양이 모두 소진되면 손님을 더 받을 수가 없어요.”

실제로 SNS 후기를 보면, ‘줄이 너무 길어 맛보지 못했다’거나 ‘다 팔려서 먹지 못했다’는 아쉬운 후기도 눈에 띈다. 아직 맛보지 못한 이들에게 유일한 위로는 지난 세월만큼이나 앞으로도 계림이 이 뒷골목을 지키리라는 약속이다.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는 가르침
인천 신일반점

인천 신일반점은 차이나타운과도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중구 신흥동에 자리한 이 중국집은 붉은 간판에 금빛 한자로 ‘新一飯店’이라 적어두고 손님을 기다린다. 문을 연 지는 이제 70년 가까이 되었다. 처음엔 호떡집이었다. 화교였던 1대 주인장이 호떡과 만두를 빚어 팔았다. 옛 호떡은 꿀이 아니라 소가 들어 있었다. 만두와 거의 가까운 모습이었다. 일제강점기 ‘청요리’는 고급음식이었다. 화교들이 인천으로 모여들면서 이들이 파는 중국요리가 인기를 모았다. ‘짜장면’이라는 음식이 처음 시작된 곳도 인천 차이나타운이다. 산둥반도에서 인천으로 넘어온 이들이 국수에 볶은 춘장을 넣어 비벼먹던 게 그 유래가 됐다. 이들의 음식은 ‘작장면’에 가까웠는데, 작장은 장을 볶았다는 뜻이다. 중국식 작장면은 한국의 짜장면보다 물기가 적고 춘장 맛이 더 강하다. 한국식 짜장면은 고기와 채소, 기름을 넣어 좀 더 흥건해졌다. 신일반점에서는 짬뽕의 원조인 ‘초마면’도 맛볼 수 있다. 돼지기름에 채소와 해물을 넣어 볶고, 육수를 부은 뒤 면을 넣는다. 국물은 뽀얀 색인데 먹어보면 얼큰한 맛이 난다. 붉은 짬뽕처럼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현재 신일반점을 이끄는 건 3대 화교인 유방순 씨다. 그는 지금도 주방을 떠나지 않는다. 만두는 매주 새로 빚는다. 신일반점의 만두는 요리를 시키면 서비스로 주는 일반 군만두와 다르다. 겉은 통통하고 속은 촉촉하다.

“탕수육이든 만두든 바삭하게 튀기려면 자주 공기와 마찰시켜줘야 해요. 기름에 담가두었다가 건져서는 안 되죠. 이렇게 여러 번 숨구멍을 열어줘야 씹히는 맛이 제대로 납니다.”

탕수육과 짜장은‘손맛’이라고 말하는 신일반점 유방순 주방장

탕수육과 짜장은 ‘손맛’이라고 말하는 신일반점 유방순 주방장 ⓒC영상미디어

거름망에 여러 번 다녀온 탕수육은 과연 바삭했다. 식당의 한쪽에서는 고량주를 시켜두고 탕수육과 함께 긴 담소를 나누는 초로의 신사들이 보였다. 이들은 익숙한 모습으로 식사를 하고는 주인장 부부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잘 먹었소이다” 하고 식당을 나섰다. 바깥바람은 차가웠지만, 옷을 여미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몸은 후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랫동안 찾아오는 분들도 계시고, 멀리서 찾아주는 분들도 계세요. 그분들에게 늘 같은 맛의 음식을 먹게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죠.”
신일반점에서 배달을 담당하는 아들과 카운터를 맡고 있는 딸도 아버지의 음식을 먹고 자랐다. 이들은 “아버지가 만들어준 짜장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유방순 씨는 빙긋 웃었다.

추위를 잊게 만드는 따스한 면발
대전 신도칼국수
 

신도칼국수의 대표 메뉴 들깨칼국수

신도칼국수의 창업자 고 김상분 여사의 며느리 이명주 씨 (왼쪽)
신도칼국수의 대표 메뉴 들깨칼국수 
ⓒ정한책방

1961년 문을 열었을 때의 이름은 신도분식이었다. 지금은 ‘신도칼국수’가 됐다. 대전역 앞에서 냉면집을 하던 김상분 할머니(1926~1988)는 ‘사람들에게 저렴하게 배불리 먹일 것’을 고민하다가 칼국수로 메뉴를 바꾸었다. 당시는 밀가루가 수입되고 정부가 분식을 장려하던 때였다. 대전광역시는 신도칼국수를 ‘우리 시에서 3대, 30년 이상 고유한 맛과 옛 추억을 간직한 전통업소’라며 ‘대전광역시 인증 전통업소’ 팻말을 달아주었다. 사실 대전은 칼국수의 고장이라 불릴 정도로 칼국수집이 많다. 대전에만 칼국수집이 600곳이 넘는다. 신도칼국수는 그 원조다. 한쪽 벽면에는 칼국수의 가격 변천사가 있다. 커다란 양푼에 담아주었던 1960년대 칼국수 한 그릇 가격은 30원이었다. 1980년대 들어 500원으로 올랐다가 1990년대는 1100원으로, 1997년 이후 2500원이 됐다. 지금은 한 그릇에 4500원이다. 이 가격에는 ‘짜장면보다 싸야 한다’는 창업자 김상분 할머니의 철학이 담겨 있다. 지금은 아들과 며느리가 가업을 잇고 있다. 프랑스 유학을 하고 돌아온 아들 박종배 씨는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에게 이렇게라도 보답하고 싶다”며 칼국수집을 이어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반찬은 열무김치와 단무지로 단출하다. 열무김치는 밀가루풀이 아닌 면수로 담는 게 신도칼국수만의 비법이다. 칼국수를 먹다 보면 허전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육수의 깊은 맛 때문이다. 신도칼국수는 사골을 우려낸 육수에 멸치를 넣어 국물을 낸다. 주방 한쪽에서는 새벽부터 사골국물이 끓고 있다. 이 국물에 면을 넣고 들깨를 듬뿍 뿌리면 칼국수가 완성된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칼국수집은 전보다 더 잘된다. 기뻐할 수만은 없는 현실이지만, 그렇기에 더 따스하고 배부른 한 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 옛날, 역전에 모인 이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솥에 물을 끓였던 어머니의 마음으로 말이다.

술을 부르는 해장국의 전설
어머니대성집

어머니 대성집의 ‘어머니’ 전인성 씨

어머니대성집의 ‘어머니’ 전인성 씨(왼쪽)
대표 메뉴 중 하나인 모둠수육
ⓒ인플루엔셜

1967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문을 열었다. 해장국 좋아하는 주당에게는 이미 알려진 집이다. 처음에는 ‘밤일’ 하는 사람들을 위해 국밥을 팔았다. 밤 9시에 문을 열고, 밤새 영업한다. 동대문에서 도·소매상을 하는 이들도 이 집의 단골이다. 어머니대성집을 연 전인성 씨는 벌써 75세가 넘었다. 지금은 2세들이 함께 일한다. 해장국에는 선지와 고기가 인심 좋게 들어간다. 특히 삶은 쇠고기를 잘 다져서 올리는데 이 고기 맛이 어머니대성집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육회와 수육도 인기가 좋다. 해장을 위해 해장국을 먹으러 갔던 이들이 육회나 수육을 시키면 반드시 따라오는 게 술 주문이다. 밤새 이야기를 나누어도 부담이 없으니, 술이 더 잘 들어간다. 모둠수육에는 내장과 등심 수육이 함께 나온다. 역시나 씹는 맛이 일품이다. SNS에는 ‘해장국의 전설을 마주했다’는 후기가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왜 내공 있는 노포인지 알 것 같다’는 감탄도 볼 수 있다. ‘국물을 들이켜는 순간 방금 전에 마신 술이 깼다’는 이도 있다. 이러니 다시 술이 술을 부르고 해장이 해장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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