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학동로에 위치한 공동체형 중고마켓 ‘마켓인유(Market In U)’ 매장은 지하 공간임에도 활기로 넘친다. 지하 매장 입구 계단 벽면에는 ‘당신의 첫 번째 세컨핸드샵 마켓인유에서 누리는 세 가지 즐거움’이란 글이 새겨 있다.
‘second chance, 즐겁고 이롭게! 마켓인유는 쓸모가 남은 물건을 적절한 보상과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삶을 지향합니다. 나에게 쓸모없는 물건은 다른 사람들이 그토록 찾고 있던 바로 그! 물건이 됩니다. 버려질 뻔한 물건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또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득템의 즐거움을 줍니다. 중고문화와 공유문화가 함께하는 지속 가능하고 창의적인 소비문화, 마켓인유와 함께 즐겨요. 이제부터 Market In You, Better than new.’
▶ 전문 디스플레이어가 디스플레이 한 의류매장에서 포즈를 취한 김성경 대표 ⓒC영상미디어
자락당(自樂堂)이 운영하는 매장인 마켓인유는 헌옷을 재활용하고 순환하는 장소다. 유행이 지난 의류를 유통하는 자락당은 매년 40% 이상 매출이 성장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서울대학교 내에 있는 매장 외에도 망원동 매장을 운영 중이며, 최근 학동역점을 새로이 오픈했다.
이날 찾은 학동역점 매장 검수실에서 직원들은 택배로 배달된 깨끗한 의류들을 검수해 판매할 옷과 기부 대상인 옷을 분류하고 옷에 상표 태그와 바코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로써 ‘MIU’라는 브랜드가 만들어진다. 마켓인유는 일반적인 ‘구제 옷가게’와는 다르다. 신상품으로 나온 지 3년 이내인 제철 의류를 철저한 검수를 통해 매입하고 판매한다.
입던 옷을 마켓인유에 직접 가져가거나 누리집(www.marketinu.com)에서 온라인 신청을 하면 택배회사에서 수거해간다. 옷 상태에 따라 포인트를 지급받고, 이 포인트로 매장의 옷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거나 돈으로 환전할 수 있다.
마켓인유의 2017년 매장 이용 통계를 보면, 판매자들 중 현금으로 받아가는 사람은 40% 정도이고, 다른 물건으로 교환하는 사람이 30% 정도 된다. 새 주인을 만날 때까지 물건을 맡겨두는 위탁판매도 30% 가까이 된다. 교환 땐 판매 값의 50%를 쳐주기 때문에 값을 더 받을 수 있다.
“재사용의 기쁨·가치 실현하고 싶어요”
자락당 김성경(37) 대표는 폭주족 출신의 서울대생, TV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타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김 대표는 중학교 2학년 때 오토바이에 흥미를 가지면서 폭주족이 됐다. 밤낮 할 것 없이 오토바이에 몰두해 부모님을 걱정시키다, 4수 끝에 대학에 합격했다. 그는 학점이나 스펙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즐겼다고 한다. 학교 수업보다 강원도에서 스노보드를 타는 것에 시간을 할애했고, 대학 3학년 때는 오토바이 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3년간의 스리랑카 해외봉사였다. 군 복무 대신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협력요원으로 근무했다. 김 대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며 “한국에 돌아가면 돈보다는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복무를 마치고 학교에 복학하니 과시적 소비문화가 대학가에 만연했다”며 “우선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부터 그런 소비문화를 바꾸고 싶어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교내 벼룩시장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2011년 졸업을 앞두고 학내에 돗자리를 깔고 처음 벼룩시장을 열었다. 김 대표는 “서로 모르는 학생들이 쓰던 물건을 사고팔면서 친해지는 것을 보고 중고문화가 새로운 대학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김 대표는 대학교와 생활협동조합에 약 2년 정도 끈질기게 제안하며 정식 사업화에 나섰다. 2013년 학교 이름을 딴 ‘스누(SNU)마켓’에서 ‘마켓인유’로 이름을 변경하고 서울대 언어교육원과 마포구 공덕 ‘늘장’에서 매장 운영을 시작했다.
스누마켓을 통해 교내 중고마켓을 운영하던 김 대표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2013년 하반기 방영된 KBS-2TV ‘휴먼 서바이벌 도전자’ 출연이었다. 공개 모집된 일반인 남녀 18명이 신체적, 지적, 사회적 미션 게임을 거쳐 단 한 명의 우승자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에 김 대표는 우연히 참가하게 됐다. 방송이 회를 거듭할수록 그는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고, 최후의 4인에 남으며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김 대표는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며 “연예계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권유하는 일도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주위의 높아지는 관심에 은근히 흔들리던 김 대표를 일깨운 것은 부친의 충고였다. 김 대표는 자신이 좋아하며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다. 결국 방송 출연은 추억으로 남기고 벼룩시장으로 복귀했다. ‘마켓인유’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2013년 서울시 공유기업 지정, 2015년에는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으며 점차 마켓인유의 체계를 갖춰나갔다. 그러나 학내 벼룩시장에서 출발해 정식매장으로 거듭나기까지 3년의 세월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수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꾸준히 하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아름다운가게’와 미국의 프랜차이즈 중고마켓 ‘버팔로익스체인지’ 등의 수익 방식을 벤치마킹하고, 서울 종각과 공덕동에 실험 매장을 열었다. 국내 의류를 매입해 판매하거나 위탁판매를 하는 곳은 마켓인유가 유일하다. 그 결과 2012년 한국 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청년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으로 선정돼 3000만 원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공덕동 매장은 2013년 8월 문을 연 이후 수익률이 매월 150% 이상 증가했다.
▶ 1 마켓인유 검수실에서 김성경 대표와 직원들이 판매자들이 가져온 의류의 상태를 검수하고 있다.
2 직원들이 검수 과정에서 문제가 있어 반품대상인 의류를 판매자에게 기부받아 미국의 시민단체 ‘굿윌(Goodwill)’의 기부봉투에 담고 있다. 비닐백엔 ‘집안 구석구석에 잠자는 다양한 물품을 가득 채워주세요. 장애인의 일자리가 생깁니다’라고 쓰여 있다. ⓒC영상미디어
마켓인유는 판매자들 중 물물교환 형식으로 판매금액의 50%를 다른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는 점을 감안, 매장 내에 다양한 사회적기업 물품들을 구비하고 있다. 방탄소년단 리더 랩몬스터(RM)가 구매해 유명세를 치른 사회적기업 모어댄의 ‘컨티뉴’ 백팩을 판매한다. 폐차에서 수거한 천연가죽과 안전벨트, 에어백 등을 업사이클링해 만든 제품이다. 아프리카 우간다 아이들의 물통인 제리캔을 담는 가방 ‘제리백’도 있고, 도심 한복판에서 꿀벌을 키우는 ‘어반비즈서울’의 벌꿀도 판매한다.
김 대표는 “사회적기업의 경우 자활센터에서 만드는 제품이나 공정무역 제품, 난민들을 돕기 위해 만드는 제품 등이 있다”며 “함께하는 작가들 역시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우리와 작가가 추구하는 목적이 맞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해외에서 경험한 플리마켓이 지금의 사업에 많은 밑거름이 되었다”면서 “유럽의 경우 벼룩시장이란 것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먹거리, 수공예 작가들, 지역 농산물이 한자리에 어우러져 지역 공동체로서 함께 어울리는 문화의 장이 되고 있다”고 했다.
김성경 대표의 자락당은 폐기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친환경 사회적기업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6월 6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 따르면, 1937개의 사회적기업 중 환경 분야는 116개다. 자락당은 마켓인유에서 2016년 기준 11만 6000건 중고거래를 했고, 약 20톤의 생활폐기물을 줄였다.
마켓인유는 검수 과정에서 문제가 있어 반품 대상인 의류를 판매자에게 기부대행을 맡아 미국의 시민단체 ‘굿윌(Goodwill)’에 전달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100여 년 전부터 구세군(Salvation Army)이나 굿윌 등의 자선단체가 ‘재사용 나눔 가게’를 운영해오고 있다.
마켓인유 검수팀이 판매자에게서 기증받은 의류를 ‘굿윌’에 전달할 비닐백에 담고 있는데, 비닐백엔 ‘집안 구석구석에 잠자는 다양한 물품을 가득 채워주세요. 장애인에게 일자리가 생깁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김 대표는 “작년 한 해 동안 굿윌 스토어에 6000만 원어치의 의류를 기부했다”고 했다. 그는 “헌옷 100벌, 20kg(헌옷 5벌이 1kg)을 소각하는 데 1만 7000원의 비용이 소요된다”며 “마켓인유는 연간 4만 톤의 헌옷을 취급하니 약 340억 원의 환경비용을 절감해주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자락당의 자원 재활용 사업모델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사회적기업가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을 배우면서 따왔다. 카이스트에서 사회적기업가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은 김 대표는 “쓰레기 문제는 폐기물 순환 사이클 단계의 근본적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온라인 사이트 개편에도 힘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량 생산과 저가 물건이 소비를 주도하는 시대에 굳이 중고 용품을 사고파는 이유는 뭘까? 김 대표는 “일본도 오일쇼크 이후 중고시장이 활성화된 것처럼 우리나라도 저성장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며 “이미 만들어진 것의 순환을 극대화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했다.
중고시장의 이케아가 꿈
마켓인유의 지후석 이사도 “손님들이 사용한 물건을 다시 팔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자신의 물건을 소중히 쓰다가 가지고 오는 등 사람들의 소비 패턴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며 “판매자가 구매자가 되고, 구매자가 판매자가 되면서 중고시장은 돌고 돈다”고 했다.
마켓인유 식구들은 정직원 9명, 아르바이트 4명을 포함해 13명으로 단출하다. 김 대표는 “매출은 크지 않지만 마켓 운영비와 인건비, 생활비는 충족되고 있다”며 “따로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입소문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무엇보다 충성고객이 많다”고 했다. 이어 “공유문화 확산으로 소비자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며 “매장에 오시는 분들의 재방문율이 80%를 넘는데, 그분들이 실제 자신들의 소비가 줄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마켓인유의 미래를 위해 재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김 대표는 마켓인유가 앞으로 중고시장계의 이케아(IKEA)가 되기를 꿈꾼다. 연 매출 3조가 넘는 일본의 하드오프, 세컨드 스트리트, 트레저팩토리도 그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그는 ‘리커머스(re-commerce)’로 설명했다.
그는 “이케아 정도의 규모로 의류, 잡화, 전자제품, 생활용품, 스포츠용품 등 중고 물품들을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다”며 “마켓인유는 2011년 창립 이래 다양한 거래 방식과 물품을 공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실험을 계속하고 있고, 올해 투자 유치를 하려 한다”고 했다.
김성경 대표는 마켓인유의 궁극적 목표는 물품의 재사용과 공유문화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중고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고 선입견이 많으나, 결국 세상의 모든 물건은 중고가 된다”며 “마켓인유는 물건을 재사용하는 기쁨과 가치를 실현하고, 이를 문화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