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의 ‘이태원 프리덤’

강은진 위클리 공감 기자 2018.12.30 최신호 보기

한국 거주 15년 차, 이태원 거주 10년 차의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 퀀타르트(Julian Quintart, 32)를 만나기로 한 장소가 석양이 꽤나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한 루프탑이었다. 해가 일찍 져버리는 겨울 날씨에 제대로 된 이태원 풍경을 담지 못할까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이태원의 활기는 어두워질수록 넘쳐났다. 이태원 소개에 나선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해가 산등성 뒤로 넘어간 뒤였지만, 줄리안은 진정한 이태원 모습이 나타나는 시간이라며 여유 만만해했다.

“이태원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한국이지만 한국이 아닌 것 같다는 점이죠. 강남이랑 홍대 같은 번화가와는 완전히 느낌이 다르거든요. 외국인인 저조차도 이태원에 처음 왔을 때, 외국 같고(웃음) 여권 챙겨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여긴 이방인들의 동네예요. 한국인조차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도 많고.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진짜 한국적인 것도 있어요. 외국 갔다 오면 더 한국 음식 먹고 싶고 한국적인 거를 더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줄리안은 이태원의 가장 큰 매력으로 글로벌한 개방성과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타인에 대한 오픈 마인드를 손꼽았다. 한국에서 가장 부자인 재벌 회장의 집이 있는가 하면 바로 밑 골목에는 한 건물에 여러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는 저렴한 집이 있고, 언덕 위에 이슬람 사원이 있는가 하면, 언덕 아래엔 작은 교회가 있다면서 말이다. 골목마다 ‘진짜 고향의 맛’을 자처하는 세계 각국의 식당들이 있고, 간판에는 기본 3개 국어 이상의 글씨가 쓰여 있다. 밤이면 외국 영화에나 나올 법한 파티가 곳곳에서 열린다. 캐리어를 끌고 오가는 외국인 관광객은 차라리 평범한 축에 속하는 풍경이다.

“제가 집 근처 이태원 초등학교 수영장을 다니거든요. 거기 가보면 각국에서 온 여러 인종의 친구들이 다 한국말로 서로 얘기하고 장난치면서 수영하고 있어요. 그곳 초등학교 아이들은 그런 외국 친구들과 섞여 있는 상황이 자연스러워서 편견 없이 잘 자랄 것 같아요. 이태원이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누가 와도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던 길을 줄리안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줄지어 서 있는 아파트 풍경에 너무 놀랐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부의 상징이고,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집의 형태라는 걸 이제 줄리안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곳곳에 있고, 이런저런 회색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도시 풍경은 그저 아름답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한국이 그리고 이태원이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인 여행지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 때문이다.

한국 생활 15년째인 줄리안은 “한국의 매력은 한국 사람”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한국 생활 15년째인 줄리안은 “한국의 매력은 한국 사람”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C영상미디어

“한국은 한국 사람과 부딪쳤을 때 매력적이에요. 한국 사람들만 모르는 한국 사람 특유의 에너지가 있거든요. 저희 아버지도 한국에 네 번이나 오셨는데요. 올 때마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사람들이 ‘아, 줄리안 아버님이세요?’ 하고 너무 반겨주는 걸 가장 즐거워하세요. 그냥 인사 같죠? 하지만 외국인에겐 한국에서만 받을 수 있는 에너지 같은 걸로 느껴져요. 주변에 보면 그게 그리워서 다시 한국에 오더라고요.”

줄리안은 한국인을 아시아의 라틴족이라고 부르는 말이 크게 틀리진 않은 것 같다며 웃었다. 물론 어딜 가나 불친절하고 무례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곤란하고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면 한국인들은 마치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미안해한다. 벨기에라면 아무리 벨기에 사람이 잘못을 했어도 그 사람의 일일 뿐, 나의 일 또는 우리의 일이 될 수 없다. ‘아니, 뭐 그런 나쁜 사람이 다 있어!’ 하면 끝날 일이다. 하지만 한국은 ‘우리’라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끈끈하다. ‘우리’ 안에서 끈끈함을 한 번이라도 느낀 외국인이라면 헤어나기 어렵다는 게 줄리안의 생각이다. 줄리안은 빠르게 변하는 한국을 사람들의 에너지만큼이나 매력적인 포인트로 꼽았다. 바로 다이내믹 코리아다.

“2007년에 부모님이 처음 한국에 오셨는데요. 그때는 음식도 많이 낯설어하셨고, 풍경도 지금과는 좀 달랐어요. 그런데 이번에 오셔서는 음식도 너무 맛있고 예쁜 건물도 더 많아졌다고 하시는 거예요. 서울의 이태원 환경이 확실히 더 예뻐졌어요. 벨기에라면 10년 정도의 시간에 이런 변화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에요. 아름답게 변하는 것도 놀랍지만 빠르게 변하는 건 외국인들에게 더 놀라워요.”

다이내믹 코리아, 다이내믹 이태원

줄리안이 벨기에를 떠나온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벨기에는 달라진 점이 거의 없다고. 집도 이웃도 단골 가게도 거기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잠깐 지방 촬영을 갔다 온 사이에 편의점이 카페가 되어 있고, 연휴에 고향 벨기에를 다녀온 사이 단골 가게가 없어져버리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래서 문제라고 할지 모르지만 외국인 입장에선 다이내믹한 에너지로 느껴진다.

잠깐 지방 촬영을 다녀오면 거리가 바뀐다. 줄리안에겐 한국의 역동적인 변화가 흥미롭다.

잠깐 지방 촬영을 다녀오면 거리가 바뀐다. 줄리안에겐 한국의 역동적인 변화가 흥미롭다. C영상미디어

“벨기에는 작은 식당 하나 생겨도 큰 화제가 될 정도로 변화가 없는 곳이거든요. 변화를 안고 빨리빨리 가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한국은 정말 그대로 부딪쳐버려요. ‘내가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으로 그냥 해버리는 거죠.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이 정말 딱 맞아요. 빨리빨리 문화가 단점도 있겠지만 역동적인 건 사실이에요.”

고향 벨기에에 가서도 술 먹은 다음 날이면 해장국이 먹고 싶고, 아침으로 따뜻한 밥과 국이 먹고 싶을 때 한국 사람이 다 됐다고 느낀다는 줄리안은 한때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 사람처럼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까지 와서 외국인을 만나고 싶지 않아 일부러 이태원을 피해 다닌 적이 있었다.

“저도 외국인인데 이태원 오면 외국인이 많아 무서웠어요.(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 아무리 제가 한국 사람처럼 살아도 한국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이태원에 왔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경리단길이나 이런 곳이 뜨기 전인데 내가 좋아하는 우리 고향 빵도 있고, 마트에 가면 좋아하는 소스도 팔고요. 저 같은 이방인들의 고향이 되어주는 곳이 바로 이태원인 것 같아요.”

그러나 줄리안은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하는 게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벨기에서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일까, 줄리안에게 이태원은 더욱 소중하다. 이방인이 주인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줄리안이 추천하는 관광한류 명소

이태원 지구촌 축제
이태원 지구촌 축제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이태원의 외국 문화를 결합하고, 이태원 지역의 활성화 및 관광객 유치를 위해 2002년 처음 개최되었다. 가을에 개최되는 서울의 대표적인 축제로 한류의 중심을 이루는 K-팝 가수들의 콘서트, 세계문화체험관 등 다양한 문화교류행사로 이태원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카사코로나
코로나가 이태원에 ‘카사 코로나’를 열었다. 아시아 권에선 최초다. ‘도심 속 파라다이스’를 주제로 안락의자, 그늘막을 활용해 이국적인 분위기의 집을 만들었는데,  라운지 바와 루프톱 바로 구성돼 공간이 무척 넓다. 일단 안으로 들어서면 서울을 떠나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인데 라임을 병 입구에 꽂은 코로나 한잔과 코로나 비어 칵테일을 마시다 보면 시간마저 잊고 만다. 카사코로나에서 보는 이태원의 석양은 이미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주소 서울 용산구 보광로 60길 7

마운틴 하우스
치맥? 이젠 피맥이다. 이미 연예인들의 단골집으로 소문이 자자한 피자집이자 가벼운 펍인 마운틴 하우스는 피자와 시원한 맥주 한잔하기 적격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동네 펍에 들어온 듯한 인테리어와 현지의 맛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피자 맛은 과연 이태원이란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주소 서울 용산구 보광로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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