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 과학] 고릴라한테 배우는 아빠의 육아

2018.10.28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인간을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합니다. 영묘한 힘이 있는 우두머리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의 주장이죠. 다른 동물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우두머리라면 마땅히 나머지 동물의 안전을 보살펴야 할 텐데 솔직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다른 동물과 똑같이 취급하기도 좀 곤란합니다. 그래서인지 과학자들은 인간뿐만 아니라 꽤 많은 동물을 ‘영장류’로 묶었습니다.

영장류는 간단히 원숭이(monkey)와 유인원(ape)으로 구분됩니다. 기준은 간단합니다. 바로 꼬리입니다. 꼬리가 있으면 원숭이고 꼬리가 없으면 유인원이죠. 긴꼬리원숭이나 여우원숭이처럼 이름에 원숭이가 붙어 있으면 당연히 원숭이고, 꼬리가 없는 사람,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은 유인원입니다. 다만 긴팔원숭이는 유인원입니다. 긴팔원숭이는 꼬리가 없거든요. 이름이 잘못 붙은 것이죠.

사람들은 원숭이보다는 유인원에게 훨씬 친근감을 느낍니다. 상대적으로 우리와 비슷하게 생겼고 똑똑하니까요. 영화에서도 밀림의 왕자 타잔이 ‘치타’라는 침팬지와 같이 살잖아요. 실제로 7000만~4000만 년 이전에 공통 조상에서 갈라선 원숭이와 달리 불과 700만 년 전에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침팬지와 사람은 DNA의 98.8%가 일치합니다.

그런데요, 사실 침팬지는 우리와 많이 다릅니다. 침팬지의 근육을 보면 어마어마하지요. 그리고 우리는 침팬지라고 하면 바나나의 껍질을 벗겨 먹거나 아니면 나뭇가지를 흰개미 집에 쑤셔 넣은 후 딸려 나온 흰개미를 훑어먹는 모습 정도를 상상하지만 침팬지는 때로는 아주 공격적인 동물입니다. 원숭이를 산 채로 우걱우걱 씹어 먹기도 하는 무시무시한 동물이죠.

침팬지와 달리 고릴라는 공포의 대상입니다. 고릴라는 영장류 가운데 덩치가 가장 큽니다. 수컷의 경우 뒷발로 서면 키가 2m가 넘고, 두 팔을 벌리면 너비가 3m에 달하지요. 몸무게는 150~290kg이나 됩니다. 뒷발로 서서 이빨을 드러내고 가슴을 쿵쾅쿵쾅 두드리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입니다. 오죽하면 ‘킹콩’ 같은 영화가 나왔겠습니까. 하지만 DNA는 사람과 97~98%나 일치합니다.

침팬지처럼 고릴라 집단에도 알파 수컷이 있어서 암컷을 독점합니다. 사실은 독점하려고 애쓰고 독점한다고 착각할 뿐이죠. 그 많은 수컷과 암컷을 어떻게 모두 감시하겠습니까? 알파 수컷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비밀스러운 짝짓기가 이뤄집니다.

커다란 동물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임신기간이 길고 한 배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습니다. 그리고 수명이 깁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덩치가 클수록 포식자가 적을 것이고 그러니 물고기나 작은 동물처럼 후손을 남겨서 소수가 살아남기를 기대할 이유가 없지요. 고릴라 역시 임신기간이 길어서 9개월에 달합니다. 그리고 한 배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죠. 사람처럼 갓 태어난 새끼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세 살까지 어미 등에 업혀 다니면서 젖을 먹고 자랍니다. 생후 7~8년은 되어야 제법 커서 혼자 다닐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아이도 그때가 되어야 혼자 학교에 갈 수 있는 것과 같지요. 사람과 정말 비슷하죠.

고릴라는 사람만큼이나 양육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동물입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고릴라 수컷은 새끼 양육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합니다. 놀라운 일이죠. 그동안 과학자들이 생각해온 수컷의 유리한 생식 전략과는 정반대입니다. 과학자들은 통상적으로 수컷이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는 이미 태어난 새끼에게 관심을 갖기보다는 다른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몰두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여겨왔습니다. 영장류 연구의 대표적인 실험동물인 침팬지처럼 말입니다.

아프리카에 르완다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르완다가 아프리카 어디쯤 있는지는 몰라도 1990년대에 투치족과 후투족 사이의 잔혹한 유혈사태를 기억하시는 분은 많을 겁니다. 아프리카 한복판에 있는 작고 험하지만 비옥한 땅의 나라지요. 르완다 보케이노스 국립공원이 운영하는 카리소케 연구센터에서는 고릴라를 연구합니다. 이들이 연구하는 고릴라에는 성격이 다른 두 집단이 있습니다.

르완다 고릴라 가운데 60%는 한 마리의 알파 수컷 고릴라가 몇 마리의 암컷으로 구성된 소규모 하렘을 지배합니다. 알파 고릴라를 제외한 수컷 고릴라는 집단에서 배제되지요. 그런데 나머지 40%의 고릴라들은 아홉 마리나 되는 수컷들이 함께 지내는 큰 집단을 구성합니다. 여기서 짝짓기에 성공하려면 암컷의 눈도장을 받아야 합니다. 짝짓기 선택권이 수컷에게 있는 게 아니라 암컷에게 있거든요.

짝짓기의 선택권이 암컷에게 있는 동물들은 매우 많습니다. 산양은 수컷들이 서로 박치기를 해서 자신의 강인함을 암컷에게 보여줘야 하지요. 수컷 공작은 생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포식자의 눈에 띄기 좋은 화려한 꽁지깃을 갖춰야 합니다. 뉴기니의 극락조들은 화려한 집을 짓고 구애춤을 추지요.

그렇다면 고릴라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까요? 산양처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일까요? 아니면 극락조처럼 화려한 집을 짓고 암컷을 유혹하는 춤을 출까요? 지난 10월 15일자 네이처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카리소케 연구센터의 논문이 실렸습니다. 놀랍게도 짝짓기를 원하는 고릴라 수컷은 암컷이 데리고 있는 새끼와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누구의 자손인지 모르는 새끼를 돌보고 먹이는 것이지요. 암컷들은 새끼를 잘 돌보는 수컷과 짝짓기를 하지요.

르완다 고릴라 가운데 40%는 수컷이 새끼를 기꺼이 돌보도록 진화했습니다. 그래야 자기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남기는 데 유리했거든요. 새끼를 잘 돌보는 수컷 주변에는 새끼 고릴라들이 잔뜩 모입니다. 마치 유치원처럼 보일 정도죠. 모인 새끼들이 서로 다투는 일은 늘 일어나기 마련이지요. 이때 수컷은 어린 개체와 공격받은 개채를 보호합니다. 새끼들은 아빠(?) 곁에서 사회의 규칙을 배우는 것이죠. 그러다가 새끼들은 점차 엄마의 잠자리가 아니라 아빠의 잠자리에서 자게 됩니다. 이게 바로 고릴라에게는 자립의 증거입니다.

수컷 고릴라의 생식 전략에서 우리는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남성이라면, 강한 남성이라면 아이 양육에 힘쓸 일입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사회의 규칙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정모

필자 이정모는 서울시립과학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생화학을 전공하고 대학 교수를 거쳐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지냈다. <250만분의 1>,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 <내 방에서 콩나물 농사 짓기> 등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과학도서와 에세이 등 60여 권의 저서를 냈고 인기 강연자이자 칼럼니스트로도 맹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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