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민단체 ‘함께하는시민행동’에서 활동했으며 ‘좋은예산센터’ 소장을 맡아 시민들이 쉽게 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다. 현재 고려대 행정학과에서 공공경제학, 복지정책 등을 가르치고 있다.
이진우 기자는 경제 전문 매체인 <이데일리> 기획취재팀장을 역임했고 한국기자협회 경제보도 부문 최초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부터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하며 경제 관련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성장과 분배. 우선순위는 오랫동안 논의됐다. 그러나 동시에 서로를 바란다.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경제발전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국 경제 또한 그렇다. 성장을 중시하며 고도성장을 이뤘고 커진 파이를 나누기도 했다.
정부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뒀다. 다만 기존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저성장·고령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성장동력은 한계에 봉착했고 소득양극화는 점차 심화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새로 설정한 경로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다. 국민의 인식은 어떨까. 한국갤럽이 8월 28~30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과반 이상이 소득주도성장을 지지했다. 소득주도성장 방향에 대한 ‘찬성’이 60%, ‘반대’가 26%, 14%는 판단을 유보했다. 연령별로도 2050세대까지는 ‘찬성’이 과반을 기록했다. 한편 경제정책에서 ‘경제성장’과 ‘소득분배’ 중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둬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각각 49%, 40%로 답했다. 유보는 11%였다. 국민 다수가 목적지는 합의했다고 가정할 때 방법의 문제가 남은 셈이다. 가장 어려운 문제다.
그렇다면 우선 현 한국 경제를 제대로 짚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를 집필한 재정 전문가 김태일 고려대 교수와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로 친숙한 이진우 기자가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경제·경영을 전공하는 대학생 네 명도 참석했다.
이진우 오늘은 나라 걱정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현 상황에 대한 진단부터 하고 가자.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라고 말하는데 일각에서는 ‘이만하면 잘사는 거다’, ‘우리 때는 더 힘들었다’라고 말한다. ‘힘듦’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 같다. 현재 우리가 힘들다고 할 수 있을까?
▶ 김태일 ⓒC영상미디어
김태일 사람마다 다른 게 맞다. 예전보다 힘들다고 하는데 대한민국 경제를 보면 성장률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국내총생산(GDP)은 계속 성장해왔다. 경제성장률이 0%면 작년과 올해 살림살이가 똑같다는 것, 경제성장률이 오르면 작년보다 잘살게 됐다는 뜻이다.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보인 건 딱 두 번이다. 1980년 2차 오일쇼크 때와 1998년 외환위기 직후다. 올해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2.8%를 기록했다. 문제는 2%대가 힘들다고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의 소비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또 다른 이유는 과거에 비해 양극화가 심해져서다. 양극화가 적으면 경제성장률이 상승할 때 삶이 함께 나아진다. 그런데 양극화가 심하면 경제성장률이 올라도 삶의 개선 체감도가 달라진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배경이 서울 쌍문동이다. 드라마 내용도 재밌지만 1988년부터 1993년까지 등장인물 대부분이 성장해서 그 동네를 떠난다. 누구는 아파트로 가고 누구는 자가용을 산다. 물질적으로는 지금보다 가난했지만 작년보다 올해가 나아지고 내년이 나아진다는 희망이 있었던 때다. 지금은 잘살 거란 희망이 낮다. 과거에는 주거비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고 사교육비나 대학등록금 부담도 크지 않았다. 지금은 돈을 더 벌어도 쓰는 데가 많아지니까 힘들어진 거다.
저성장 속에서 안정된 삶 고민할 때
▶ 이진우 ⓒC영상미디어
이진우 과거보다 주거환경이나 사교육 품질이 높아졌지 않았나?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은 비가 많이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샜다. 요즘은 그런 집이 거의 없다. 주거환경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만큼 행복해졌다는 생각은 안 든다.
김태일 그렇다. 요즘처럼 원어민 영어과외는 상상도 못했다. 돈을 들여 사교육을 받으면 나의 인적 자본은 높아진다. 그렇다고 대학에 들어가 뛰어난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입시경쟁을 뚫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게 문제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30년째 거주 중이다. 아파트 값은 훨씬 올랐지만 더 좋아진 건 없다. 문제는 불안정성이다. 과거에는 50대 중반까지 정년이 보장됐다. 그런데 은퇴 시기는 짧아지고 기대수명은 늘었다. 50대에 은퇴해서 3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하는데 자식한테 의지할 수도 없다. 삶의 불안정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진우 이건희 회장도 가끔 불안해서 등에서 땀이 났다고 했다. 삼성그룹 회장이 땀이 나면 대체 어쩌라는 건지. 올해보다 내년이 나아지고 후년이 나아지면 지금 상황이 어떻든 불안하지 않다. 반면 지금 내 생활수준이 아무리 높아도 성장률이 나빠질 거라 생각하면 살아가는 게 끔찍할 수 있다.
김태일 성장률 자체가 떨어진 건 틀림없다. 그렇지만 과거와 같이 고도성장을 유도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은 아니다. 2~3% 저성장 속에서 어떻게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고 안정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이진우 성장률 자체를 높이는 건 불가능할까? 미국 경제성장률이 2%를 보이다가 4%대를 기록했다. 선진국이라고 성장이 멈추는 건 아닌 것 같다.
김태일 Q=f(K, L)은 경제학의 기본이다. Q는 생산량, K는 자본, L은 노동이다. 자본과 노동을 투입해서 생산물을 만드는 거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자본과 노동을 늘려서 더 많이 생산하고 그만큼 팔아야 한다. 수요와 공급이 모두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 외국에서 돈을 빌려 많이 만들어냈다. 도로를 뚫고 아파트와 공장을 지었다. 전년보다 물질, 재화, 서비스가 늘어나는 것, 엄청난 성장의 밑바탕이었다. 국민들도 저축하며 투자 재원을 만들었다. 과거 성장은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자본은 충분하지만 투자할 곳이 없다. 계속 건물과 공장을 지으면 성장률은 올라가겠지만 실질 효용은 다른 문제다. 생산량이 늘면 누군가는 구매를 해야 한다. 30년 전과 비교해보자. 난 1980년대 자가용을 처음 샀다. 1988년 30년 전 아파트에 이사했을 때 컬러TV, 소파, 냉장고가 있었다. 그때 없다가 지금 생긴 건 컴퓨터와 스마트폰 정도다. 그보다 30년 전으로 가보자. 1958년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1958년과 1988년 사이 자가용, 컬러TV, 냉장고가 나오며 다들 사고 싶어 했다. 다들 구입하니까 공장을 키우고 열심히 만들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고속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다. 지금은 수명이 다하지 않는 한 구매하지 않으니 그때만큼 수요가 늘 수 없다. 아파트도 예전만큼 지을 필요가 없다. 이제 과거와 같이 성장하는 단계는 지났다. 앞으로의 30년을 보자. 2018년과 2048년 사이 엄청난 혁신제품이 나와야 과거 수준의 성장이 생길 수 있다. 자율주행, 바이오 분야가 가능성이 있다.
이진우 한국 경제 성장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설명했다. 우리 삶이 힘들어지고 있는데 성장률을 높이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다.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요를 자극할 만한 재화를 더 만들어야 한다. 다른 한편에서 정부는 해법으로 소득주도성장을 제시했다. 사람이 키가 클 때도 성장점이 있듯이 소득주도성장은 경제에도 성장점이 있다고 보고 그 지점에 투입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김태일 앞서 말한 것은 공급을 중시한 측면이다. 정부의 혁신성장도 같은 맥락이다. 공급도 있고 수요도 있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은 수요를 키우는 다른 축이다. 소득주도성장이 등장한 배경은 20세기 중반이다.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황금기를 맞았던 때다. 경제가 성장하고 복지를 확장했지만 양극화 없이 분배도 잘됐다. 삶의 수준도 높아졌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변화가 생겼다.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노동소득이 내려간 것. 그만큼 자본소득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률이 올라가는데 노동소득분배율*이 떨어지는 건 상대적으로 임금상승률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그런 경향이 몇 십 년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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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쉽게 말해 돈을 벌어도 노동자에게 많이 안 준다는 건가? 그 이유가 뭔가?
김태일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서구에서 산업사회가 전성기를 맞이할 때 민주주의도 꽃을 피웠다. 제조업이 강한 상황에서 노조가 큰 힘을 발휘했다. 그런데 탈산업사회로 진입하며 제조업이 줄어들었고 노동과 자본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자본 입장에서는 제3세계와 단가 경쟁을 하게 됐고 임금을 억제하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1987년 민주화를 이루며 노동운동이 생겼다.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대기업을 중심으로 임금이 덩달아 올라갔다. 노동소득분배율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전후로 서서히 내려갔다.
이진우 노동소득분배율이 내려간 현상이 극복해야 할 현실이라도 자본이 잘못한 일은 아니잖은가? 그렇다고 노동자가 노력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김태일 제조업에서 기술이 좋아져 생산성이 올라가기도 하지만 더 큰 자본이 투입돼서 그렇다. 가령 1000원짜리 물건을 만들어 700원은 노동, 300원은 자본 몫이라고 치자. 장비에 투자를 해서 생산성이 두 배로 오르면 2000원을 번다. 노동 때문이 아니라 장비 때문에 생산이 늘어난 것이지만 노동임금을 700원에서 1400원으로 올려줘도 자본가 역시 600원이 남기 때문에 300원 때보다 오른 셈이다. 그러나 요즘은 아니다. 딱 700원 그대로 주고 자본이 1300원을 가져간다. 후한 임금을 주면 제3세계와 경쟁에서 견딜 수 없어서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옛날처럼 여유 있게 경쟁이 안 되니까 가급적 최하로 단가를 낮추고 또 낮춘다. 임금을 올려야 하면 고용을 줄인다. 점점 괜찮은 제조업의 자본 장비는 높아지고 고용은 줄어든다.
이진우 옛말에 자기 밥숟가락은 물고 태어난다고 했다. 농업사회에서는 어딘가에서 개간을 하면 자기 먹을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내 노동력을 팔아서 먹고사는 영역이 자꾸 줄어드는 것 같다.
김태일 몇 백 년 전보다 지금이 잘사는 건 틀림없다. 다만 상대적인 문제다. 어떤 숟가락이냐가 중요한 세상이 됐다.
이진우 노동소득분배율이 줄어드는 현상이 기업의 탐욕에 의한 결과라면 정부가 개입해서 기업으로부터 긁어오면 될 일인데, 그게 아니라 산업구조 변화에 의한 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기업도 ‘임금이 적은 건 미안하지만 일도 대부분 기계가 하는 마당에 기계 할부금도 내야 해’라고 할 수 있다.
김태일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임금 계약을 할 때 항상 고용자의 뜻대로 된다는 것이다. 임금 협상을 할 때 일주일은 싸울 수 있다. 한 달은 싸우기 힘들다. 6개월을 싸우는 노동자는 적다. 1년 이상 싸우는 노동자는 없다. 그러나 고용주는 1년 이상 싸울 수 있다. 칼자루가 고용자에게 있다는 뜻이다. 요즘은 다르다. 노조가 생겼기 때문이다. 노동자 입장에서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단체로 대등한 협상력을 갖게 됐다. 우리나라는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높은데 노조는 대기업 정규직에 많다.
이진우 저임금과 고임금은 상대적이라, 설명을 덧붙이자면 중위소득* 대비 임금을 적게 받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노동자를 임금 순으로 쭉 늘여놓았을 때 다른 나라는 가운데나 상위가 높은 데 반해 하위가 많은 게 우리나라 특징인 건가?
김태일 우리나라처럼 살기 좋은 데가 없다. 24시간 편의점도 있고 집에서 치킨도 시켜 먹고 인터넷 연결도 쉽게 된다. 그만큼 서비스업 종사 비율이 높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다수가 서비스업에 종사하지만 서비스업은 양극화가 심하다. 금융, 법률, 마케팅은 고임금이지만 높은 기술이 있어야 한다. 반면 음식점은 노동자의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니 임금이 낮아진다. 이런 서비스 분야는 노조도, 협상력도 없다. 그래서 거의 최저임금을 준다. 외국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계층은 이주 노동자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10대 아르바이트생이다. 풀타임 종사자는 대부분 그 이상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 파장이 큰 이유는 최저임금을 받는 보통 사람이 많아서다.
자료│이병희·황덕순·홍민기·오상봉·전병휴·이상헌, ‘노동소득분배율과 경제적 불평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보고서 2014-04 <부표 2-1> 통계 이용해 작성 / 김태일, <한국 경제,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코난북스, 2017.
이진우 왜?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된 건가?
김태일 우리나라 서비스 임금이 낮다는 건 그만큼 대가가 적다는 뜻이다. 장하준 교수가 쓴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라는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스웨덴 버스기사와 인도 버스기사가 하는 일은 비슷하다고. 오히려 도로 사정을 감안하면 인도 버스기사의 운전기술이 훨씬 좋겠지만 스웨덴 버스기사의 임금이 훨씬 높다. 서비스 임금뿐 아니라 자영업, 제조업 임금 모두 그 나라의 1인당 GDP에 비례한다. 그 안에서 정부가 어떤 형태로 분배에 이바지했는지가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받는 보통 사람이 많다
이진우 정부가 우리나라 분배 상황을 바꿔보고자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는 건가?
김태일 소득주도성장은 케인즈 경제이론에서 나왔다. 수요 중시다. 일반적으로 잘사는 사람은 저축을 많이 하고 가난한 사람은 소비를 많이 한다. 한계소비성향* 은 가난한 사람이 더 높다. 똑같은 돈이 가난한 사람에게 가면 소비를 더 하고 잘사는 사람에게 가면 저축을 더 한다. 지금은 저축이 모자라서 생산력이 떨어지는 사회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의 몫을 늘려 소비가 잘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류 이론은 아니라서 현재 논란이 있다. 핵심은 소득을 올리면 소비가 증가하고, 소비가 증가하면 수요가 증가하니까 경기가 좋아진다는 논리다. 결과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진우 소득이 늘어나면 많이 쓸 것 같은데 아닐 수도 있나?
김태일 경우의 문제다. 노동의 몫을 늘리고 자본의 몫을 줄였다고 치자. 자본 입장에서는 이익이 줄어들어도 수요가 증가하면 재고가 팔리니 투자를 늘릴 수 있다. 또는 자본 몫이 줄어들어 투자를 덜 할 수도 있다. 수출은 문제다. 노동 몫이 늘어나고 자본 몫이 줄어드는 건 인건비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임금 상승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니 해외로 옮길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전 세계의 주류는 아니지만 불평등이 성장을 저해한다는 데는 이견이 적다. 국제노동기구(ILO),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모두 동의하는 바다. 내 생각도 다르지 않다. 앞으로는 성장전략을 펼치되 양극화를 줄여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동안 대기업을 키우고 수출을 유도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양극화가 심해졌다. 이제 어떤 성장전략을 취하든 소득을 중요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진우 성장전략은 노동소득을 늘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일 수 있을까?
김태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의미 있다. 각 부문에서 공정성을 강화하는 거다. 물론 단번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다음 필요한 게 정부 역할이다. 서구에서 말하는 소득주도성장에는 정부 역할이 없다. 복지 지출이 너무 많아서다. 우리나라도 복지 지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부족한 게 사실이다. 교육, 주거, 의료, 노후 등이 더 나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람들이 밥벌이를 하면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역할, 그게 정부의 역할이다.
이진우 교육, 주거, 교육을 복지 차원에서 정부가 접근하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노동자 소득이 늘어야 한다’는 데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방식의 차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의 방식은 현재 최선의 선택지인가?
김태일 최저임금을 두고 논란이 있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자영업자가 많은 탓도 있다. 속도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올리며 저임금 노동자를 위해 근로장려금* 제도를 앞당겨 확대했다.
이진우 최저임금 보장을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절반이 그러더라. ‘정권 초기에 올리지 않으면 언제 올리냐’ 또는 ‘우리나라에 저임금 노동자가 워낙 많아 최저임금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들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최저임금 인상 말고 또 뭐가 있는가’라고. 최저임금이 없는 나라도 꽤 있다. 재화의 가격이 알아서 결정되듯 임금도 알아서 결정되지 않을까? 최저임금, 꼭 필요한가?
김태일 필요하다. 우리가 말하는 시장경제의 질서를 위한 거다. 시장 질서가 공정하게 돌아가야 경제도 잘 돌아갈 수 있다.
이진우 교수님은 어떠한 처방을 내릴지 궁금하다. 사람에 비유하자. 경제의 식도가 꼬여 있어 풀어주면 되는지, 수술을 해서 잘라내면 되는지, 노화 현상이라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지 상황에 따라 치료법도 목표도 달라질 수 있다.
김태일 대한민국 경제는 1960년대부터 엄청 빠르게 성장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구조 변화에 잘 대응했는지 모르겠다. ‘이것’만 해결해서 경제성장을 이루면 좋겠지만 그런 건 없다. 다만 방향과 인식은 명확히 해야 한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경제정책 방향으로 설정했는데 여기에는 동의한다. 혁신을 통해 수요공급을 늘리고 사회구조를 공정하게 하고 소득을 중시하는 것이다. 하나만 할 수 없다. 모두 해야 하는데 소득주도성장만 부각된 것 같다. 성장하면서 양극화를 보완하는 정책으로 가야 한다.
이진우 공정경제를 이야기하는데 개선해야 할 불공정은 무엇이 있을까? 대기업의 가격 후려치기를 대표적 불공정으로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도 대기업에 납품하지 못해 난리다. 문제라고 인식하면 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상식대로라면 그렇게 불공정으로 괴롭히면 다들 안 하려고 하니까 대기업이 돈을 더 주면서 납품받으려고 해야 하는 게 맞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구어로 생각하는 불공정과 실제 불공정이 다르면 이 문제를 풀다가 진짜 불공정에 못 갈 수 있다.
김태일 대기업과 중소기업 하청 문제는 중요하다. 일감 몰아주기도 그렇다. 오랜 관행이 고착되면 그 자체에서 안정이 생겨버린다. 아이러니하지만 그걸 깨면 불안정해진다. 그에 대한 답은 단계적 개선에 있다. 만족할 답은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에 그런 부분이 많다. 한 번에 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시장에서 정부 역할은 기회 개방과 공정 경쟁
이진우 노동자 월급이 줄었고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었다. 그런데 자영업도 포화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기업이 충분히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됐을까.
김태일 서비스업 문제다. 특히 보건, 오락 등 분야에서는 규제를 풀고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초·중·고 교육이 아니라 새로운 직업에 대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새로운 서비스 부문 일자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좀 받아보자.
김재현(서울대 경제학과 2학년) 직업을 옮길 때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데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 입장에서 직업교육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해외에서는 직업 간 이동이 쉽고 그 과정에서 교육이 잘돼 있다고 들었다.
김태일 대표적으로 덴마크가 유연안정성*이 높은 나라다. 우리가 90대까지 살고 70대까지 일해야 한다면 소득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직업역량 교육이 중요하다. 또 실업급여를 주며 직업훈련을 통해 기술을 갖추게 한다. 거기에 맞는 일자리도 제공한다. 우리도 하고는 있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앞으로 사회구조는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도 중요시할 부분이라고 본다.
강보훈(홍익대 경영학과 4학년) 점차 1인 제조업 시대가 도래한다고 들었다.
김태일 1인 제조업 시대라는 건 다종다양 소규모 산업이 발전하는 형태다. 혁신성장의 중요한 부분이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있고 소규모 회사는 작은 아이디어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 공정한 경쟁과 기회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포용경제의 개념이기도 하다.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은 기회가 개방되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혁신에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격차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혁신에 성공한 사람은 보상받게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재기의 발판을 제공하는 것, 그게 정부의 역할이다.
이진우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김태일 원래 왕도는 없다. 쉬운 길이 없다는 말이다. 정책은 혁명이 아니다. 조급증을 내려놓자.
이진우 하긴 왕도가 있다면 할 일은 안 하고 그 방법만 찾아다닐 거다. 그러나 왕도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래프는 임금을 오름차순으로 나열했을 때 상위 10%와 하위 10%의 임금차가 몇배인지를 보여준다. 그래프에 따르면 한국은 임금차가 5배에 가까워 이스라엘과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이 심한나라다.
ⓒ2014년 전일제 근로자 기준, 칠레(2015), 스웨덴(2013), 프랑스·스페인(2012), 이스라엘(2011) 자료
자료│OECD, http://stats.oecd.org 해당 항목에서 발췌 / 김태일, <한국 경제,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코난북스, 2017.
‘한국 경제 재탐색’을 마치고,
청년 경제학도는 이렇게 생각한다!
▶ 구주은·김재현 ⓒC영상미디어
“탄탄한 중소기업 지원책 필요해”
구주은 숙명여대 경제학과 2학년
평소 학교에서 이론을 중심으로 배우다가 살아 있는 경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민간 경제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시작했다. 특히 최저임금 분야는 직접적으로 와닿았다. 요즘 대학생들 아르바이트 하나씩은 한다. 친구들은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좋아했는데 영세 자영업자를 보면 동시에 마음이 불편했다. 정부에서 카드 수수료 인하, 상가계약 청구기간 연장 등을 병행한다고 들었는데 이 부분이 정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또 한 가지, 청년 일자리 문제도 관심이 많다. 청년들이 대기업 위주로 가려고 하는 이유는 중소기업이 겪는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 문제가 해결되고 중소기업이 탄탄해질 수 있는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청년들도 망설이지 않고 중소기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일자리 전환 직업교육 확대돼야”
김재현 서울대 경제학과 2학년
경제학을 전공하며 인간 소외의 다양한 국면에 관심을 갖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도 그렇다. 정규직 전환은 일자리의 기간뿐 아니라 대우가 달라지는 걸 의미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영역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들 수는 없다. 북유럽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개념 자체가 없다고 한다. 마찰적 실업이 다양한 이유로 발생함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플랫폼이 잘돼 있어 그 부담이 적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비정규직을 정규직 일자리로 전환할 때 플랫폼이 필요하다. 직업훈련도 그 일환이다. 택배업체에서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육체적으로 꽤 힘들고 노동 강도에 비해서는 임금도 낮았다. 그러나 생계에 치여 직업 전환이 어려워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중년층도 있었다. 실질적으로 일자리 전환이 필요한 중·장년층 직업교육이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 강보훈·김주은 ⓒC영상미디어
“우리 경제정책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
강보훈 홍익대 경영학과 4학년
현재 내 삶은 최저임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고 방관해서는 안 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어느 순간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이다. 모두가 내 문제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어떨까.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논란은 있지만 기존 성장의 방식이 한계에 부딪힌 건 사실이다. 우리 경제정책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데 소득주도성장은 이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 것 같다. 김태일 교수님도 짚었듯 중요한 건 양극화 해소다. 지금 하느냐, 나중에 하느냐의 차이지 방향은 옳다고 생각한다. 과거처럼 모두가 내일의 삶이 나아질 거란 희망을 가질 수 있길 기대한다.
“혁신성장 주도할 수 있는 스타트업 지원 늘어나”
김주은 숙명여대 경제학과 2학년
‘응답하라 1988’에 비유해 우리 경제성장 과정을 묘사한 게 재미있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그동안 저소득층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은 했지만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는 몰랐다. 경제 구조적 문제와 연결해 고민하는 기회였다.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세 가지 방향에서 소득주도성장만 부각된 것 같다. 현재 한국 경제가 호황기는 아니라고 보는데 성장에 방점을 둔 경제정책을 펼쳐갔으면 좋겠다. 경제 논리대로라면 현재 돈을 잘 버는 대기업이 수출을 확대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게 맞겠지만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도 필요하다. 그 답이 혁신성장에 있다고 본다. 새로운 공급 시장을 열 수 있는 중소기업, 스타트업을 지원해 첨단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성장점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들 기업이 혁신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