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뒤에 있는 문제에 귀 기울여 주세요"
대한민국의 이름 뒤에 빠지지 않는 수식어 중 하나가 ‘한강의 기적’이다. 6·25전쟁으로 국가 기반시설이 무너진 상황에서 국민의 노력으로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놀라움을 내포한 말이다. 건국 이래 지금까지 우리 경제는 몸집이 커졌지만 경제가 성장한 만큼 국민 삶의 질도 함께 올라갔는지를 물으면 긍정적으로 대답하기 힘들다. 대다수 국민이 ‘저녁이 있는 삶’, ‘공존과 상생의 사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질적 성장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이유다.
정부 역시 양적 성장 중심의 국정운영에 한계를 인식하고 ‘사람중심 사회’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와 함께 9월 6일 ‘포용국가전략회의’를 열어 국민 모두가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로 가는 로드맵을 논의했다. 포용국가전략회의는 역대 정부 중 최초로 열린 사회 분야 전략회의다.
회의에 참석한 관계부처와 국책연구기관은 ‘문재인정부 포용국가 비전과 전략’을 발표하며 포용과 혁신의 가치에 중점을 둔 사회정책 3대 비전과 9대 전략을 제시했다. 사회정책의 3대 비전은 ▲사회통합 강화 ▲사회적 지속가능성 확보 ▲혁신능력 배양 및 구현이다.
사회통합 강화는 소득, 젠더, 교육, 주거 등 삶의 기본 영역의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다. 삶의 불평등을 일으키는 문제를 소득 불평등이라 보고 소득보장제도를 개혁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할 방침이다. 누구에게나 기회와 권한이 균등하게 주어질 수 있도록 공정사회로 가는 발판도 마련한다. 도시재생사업으로 구도심을 활성화하고 혁신도시 활성화 등으로 지역의 균형발전을 도모할 계획도 포함됐다.
사회적 지속가능성 확보는 저출산, 고령화, 안전과 환경 등 미래의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전략이 수립됐다. 사회서비스의 공공성과 신뢰성을 강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안과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는 구체적 방안도 수립할 계획이다. 혁신 능력을 배양하고 구현 하기 위해 인적 자본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키우는 방안을 마련한다. 또한 성인기 인적 역량을 강화하고 사람 중심의 일터로 혁신하는 전략도 추진한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높다. 말뿐인 정책이 아니라 국민이 현실에서 체감할 수 있는 ‘해결책’이 나올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민이 생각하는 포용국가는 어떤 모습일까? 독서모임 ‘선향’의 회원 일곱 명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포용국가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들여다봤다.
부모 교육이 필수인 정책이 필요해요
예전에는 아이를 기를 때 손이 부족하면 옆집에 사는 이웃도 돕고 할머니나 삼촌처럼 가족들이 함께 달려들었어요. 지금은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 극히 드물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의 발달 과정을 알고 있는 부모도 드물고 아이를 다루는 방법도 잘 몰라요. 육아로 받는 스트레스는 점점 늘어나고 아이에게 화풀이하는 부모도 생기죠. 최악인 경우 아동학대로 이어져요.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부모 교육을 모든 성인 남녀가 받아야 할 필수 교육으로 지정했으면 좋겠어요. 출산수당이나 육아수당을 받으려면 ‘부모 교육’ 이수증이 필요하다든지 각 기업에서 해마다 하는 성교육이나 안전교육처럼 부모 교육을 프로그램으로 넣는 건 어떨까요?
김봉순
다양한 분야 일자리가 늘어났으면
정부가 공공부문 서비스를 강화해 일자리를 늘린다는 말을 들었어요. 공공부문 서비스를 강화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소득신고를 허위로 하는 것처럼 나라에서 제공하는 복지서비스를 부당하게 취득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이런 사람들을 제대로 찾아 올바르게 복지서비스를 집행하려면 공무원 수가 늘어나야 하는 것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으로는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지금도 온 나라의 젊은이가 공무원시험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데 여기 일자리가 늘면 더 심해질까 봐 걱정이에요. 젊은 세대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해야 우리 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질 텐데 말이죠. 공무원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 기술과 산업부문 일자리도 같이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심명숙
어린이 안전사고 줄일 근본 대책을 마련해주세요
요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차 안에서 아이가 방치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거 같아요. 뉴스 댓글이나 주위의 반응을 보면 담당교사의 부주의를 탓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제가 아이를 어린이집도 보내보고 유치원도 보내봤는데 보육교사가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아요. 매일 아이들 알림장을 쓰고, 수업 준비를 하고, 청소도 하고, 부모들의 연락에 일일이 답도 해야 하고요. 늘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보니 이런 안전문제를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교사가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확보된다면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을 거예요. 교사당 돌보는 아이 수를 제한하거나 보육교사의 일을 법적으로 명확히 정해놓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되면 안전사고도 줄고 보육의 질도 더 높아질 거예요.
남우연
남녀가 아닌 인간으로 서로 존중하기 가르쳐야
딸 하나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어요. 얼마 전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충격을 받았어요. 1971년생인 나의 삶과 1982년생인 김지영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2000년생인 딸아이의 삶도 김지영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흘러가고 있더라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도 집에서 아들보다 딸에게 집안일을 더 많이 시키는 식으로 은연중에 딸아이를 차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런 문제를 줄이려면 남녀를 떠나서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치원에서부터 아이들에게 남자 여자를 떠나서 사람으로 태어난 이들은 모두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면 좋겠어요.
이화정
4차 산업혁명시대 직업 고민할 시간이 더 생겼으면
요즘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자유학기제’로 진로체험을 할 수 있는 수업이 따로 있어요. 그런데 이게 꾸준히 이어지지 않아서 아쉬워요. 직업이 아이들 인생을 좌지우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를 고민할 충분한 시간이 없다는 것도 안타깝죠.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할 시간보다는 책상 앞에서 시험 점수를 올리기에 급급한 게 아이들이 처한 현실이잖아요. 외국에서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인생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준다고 하더라고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 직업이 60%가 없어진다잖아요. 그럼 요즘 아이들은 다른 세대보다 직업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새로 생길 직업을 알아보고 탐구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힘도 생긴다고 생각해요.
이은미
공공기관 이전하기 전 기반시설부터 마련했으면
수도권 집중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공공기관 100여 개를 지방으로 이전한다는 뉴스를 봤어요. 서울에 너무 많은 기관이 몰려 있으니 지방 분산은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게 좀 안타까운 부분이 있어요.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활하기 불편하더라고요.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사했는데 막상 가보면 아무것도 없대요. 대형병원처럼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아서 불편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또 학군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아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결국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대요. 지역균등발전을 위해 공공기관이 이전하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고려한 기반을 먼저 닦았으면 좋겠어요.
문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