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구도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도시재생은 전국적으로 가장 관심이 높은 화두다. 과거 무조건적인 철거와 재개발 방식으로 파괴되었던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 등을 살려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도시재생은 도시의 재발견이라 불릴 만큼 신선하고 획기적이다. 도시재생이 이루어진 구도심은 얼굴을 바꾼 신도시와 달리 예전의 모습을 간직해 친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이다. 익숙함과 신선함이 적절히 조합된 장소는 명절 반나절 나들이에 안성맞춤이다. 근현대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 여행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세대 공감을 이루는 촉매제 역할도 할 것이다.
이번 추석, 과거와 현재 가치를 살려 미래로 나아가는 도시재생 여행을 떠나보자.
서울
플랫폼창동61(www.platform61.kr)
플랫폼창동61은 외관부터 눈길을 끈다. 빨갛고 파란 원색의 대형 컨테이너 61개를 마치 레고 블록 쌓듯 배치했다. 이곳에서는 공연을 비롯한 음악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음식, 패션, 전시, 시민문화 교육 등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연중 진행 중이다.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고 있지만 이곳의 핵심은 ‘음악’이다. 다른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록·국악·힙합·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매주 만날 수 있다. 특히 공연장인 ‘레드박스’는 무대에서 객석 맨 뒤까지 거리가 12.5m에 불과해 뮤지션과 관객이 함께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컨테이너로 이루어진 시설이라고 우습게 봐선 안 된다. 스피커 40개가 공연장 곳곳에 배치돼 어디서든 고품질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무료 영어교육 공간인 ‘잉글리시 북 라운지’, 패브릭 DIY 강의가 열리는 ‘소잉팩토리’, 그릇·도자기를 체험할 수 있는 ‘플랫폼 아틀리에’ 등 다양한 공간으로 꾸며져 컨테이너 사이만 오가도 지루할 틈이 없다.
주소 서울 도봉구 마들로11길 74 플랫폼창동 61
운영 오전 10시~오후 10시(월요일 휴무)
문의 02-993-0561
문화비축기지
(parks.seoul.go.kr/culturetank)
문화비축기지는 1970년대 말에 만들어진 석유비축기지를 재생해 만든 문화공원이다. 이곳은 1차 석유파동 이후 유사시 사용할 6907만 리터의 석유를 비축한 1급 보안 시설로 41년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지역이었다. 높이 15m, 지름 15~38m의 기존 유류보관 탱크 5개 중 4개가 시민을 위한 공연장과 강의실, 이곳의 역사를 기록하는 전시관으로 변신했다. 축구장 22개 크기인 14만㎡ 부지에 기존 6개의 탱크를 재활용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도시재생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문화비축기지 산업유산탐방’ 투어는 전문가와 함께 당시 석유비축기지 근로자의 시선으로 공원을 탐방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현재의 문화비축기지의 모습에서 과거와 미래를 유추해볼 수 있어 많은 이들의 구미를 당기게 만든다.
주소 서울 마포구 증산로 87
운영 연중무휴(전시관만 월요일 휴관)
문의 02-376-8410
돈의문박물관마을(dmvillage.info)
옛 돈의문(서대문)이 있던 강북삼성병원 인근 언덕에 자리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주변40여 개 건물과 골목길을 보존해 역사·문화마을로 재탄생했다. 이곳은 조선시대 한옥부터 1970년대 이후 들어선 단독주택 양옥까지 다양한 양식의 건물이 즐비해 과거의 정취를 즐기기에 좋은 장소다. 또한 22개 입주 단체·예술가·작가들로 구성된 공동체가 40여 개 오감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문화·예술 플랫폼 역할을 담당한다. 어린이, 직장인 등 시민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와인 클래스부터 미술·음악 치료 프로그램까지 내용과 분야도 다양하다. 매일 2회(화~일, 12:30/16:00) 진행되는 ‘마을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전문 도슨트와 함께 걸으며 돈의문박물관마을의 역사부터 마을 형성 과정에 얽힌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입점 예술가의 창작 현장과 운영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도 꼼꼼히 받을 수 있으니 문화·예술이 고픈 사람들은 얼른 달려가자.
주소 서울 종로구 송월길 14-3
운영 오전 11시~오후 10시(월요일 휴관)
문의 02-739-2981
세운상가(sewoon.org)
세운상가 프로젝트인 ‘다시 세운’의 핵심은 3층 높이 공중에 보행교를 설치해 보행자들의 유입과 상권 활성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세운상가는 공간의 특색에 맞게 리모델링되었는데, 특히 서울 도심부의 경관을 360도로 둘러볼 수 있는 세운옥상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올가을 세운상가 3층 서편 데크에 위치한 ‘수리수리 청음실’에서 열리는 ‘2018 세운클래식음악회’(9·10월 격주 토요일 3시)도 놓칠 수 없다. 청음실을 수제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로 세팅했기 때문이다. 세운상가의 특색이 묻어나는 음악회라고 할 수 있다. 부드럽고 다층적인 소리를 내는 진공관 앰프는 많은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지만, 높은 가격과 희귀성으로 대중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장비였다. 이번 음악회는 한국의 음악예술을 대표하는 클래식 연주자와 세운상가에서 진공관 앰프, 오디오 등을 제작하고 수리해온 기술 장인들의 만남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주소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159
문의 02-2261-4300
서울함공원
(www.seoulbattleshippark.com)
새로운 공간을 창출한 도시재생도 있다. 망원한강공원에 위치한 서울함공원은 30년 동안 임무를 완수하고 퇴역한 호위함급 ‘서울함’, 고속정 ‘참수리호’, 잠수정 ‘돌고래호’ 등 퇴역 군함 세 척을 활용해 시민들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퇴역 함정들은 동남아나 중남미에 양도해 군함으로 재사용하거나 고철 비용 2~3억 원 정도로 판매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시민들 곁에서 닻을 내려 평화와 안보를 되새기는 교육 공간으로 변신했다. 함정 세 척의 내부는 군사시설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02m 길이의 서울함 병사 공간에는 2층 침대와 실제 해군이 쓰는 베개·담요 등을 볼 수 있고, 전투식량이 있는 식당도 있다. 머리를 다듬을 수 있는 이발소와 라면·과자가 가득 쌓인 함상매점도 그대로 재현돼 해상의 군 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주소 서울 마포구 마포나루길 407
운영 오전 10시~오후 8시(월요일 휴무)
요금 성인 3000원, 어린이 1000원
문의 02-332-7500
경춘선숲길(parks.seoul.go.kr)
경춘선은 중장년층에게 추억의 이름이다. 데이트나 대학 엠티 장소로 빠지지 않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름만 들어도 아련한 옛 경춘선 구간에 조성된 경춘선숲길공원이 서울 동북부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곳은 중장년층에게 추억 여행을 떠나게 하는 곳이고, 젊은이들에게는 한적하게 산책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기차가 달리던 철교 위를 걷는 기분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봄직한 일탈이다. 경춘선숲길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실제 운행되던 무궁화호 열차다. 열차의 두 칸을 관리사무소와 주민 편의 공간으로 리모델링해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화랑대역 주변에 만든 철도공원도 빼놓을 수 없는 체험 공간이다. 화랑대역(폐역)은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으로 이곳에 경부선을 오가던 미카형 증기기관차와 수인선 협궤열차를 전시해 지나간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주소 서울 노원구 공릉2동 산 82-2
문의 02-2289-4012
서울로7017(seoullo7017.seoul.go.kr)
반세기 역사와 함께 세월의 흔적이 쌓인 서울역 고가는 지난해 5월 공중보행로로 재탄생하면서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 도시로 변화의 시작을 알린 곳이다. ‘서울로 7017’은 서울역 고가가 만들어진 1970년도와 보행길로 탈바꿈한 2017년, 고가와 이어지는 17개의 길을 의미한다. 이곳은 사용하지 않는 철길에 꽃과 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만든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를 벤치마킹해 만들었다. 밤이 되면 공중정원을 비추는 111개 통합폴에 달린 LED 조명 555개와 화분 551개를 둘러싼 원형 띠 조명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 속을 걷는 느낌을 준다. 연결 통로가 퇴계로, 남대문시장, 숭례문, 세종대로, 공항터미널, 손기정공원, 서소문공원 등 각종 명소로 연결돼 도심 여행의 중간 거점으로 삼기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주소 서울 중구 청파로 432
문의 02-313-7017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
(www.fairtalevillag.co.kr)
동심을 찾고 싶다면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이 제격이다. 낡은 건물과 노인만 남은 송월동은 2013년 구청의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2년 만에 동화 명소로 다시 태어났다. 마을은 ‘세계 명작 동화’를 테마로 도로시길, 빨간모자길, 바다나라길, 전래동화길 등 11개 다양한 길을 조성했다. 동화마을의 모든 집과 건물은 동화 속 장소처럼 꾸며졌다. 벽화에 기존 시설을 활용해 입체감을 더했다. 전봇대는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거대한 나무로가 됐고, 가스관은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 나무꾼으로 변했다. 마을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우리 전래동화로 꾸민 벽화길도 나온다. ‘박을 타는 흥부’나 ‘선녀를 훔쳐보는 나무꾼’ 같은 동화 속 주인공을 이웃 주민처럼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개항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송월동 동화마을은 그렇게 태어났다.
주소 인천 중구 자유공원서로37번길 22
문의 032-764-7494
광주
1913송정역시장(1913songjungmarket.modoo.at)
1913송정역시장은 요즘 2030세대에게 핫플레이스로 통한다. 광주 송정역 건너편에 위치한 이곳은 1913년부터 운영돼 100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곳이다. 최근 옛 모습을 살리는 리모델링 작업으로 젊음과 전통이 어우러진 명소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걷는 재미도 있지만 남도 특유의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골목 곳곳의 상점에서는 순대국밥, 인절미, 고로케, 호떡, 김부각, 수제 식혜와 양조 맥주 등 다양한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여기에 장보기의 재미도 놓칠 수 없다. 시장에는 고추, 마늘부터 영광굴비, 장흥표고, 무산 김 등 전라도의 우수 농산물로 가득하다. 특별 아이템도 눈길을 끈다. 팬시점에서 살 수 있는 ‘고백엽서’에는 전라도 사투리로 “니만 생각하믄 내 맴이 겁나 거시기해”, “니랑 있응께 시간이 요로코롬 폴세 가부럿네” 등 재기발랄한 문구가 적혀 있어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다.
주소 광주 광산구 송정로8번길 13
운영 평일 오전 11시~오후 10시(둘째·넷째 주 월요일 휴무)
문의 010-3607-6605(문자로 문의)
부산
깡깡이예술마을(kangkangee.com)
영도 깡깡이마을은 근대 조선산업의 발상지로 선박수리소와 해양 산업시설이 밀집한 부산의 대표적인 조선산업 지역이다. 이름도 생소한 ‘깡깡이’는 수리조선소에서 배 표면에 녹이 슬어 너덜너덜해진 페인트나 조개껍데기를 망치로 두드려 벗겨낼 때 ‘깡깡’ 소리가 나서 붙인 이름이다. 깡깡이마을은 6·25전쟁 이후 1960~1970년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고물상부터 40년 된 다방까지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마치 과거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선원들로 붐비던 옛날 다방에는 요즘 쌍화차를 주문하는 젊은 친구들로 북적인다. 이들에게는 달걀노른자를 띄운 쌍화차도 신기한 문화상품이기 때문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깡깡이마을만의 특색을 잘 담아내 선박 문화와 예술의 접목을 살펴볼 수 있는 귀한 곳이다.
주소 부산 영도구 대평로27번길 8-8
문의 051-418-1863
대구
달성토성마을 골목길(toseong.com)
대구 서구 비산2·3동 주택가는 그동안 국가지정문화재인 ‘달성토성(달성공원)’을 끼고 있어 개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재개발 사업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폐·공가가 늘어나는 도심공동화 현상을 막은 것은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이 나서 골목길 화단을 만들고 아기자기한 화분으로 ‘골목정원’을 조성했다. 마을을 꾸미는 벽화도 전문가 도움 없이 동네 아이들이 직접 그렸다. 골목을 따라 정원이 번져나가자 주민센터는 구간마다 이름을 붙였다. 물레방아정원, 터널정원, 포토존정원에 틈새 공간을 활용한 땅콩정원 등 특징을 살린 골목정원이 탄생했다. 쓰레기로 몸살을 앓던 공터는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소공원이 됐다. 처음 9개의 골목으로 시작해 지금은 40여 개가 넘는 골목정원이 주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열대어 어항을 발견하기도 하고 주먹만 한 한라봉이 달린 화분을 발견할 때도 있다. 서툰 솜씨지만 골목마다 정겹고 소소한 즐거움이 묻어난다.
주소 대구 서구 국채보상로81길 43
문의 053-663-3305
순천
청춘창고(chungchunbox.allplaces.kr)
청춘창고는 도시재생과 청년 취업,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공간이다. 전남 순천시는 80년 된 미곡 보관창고를 리모델링해 청년들에게 저렴하게 임대(연 15만 원)하고 청년창업 인큐베이터, 문화행사 등을 지원하는 청년문화 중심의 복합상권으로 조성했다. 순천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청춘창고는 녹색 농협 간판을 그대로 두어 세월의 흔적을 남기고 내부 분위기를 젊은 감각으로 꾸몄다. 점포 옆에는 다양한 버스킹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설치돼 식사를 하면서 공연도 즐길 수 있다. KTX 순천역과 가깝고 맛집과 카페 등이 다수 입점해 이제는 젊은 여행자들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34명의 청년이 운영하는 22개 점포 외에도 청년커뮤니티, 청년창업가 육성, 문화가 있는 장소 등으로도 활용해 취업·창업 정보 제공과 상담, 버스킹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지역 내 청년창업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청춘창고는 단순히 식·음료 상품만 파는 곳이 아니라 청년들의 소중한 꿈을 키워가는 곳이기도 하다.
주소 전남 순천시 역전길 34 순천농협
운영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월요일 휴무)
문의 061-746-96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