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추억의 ‘아폴로’가 부활했다는 뉴스를 잡지에서 보았다. 사진으로 아폴로를 보자 즉각 그 맛이 떠올랐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싸구려 맛이다. 깊이 없이 그저 아이들의 입맛에 아첨하는 시고 달달한 맛으로 기억한다. 일종의 인공 과일 맛이다. 먹는 방식 역시 저급하다. 빨대를 이로 누른 뒤 그 속에 든 음식물을 빼내는 방식이다. 맛도 맛이지만 빨대 속 과자를 이로 긁어 빼먹는 재미가 쏠쏠해서 더욱 인기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짧은 빨대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어른들이 담배 피우는 걸 흉내 낼 수도 있다. 맛과 먹는 과정 모두에서 자극과 쾌락을 주는, 진정한 식품인 것이다. 그렇게 봉지 안에 든 빨대들을 하나씩 먹어가다 보면 이내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 1 디자인 스튜디오 얌얌타운이 부활시킨 추억의 식품 ‘아폴로’
2 얌얌타운이 ‘불량상회 1969’라는 프로젝트로 아폴로를 비롯해 촌스럽다고 여겨졌던 B급 패키지 감성을 되살렸다. ⓒ김신
하지만 그 시고 달달한 맛, 빨대 속을 빼먹는 재미를 알기 전 그 생김새가 먼저 아이들의 눈을 자극해야 한다. 경험의 시작은 맛도 씹는 것도 아닌 보는 것이다. 그것을 보았을 때 먹고 싶다는 욕망을 일으켜야 한다. 특히 아이들에게 말이다. 아폴로를 개발한 어른들은 이 과자의 패키지와 빨대, 빨대의 색상, 이 일련의 디자인이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아폴로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바로 색상이 아닐까? 빨대마다 다른 알록달록한 색상! 어른들에게도 호소력 있는 이 색상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화려한 색상은 늘 아이들의 것으로 여겨졌다. 조선시대 어른들은 모두 흰옷만 입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색동저고리 옷을 입혔다. 어른을 위한 색동저고리가 흔하지도 않았겠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어른이 그런 옷을 입으면 주위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가보라. 건물 벽을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한 것을 볼 수 있다. 유독 초등학생용 학용품만 다채로운 색상을 아끼지 않고 쓴다. 우리가 흔히 빨간색을 여성의 기호로, 파란색을 남성의 기호로 사용하는 것처럼 여러 색상을 한꺼번에 쓰는 것은 어린이의 기호로 여긴다.
여러 색이 한꺼번에 모여 있으면 어른들은 단번에 유치하다고 판단한다. 유치하다는 말은 ‘덜된 어른’이라는 뜻이다. 그 말은 아이들은 분명 다채로운 컬러를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아이 때는 컬러풀하고 화려한 색상을 좋아하다가 어른이 되면 그것을 싫어하게 된다고 말이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일까? 아니면 사회의 교육에 따른 것일까? 다시 말해 어른이 되어 화려한 색상을 저급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일까? 아니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일까? 나는 후자라고 확신한다.
사람들은 화려한 색상 또는 다양한 색상의 어우러짐을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회에 덜 길들여진, 즉 아직 본능에 더 좌우되는 아이들이 그것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그것은 사람이 다채로운 색상을 좋아하도록 설계되었음을 증명한다. 마치 식물이 본능적으로 빛을 향하듯이 사람 역시 화려한 색상에 이끌린다. 그것은 생명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봄에 피는 꽃 같은 것이다. 겨울이 회색이라면 봄은 색이 만발하는 시기다. 누구나 겨울보다 봄을 좋아한다.
▶ 일본 후쿠오카의 한 유치원은 주변 건물들과 대조적으로 화려한 컬러를 자랑한다.ⓒ김신
그런데 왜 어른들은 본능을 거스르고 그것을 유치한 것으로 치부하게 되었을까? 먼저 경제적인 문제가 따를 것이다. 자연에서도 화려한 컬러는 큰 비용이다. 꽃이 오랫동안 필 수 없는 이유다. 인류 문명에서도 색을 만드는 건 비용이 든다. 기술이 덜 발달한 과거에는 더욱 그랬다. 유화에서 성모의 옷 색상으로 주로 표현되는 울트라마린은 금보다 비쌌다. 화려한 색의 염료도 마찬가지다. 이런 비용을 감안하면 화려한 색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은 재산의 낭비를 뜻한다. 그러니 철없는 아이들에게나 그런 호사를 누리게 한 것이다.
또 하나는 화려한 색상은 무절제와 과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화려한 색상을 즐기는 것은 부를 자랑하는 것과 같다. 자기보다 돈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부유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은 모더니즘 시대에 들어와 부도덕으로 비난받았다. 촌스러운 졸부들이나 하는 짓으로 치부하며. 단색과 무채색 그리고 채도가 낮은 색은 모더니즘 시대에 가장 사랑받는 색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흰색과 검은색은 가장 고급스러운 색으로 각광받았다. 컬러가 없는 색에는 절제와 지성의 의미가 덧붙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이란 이런 절제와 지성이 결여된 어린아이의 성질과 비슷한 것이다.
이런 사회적 기호의 성립은 사람의 본능까지 바꿔서 화려한 색상은 유치하고 촌스러운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그것을 멀리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아폴로처럼 아이들의 눈을 유혹하는 화려한 디자인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그 상품에 불량이라는 꼬리표를 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폴로는 어른들의 그런 선입관과 달리 식약처의 인가를 받은 식품이다. 그러니 그것을 몰래 즐겼던 오늘날의 어른들에게는 아폴로의 부활이 그저 반갑고 정답기만 하다. 지금의 어른 역시 화려한 색상을 어린이의 기호로 여기도록 길들여졌지만, 아폴로 같은 추억의 사물에 대해서는 그 색상에 무한히 관대해진다.
김신은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