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종합 2위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과 선수단의 표정이 어둡지만은 않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은 달라진 스포츠 의식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많은 스포츠팬들은 경기력 자체에 집중하며 선수들이 흘렸을 땀과 눈물에 박수를 보냈다. 선수들은 승패를 떠나 빛나는 스포츠맨십을 발휘했다. 무엇보다 국제종합대회 사상 남북단일팀이 첫 메달을 따낸 건 한국 스포츠가 얻은 큰 소득 중 하나라는 평가다.
▶ 1 김서영이 8월 24일(이하 현지 시각)여자 개인혼영 200m 결승에서 획득한 금메달을 든 채 미소 짓고 있다. ⓒ연합
▶ 2 한국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 출전 선수들이 9월 3일 중국과 경기에 한창이다.
3 8월 24일 펜싱 여자 에페 단체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승리한 한국 강영미(오른쪽)가 최인정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4 손흥민이 9월 1일 남자축구 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2대 1로 승리한 뒤 김학범 감독을 안고 환호하고 있다. ⓒ연합
지난 2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뿌리 내린 남북단일팀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꽃을 피웠다. 단일팀은 카누·조정·여자농구 세 개 종목에 출전, 일부 메달 사냥에 성공했다. 여자 200m에서 동메달로 단일팀의 경기력을 일찍이 입증한 카누 용선 단일팀은 여자 500m에서 금빛 메달을 거머쥐며 국제종합대회 시상식 최초로 한반도기가 가장 높이 펄럭이는 영광의 순간을 마주했다. 시상식장 곳곳에 울려 퍼진 ‘아리랑’은 형용할 수 없는 묵직함을 안겼다. 남자 선수들도 힘을 더했다. 남자 10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낸 것. 아쉽게도 조정에선 단일팀의 합작 메달이 나오지 않았지만 여자농구 단일팀이 은메달을 획득하며 끝을 장식했다. 단일팀이 대회에서 거둔 총 4개의 메달은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따로 집계됐고 종합순위는 28위였다. 45개 참가국 중 금메달을 1개도 가져가지 못한 국가가 15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일팀의 성적은 기대 이상이다.
종목 다변화 필요성 재확인
대회 직전까지 단일팀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함께 호흡을 맞춰보는 기간이 너무 짧았을뿐더러 경기 용어도 서로 달라 과연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민족이라는 동질감은 분단의 벽을 허물기에 충분했다. 여자농구 단일팀과 중국의 결승전에서 북한 로숙영과 한국 박지수의 찰떡 호흡은 단일팀 구성의 좋은 예로 꼽힌다. 평창대회에선 여자아이스하키 한 종목에만 단일팀이 구성됐고 참가에 의미를 뒀다면 아시안게임은 달랐다. 실질적인 성과까지 내며 단일팀의 지속 가능성을 높였다.
남과 북은 경기장 바깥에서도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남북 선수단은 개회식과 폐회식에서 한반도기 아래 공동으로 입장했는데 이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이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향후 국제대회에서 남북 공동입장과 단일팀 구성은 “매우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이라며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단일팀 구성에 지지를 보냈다.
단일팀 못지않은 감동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도 전해졌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인기 종목에 가려져 있던 비인기 종목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이름조차 생소한 종목의 태극전사들은 낮은 관심과 좁은 저변을 딛고 값진 메달을 수확했다. 카바디가 그 대표 종목이다. 카바디는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부터 정식종목으로 치러졌고 우리나라는 2010 광저우 대회부터 출전했지만 대중의 관심은 턱없이 부족했다. 남자 대표팀이 2014년 인천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여전히 실업팀이 전무하고 전용구장조차 없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종주국 인도를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키더니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결승전 방송 중계조차 되지 않은 무관심 속에서 일궈낸 은메달이었다.
세팍타크로도 예외는 아니다. 카바디와 비교하면 국내 인지도가 높고 역사도 길다지만 국민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이 종목의 성과는 보다 탄탄했다. 여자 단체전과 남자 단체전에서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세팍타크로의 경우 실업팀 선수가 40여 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동남아 강호들을 제치고 얻어낸 값진 메달이었다.
이러한 성과는 반가운 소식임과 동시에 ‘종목 다변화’가 국내 스포츠계의 해묵은 과제임을 재차 확인시켰다. 특정 종목에 집중된 지원이 그렇지 못한 종목에도 고루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해단식에서 “꾸준한 투자와 지원으로 메달 획득 종목을 다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효자 종목으로 일컬어진 우리 강세 종목은 이번 대회에서 상대적으로 주춤했다. 국가대표 선발이 더 어렵다고 할 정도로 한국의 대표 메달밭으로 통하는 양궁은 금메달 4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로 대회를 마쳤다. 당초 목표였던 8개 종목 석권에는 크게 모자란 성적이었다. 태권도는 금메달과 은메달 각각 5개, 동메달 2개를 거뒀으나 종주국의 명성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육상과 수영 등 기초 종목에서의 부진 또한 해결돼야 할 문제점이다. 우리나라는 육상에 걸린 금메달 48개 중 1개, 수영(경영)에서는 금메달 41개 중 1개를 가져오는 데 그쳤다. 반면 중국은 육상에서 12개, 경영에서 19개를 가져갔고, 일본은 육상에서 6개, 경영에서 19개의 금메달을 챙겼다. 우리나라의 전통 강세 종목들이 집중 견제를 받으며 예년과 같은 압도적인 성적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해진 기초 종목의 부실함은 종합 순위에 악영향을 끼친 셈이다.
향후 국제대회를 위해선 안정적인 세대교체를 이룰 수 있는 선수 발굴도 중요 요소다. 이기흥 회장은 “젊은 선수층이 얇아지고 운동선수를 기피하는 사회 분위기로 유망주 발굴이 어렵다”며 체육 저변 넓히기와 선수 발굴이라는 두 과제를 해결해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게임의 스포츠화’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특기할 만한 점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마니아의 전유물, 유해한 콘텐츠로 통용됐던 게임이 스포츠 종목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 시범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기존 전통 스포츠를 뛰어넘는 인기를 과시했다. 국내 지상파에서 생중계된 것은 당연하고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연관 검색어가 종일 포털사이트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다만 게임을 근간으로 하는 경기인 만큼 보다 대중적이지 못한 스포츠임은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올 아시안게임 e스포츠경기는 더 많은 사람이 e스포츠를 접하는 기회가 됐다. 중계 방송사는 e스포츠를 처음 보는 시청자를 위해 게임 화면 안에 추가 정보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접근 방식을 적용하기도 했다.
우리 선수들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대표팀은 6개 세부 종목 가운데 리그 오브 레전드와 스타크래프트 2 본선에 진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의 성적을 기록했다. e스포츠 금메달리스트는 병역면제, 연금 등 정식정목 우승자의 혜택을 받진 못하지만 상징적 의미가 크다.
정식 스포츠로 발전 중인 e스포츠에서 한국 첫 금메달이기 때문이다.
e스포츠 대중화 계기
향후 국제스포츠대회에서 e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많아질 전망이다. 이 종목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2024 파리 올림픽 종목에도 포함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국제종합스포츠대회에 대한 관심이 과거만 못한 요즘, 전 세계 젊은 세대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흥행카드’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게임을 스포츠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견해와 더불어 e스포츠가 갖는 근원적 문제가 거론된다. 오랜 기간 형태를 갖춰온 전통 스포츠와 달리 e스포츠는 그 바탕이 게임의 인기다. 시대에 따라 인기 있는 게임이 다르고 수많이 게임이 탄생하고 사라지는 가운데 어떤 게임을 국제대회 종목으로 채택할 것인지 논란이 있다. 이번에 치러진 6개 종목도 4년 후엔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다. 그럼에도 e스포츠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e스포츠 종주국’인 우리나라의 역할은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아시안게임 출전국 국민이라면 대회 기간 동안 울기도 웃기도 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베트남 국민은 자국 축구 대표팀이 보여준 기적에 행복을 감추지 못했다. 베트남 남자 축구팀은 아시안게임 사상 최고 성적인 4위로 대회를 마쳤다. 최초 8강, 4강 진출에 이어 내친김에 메달권 진입까지 노렸으나 간발의 차로 뜻을 이루진 못했다. 메달 사냥에 실패했지만 박항서 감독과 선수단을 향한 베트남 국민의 애정은 뜨거웠다. 베트남 현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는 박 감독에 대한 감사와 격려 글로 가득했고 귀국 현장은 온통 환호의 목소리에 휩싸였다.
한국인 감독이 만들어낸 신화에 우리 국민의 관심도 높았다. 일종의 자랑스러움이었다. 우리나라와 베트남 축구 준결승전에 더한 긴장감이 느껴진 이유이기도 하다. 준결승전 당일 선수들이 골 넣는 장면 외에 화제가 된 모습도 있다. 손흥민이 작전 지시 중인 박 감독 옆으로 다가섰는데, 그를 나중에 발견한 감독이 웃으며 그의 머리를 만졌던 것. 이후 박 감독은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인사차 머리를 쓰다듬었다”며 유쾌한 후일담을 전했다.
K팝이 물들인 폐회식
2018 아시안게임 폐회식은 조금 특별했다. 국내 가수 슈퍼주니어와 아이콘이 폐회식 초대 가수로 초청돼 축하공연을 펼쳤다. K팝 스타들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K팝이 폐회식을 뜨겁게 물들인 모습이었다.
아이콘이 히트곡 ‘사랑을 했다’의 첫 소절을 부르며 무대에 등장하자 관중은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중앙무대에 있던 선수들과 자원봉사자 대다수는 무대로 가까이 다가가 공연 사진을 찍는 데 집중하기도 했다. 한국어 가사임에도 아이콘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중도 많았다.
피날레는 슈퍼주니어가 장식했다. 그들은 히트콕 ‘쏘리 쏘리’, ‘미스터 심플’ 등을 부르며 폐회식장 전체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현지 유명 매체들이 본 공연 전부터 슈퍼주니어의 인터뷰를 집중 보도하는 등 K팝 열풍은 곳곳에서 표출됐다.
국내서 열리는 하반기 스포츠 대회는
2018창원 세계사격선수권대회
국제사격연맹(ISSF)이 주관하는 세계사격선수권대회는 4년마다 열리는 가장 권위 있는 국제사격대회다. 대다수 개최지가 유럽이었고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유일한 개최국이다. 1978년 서울세계사격선수권대회 이후 40년 만에 창원에서 열리는 2018 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한창이다. 120개국 4000여 명의 선수들은 8월 31일부터 9월 15일까지 경기를 치른다. ISSF가 공인하는 경기 종목은 소총, 권총, 산탄총, 러닝타켓 총 네 개이며 이들 종목은 사격 거리별, 자세별 세부종목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는 진종오와 이종준, 김준홍, 정은혜, 추가은 등이 출전한다. 추가은은 10m 공기권총 혼성 종목에서 주니어 세계신기록과 금메달을 기록하는 등 주니어 선수들의 활약으로 우리나라 사격의 밝은 미래가 전망된다.
이번 대회의 슬로건은 ‘Aim Your Dream in CHANGWON(내일의 꿈을 쏴라, 창원에서 세계로)’으로 대회가 글로벌 축제의 장이 되길 기원하는 동시에 창원이 국제 스포츠 관광도시로 도약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은 지난 9월 5일 치러진 경기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추가하며 이날 기준 총 메달 15개, 종합 순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전국체전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체육대회(이하 전국체전)가 찾아온다. 10월 12일부터 18일까지 익산시 등 전라북도 14개 시군이 이번 전국체전의 무대다. 전국체전은 국민에게 스포츠를 보급하고 스포츠 정신을 고취, 건전한 사회 기풍을 조성하는 게 목적이다. 그렇게 시작된 전국체전은 올해로 99번째를 맞는다. 올해 구호는 ‘비상하라 천년전북, 하나되라 대한민국’. 10월이면 정도 천 년을 맞는 전라도의 역사적 의미를 더했다.
2만여 명의 선수들은 47개 종목(정식 46개·시범 1개)을 두고 시도 대항전을 펼친다. 각 종목별 3위까지 메달이 수여되는 동시에 종합순위는 시도별로 결정된다. 이때 시도별 채점은 경기마다 획득한 점수의 총계로 매긴다. 지난해에는 경기도가 우승을, 충북이 준우승을, 서울이 3위를 차지했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