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억 아시아 스포츠인의 축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하 아시안게임)이 8월 18일 오후 7시(한국 시각) 개막식을 갖고 16일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겔로라 붕 카르노(GBK)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식은 높은 산과 폭포를 배경으로 인도네시아 특유의 식물과 꽃들로 장식된 특설무대에서 장장 5시간에 걸쳐 펼쳐졌다. 스타디움 내부는 마치 인도네시아의 방대한 밀림을 옮겨놓은 것처럼 푸른 숲으로 장식됐다. 이번 대회의 모토인 ‘아시아의 에너지(Energy of Asia)’를 보여주기 충분했다. 무엇보다 개막식에서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아리랑’ 선율에 맞춰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한 남북한 선수단이었다. 남북단일팀이 포함된 한국 선수단은 선수와 코치진 등 39개 종목에 1044명이, 북한 선수단은 11개 종목에 168명의 선수를 파견됐다.
남북한 선수들은 밝은 표정으로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섰고,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남북교류가 기대된다. 남북한은 ‘코리아(COR)’ 단일팀을 여자농구, 카누 드래곤보트, 조정 3개 종목에서 구성했기 때문이다.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할 북한 선수들은 지난 7월 29일 중국 베이징을 출발해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카누 드래곤보트 18명, 조정 8명, 농구 4명 등 종목별 선수단 30명에 지원인원 4명을 포함 총 34명이었다.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하는 여자농구와 조정 선수들은 8월 13일,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6회 연속 2위 수성을 노리는 한국 선수단은 8월 1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카누 단일팀은 8월 21일 출국할 예정이다. 올해 초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다시 시작된 남북 화해의 흐름을 보여줬다면, 이번 아시안게임 단일팀은 함께 성과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줄 전망이다. 한 걸음 진일보한 행보다.
여자농구, 남북단일팀 사상 첫 승리
남북 여자농구가 종합대회 단일팀 사상 첫 승리를 안겼다. 남북 여자농구 단일팀은 8월 15일 밤 8시 30분(한국 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GBK 바스켓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조별리그 1차전에서 홈팀 인도네시아를 108 대 40으로 완파했다.
▶ 8월 1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A조 예선 남북단일팀 대 인도네시아의 경기. 108-40으로 대승을 거둔 단일팀 선수들이 경기 종료 후 종합대회 단일팀 사상 첫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연합
현재 단일팀에는 로숙영, 장미경, 김혜연 등 북한 선수 3명과 정성심 코치가 있다. 여자농구 남북단일팀 이문규 감독은 주장 임영희와 박혜진, 김한별, 박하나 그리고 로숙영까지 남측 선수 4명, 북측 선수 1명으로 주전 라인업을 꾸렸다. 관전 포인트는 지난해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안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로숙영을 비롯해 북측 선수들이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던 단일팀에서 어느 정도의 기량을 발휘할지 여부였다. 결과는 역시 로숙영이었다. 로숙영은 능수능란하게 공격 전개를 도왔고, 이날 22점 8리바운드 5어시스트 4스틸 2블록슛을 기록해 단일팀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다.
종합대회 단체 구기 종목에서 남북단일팀이 구성된 것은 올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이후 여자농구가 두 번째다. 여자 아이스하키는 세계의 높은 실력의 벽에 부딪혀 5전 전패로 아쉽게 마무리했기 때문에 여자농구의 사상 첫 단일팀 승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값지다. 남북단일팀으로 처음 출전하는 만큼 조직력이 관건이었다. 이문규 감독은 대회 출전에 앞서 “북측 선수들과 함께 훈련한 지 채 2주가 안 됐지만, 3~4주는 호흡을 맞춘 것처럼 팀 분위기가 좋았다”며 “금메달을 목표로 매 경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경기에 임하는 소감을 밝혔다.
인도네시아를 꺾고 기분 좋은 출발을 한 여자농구 단일팀은 큰 이변이 없는 한 1위로 결선에 오를 전망이다. FIBA 랭킹 15위인 한국이 첫 경기에서 만난 인도네시아는 FIBA 랭킹 58위, 대만은 52위, 인도는 45위, 카자흐스탄은 45위 등 순위가 아래인 팀들과 맞붙기 때문이다. 다만, 이후 결승 토너먼트가 난항이다. 6강 토너먼트 이후 4강에서 중국(FIBA 랭킹 10위) 또는 일본(FIBA 랭킹 13위)을 만나게 될 확률이 높다. 이 감독이 경계 대상으로 뽑은 팀들이다. 이 감독은 “북한 선수들이 부족한 부분을 알뜰하게 메워주고 있다”면서 “로숙영과 장미경은 당장 프로리그로 데려와도 최상위급 선수다. 골밑싸움뿐 아니라 내·외곽에서 잘해줬다”고 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다면 우리나라 여자 농구대표팀은 2014년에 이어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메달 가능성 높은 카누, 금빛 노를 젓다
단일팀 내부적으로 가장 기대감이 큰 종목은 카누다. 카누는 드래곤보트 종목에서 남북 선수들이 6명씩 남·여 200m와 500m, 남자 1000m에 출전한다. 드래곤보트는 20여 명의 패들러가 고수의 북소리에 맞춰 한 동작으로 노를 저어 수면 위를 질주하며 스피드를 겨루는 경기다. 용주(龍舟) 또는 용선(龍船)이라고도 한다. 남, 여, 남녀 혼성, 3개 종목이며,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남북이 그야말로 한 배를 탄 셈이다.
▶ 카누는 드래곤보트 종목에서 남북 선수들이 6명씩 남·여 200m와 500m, 남자 1000m에 출전한다. 카누 드래곤보트 여자 단일팀이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 ⓒC영상미디어
카누는 일찌감치 단일팀 구성을 해온 종목으로 출전 선수 숫자도 가장 많다. 지난 8월 9일 충주 탄금호국제조정경기장에서 만난 카누 용선 여자 남측 지도자인 강근영 감독은 “북한 카누연맹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됐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면서 “특히 여자 선수들의 기량이 좋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김광철 북한 카누 감독도 “2017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김수향, 호성 선수가 2위를 했고, 3위까지 석권한 선수들로 구성됐다”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출국하기 전까지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남북한 선수들은 충주 탄금호국제조정경기장에서 폭염을 이겨가며 힘찬 노를 저었다. 팀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좋았다. 드래곤보트에 몸을 싣고 노를 저으며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종목의 특성상 선수 간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짧은 시간이지만 언니, 오빠, 누나, 동생과 같은 친근한 호칭들이 자연스럽게 오가며 호흡을 맞췄다. 용어가 달라 애를 먹긴 했지만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강 감독은 “ 북에서는 노로 물을 잡는 ‘캐치’를 ‘첫물잡기’라고 하고, 노를 빼는 ‘피니시’를 ‘뽑기’라고 하는 등 용어가 많이 달랐다”면서 “하지만 우리 고유 말이라 금세 알 수 있었고, 두 가지 다 말하다가 이제는 어느 하나만 말해도 다 알 정도로 호흡을 맞췄다”고 했다.
▶ 카누 남자 단일팀, 폭우가 쏟아져도 훈련은 계속됐다. ⓒC영상미디어
한국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남자 대표팀이 1000m 동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 여자 선수들은 아시안게임 첫 출전인 데다 남북단일팀이라는 점에서 한껏 고무됐다. 드래곤보트 이현주 선수(대구 수성고·드러머)는 “북한 선수들과 같이 타니 배가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며 “운동선수로 흔하지 않은 단일팀의 기회를 얻은 만큼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했다.
3개 종목 출전 확정한 조정 단일팀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금메달의 꿈을 향해 충주호의 물살을 가르며 노를 저어온 것은 카누 단일팀만이 아니다. 단일팀 금메달 사냥에 조정도 출격한다. 조정은 길고 좁은 형태의 노를 저어 경주 보트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스포츠 경주다. 혼자 경기하는 싱글 스컬부터 8명의 선수가 협력해 노를 젓는 에이트를 비롯해 더블스컬, 무타페어, 유타페어, 무타포어, 유타포어, 쿼드러플 등 모두 8가지 종목이 있다.
▶ 충주 탄금호국제조정경기장에서 훈련하는 조정 무타포어 단일팀 선수들. 남북단일팀은 7월 29일 첫 훈련을 시작했다. ⓒC영상미디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 에이트, 남자 무타포어, 여자 경량급 더블스컬 단일팀이 출전한다. 특히 여자 경량급 더블스컬에서 동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조정 대표팀 송지선(21·한국체대)이 북한의 김은희(17)와 호흡을 맞춘다. 두 명이 한 배를 타는 종목에 나서는 건 송지선과 김은희가 유일하다. 짧은 시간이지만 둘의 호흡과 컨디션은 최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 8월 13일 인천국제공항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조정 남북단일팀의 송지선이 여자 경량급 더블스컬에 함께 출전하는 북한 김은희에게 선물한 것과 똑같은 목걸이를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연합
얼마 전 출국 기자회견에서 송지선은 김은희에게 펜던트 앞쪽에는 송지선이 그린 조정 경기 모습이, 뒤에는 단일팀의 영문 약자인 ‘COR’를 새긴 목걸이를 선물해 나란히 목에 걸었다는 일화를 소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정 단일팀 황우석 감독은 “7월 29일 첫 훈련을 시작해 기간은 짧았지만 워낙 격하고 고된 운동이다 보니 선수들이 빨리 친해졌다”면서 “북한 선수들은 10대 후반의 어린 선수들인 데 반해 상대적으로 나이도 많고 국제대회 경험도 많은 남한 선수들이 조언을 많이 해준다”고 했다.
조정과 카누는 단순히 손발을 맞추는 것을 넘어 완전히 하나 된 호흡으로 노를 저어야 하는 종목의 특성상 남북 화해와 교류라는 단일팀 취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종목이기도 하다. 강근영 감독은 “북한 선수들을 만나기 전에는 무뚝뚝하고 딱딱할 것 같다는 선입견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만나자마자 같은 언어로 얘기하는 것이 정겨움을 느낄 만큼 친숙했다”고 전했다. 카누 대표팀 용선 신동진(서산시청) 선수는 “북한 선수들이 남쪽에 오기 전 남한에 김치가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직접 와 보니 김치가 있어 다행이라고 하는 것을 들으면서 정말 우리는 같은 민족이구나라는 동질감을 느꼈다”고 했다.
남북한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서 처음으로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했지만 단일팀을 이루진 못했다. 단일팀 시초가 된 것은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팀 코리아’였고, 그해 6월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축구 단일팀이었다. 그리고 올초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으로 남북단일팀의 역사가 다시 시작됐다. 이처럼 성적 이전에 남북단일팀을 구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이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카누, 조정, 여자농구 남북단일팀 출전은 뜻깊다. 게다가 이번에는 과거처럼 단일팀 구성에만 의미를 두는 데 그치지 않고 남과 북이 함께해 결과로 실력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각오다.
남북단일팀, 실력으로 증명한다
김광철 감독은 “2018 아시안게임 국제경기대회에 출전해 민족의 기상을 보이자는 각오로 단일팀 구성에 임했다”고 밝히며 “목표는 두말할 것 없이 순위권에 들어 메달을 따는 것”이라고 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4위, 2002년 세계선수권 4위로 한국 여자농구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문규 감독은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던 영광의 순간을 이어가고 싶다”며 “로숙영, 장미경, 김혜연 등 북한 선수들의 합류로 전력도 보강되고, 단일팀이라는 출전의 의미까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팀의 사기가 높다”고 했다. 남북단일팀의 긍정적인 효과는 선수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었다. 카누 대표팀 이현주 선수는 “카누 드래곤보트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비인기 종목인데, 남북단일팀 구성으로 많은 관심을 받게 돼 너무 기뻤다”고 말하며 “종목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고, 남북단일팀은 운동선수로서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에 꼭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했다. 강근영 감독은 “순수한 스포츠 안에서 만나 정말 죽기 살기로 함께 땀을 흘리다 보면 숨겨지지 않는 끈끈한 믿음이 생긴다”면서 성적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포부도 숨기지 않았다.
여자농구 남북단일팀이 68점차 대승으로 좋은 출발을 알렸다. 이어 조정 단일팀과 카누 단일팀이 출격을 대기하고 있다. 여자농구, 카누, 조정 세 종목의 남북단일팀 감독과 코치진, 선수들의 금메달을 향한 염원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1991년 첫 단일팀 구성을 시작으로 4번째 단일팀이다. 남북한 화해의 상징이기도 한 남북단일팀의 선전은 언제나 국민적 관심사다. 과연 어느 종목에서 제일 먼저 시상대에 한반도기가 올라가고 ‘아리랑’이 울려 퍼질지 기대된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최대 관전 포인트다.
강은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