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스포츠 축제가 시작됐다. 평창동계올림픽을 필두로 러시아월드컵을 지나 이번에는 아시안게임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지난 8월 18일부터 9월 2일까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펼쳐지고 있다. 어떤 경기가 아시아인을 웃고 울릴지, 우리 국민은 태극전사들의 속 시원한 경기 덕에 잠시 무더위를 식힐 수 있을지, 16일간 그려질 이야기에 기대 반 설렘 반이다.
올해 아시안게임은 개최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날짜와 장소 모두 당초 계획과 달라지는 등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2014 인천아시안게임의 차기 아시안게임은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어야 한다. 앞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아시안게임이 동계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해에 개최되면 흥행 면에서 밀릴 수 있다고 판단해 개최연도를 홀수로 결정했기 때문. 그러나 베트남 정부가 경제적 여건을 이유로 개최를 포기하면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팔렘방이 개최도시로 최종 선정됐다. 인도네시아는 아시안게임 유치 조건으로 개최연도를 1년 앞당겨줄 것을 제안했고, OCA가 이를 받아들여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됐다.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은 1962년 자카르타 대회 이후 56년 만이다. 이로써 인도네시아는 태국(4회)과 한국(3회), 인도·일본·중국(2회)과 함께 아시안게임을 2회 이상 개최한 여섯 번째 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아시아의 에너지(The Energy of Asia)’라는 슬로건 아래 45개국 1만 1300여 명의 선수가 경쟁을 벌인다. 총 40개 종목, 67개 세부 종목에 금메달 465개가 걸려 있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65개 이상으로 1998년 태국 방콕 대회 이래 6회 연속 종합 2위 수성을 목표하고 있다.
아시아의 여러 국가가 출사표를 내밀지만 단연 돋보이는 건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이다. 아시안게임 전체 역사를 살펴보면 이들 세 국가의 기록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지난 아시안게임까지 17차례 대회 동안 종합 우승을 경험한 국가는 일본과 중국뿐이다. 일본은 1951년 뉴델리에서 열린 초대 아시안게임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한 이후 8회 연속 우승국의 자리를 지켰다. 중국은 아홉번째 대회인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부터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까지 9회 연속 정상에 올랐다. 우리나라도 종합우승을 기대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당시 한국은 중국보다 단 하나 모자란 93개의 금메달을 획득, 종합 2위에 머물러 큰 아쉬움을 남긴 바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중국이 종합우승을 차지할지 또는 한국과 일본이 예기치 못한 강세를 보일지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 8월 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포키 찌부부르 스타디움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핸드볼 예선 한국과 북한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연합
한국·남북단일팀 주요 경기들
여느 스포츠대회가 그렇듯 아시안게임도 주목할 부분이 많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평창에서 시작된 남북 단합이 자카르타로 이어지는 만큼, 단일팀 선수단이 보여줄 경기력에 관심이 모인다. 남북 단일팀은 여자농구·카누·조정 등 3개 종목, 6개 세부 종목에 출전한다. 단일팀만 있는 건 아니다. 남북 선수들이 메달을 향해 서로를 넘어야 할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과거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남북 대결이 성사된 것처럼 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남북 대결을 기대해봄 직하다.
축구 팬이라면 이번 아시안게임을 유독 지켜볼 필요가 있다. 비록 2018 러시아월드컵 16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세계 랭킹 1위 독일을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꺾는 등 일말의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 출전 선수는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 3명(손흥민·조현우·황의조)을 제외하면 모두 23세 이하 선수들로 구성돼, 대회 자체가 한국 축구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 더, 손흥민의 병역 면제도 걸려 있다. 손흥민은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독일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쐐기 골을 넣으며 한국의 승리를 이끈 바 있다. 축구 팬들이 한국 축구를 위해, 또 손흥민의 유럽 정상급 기량 유지를 위해선 병역 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만 26세가 된 손흥민이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선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이 유일하다.
한국 축구는 1970년 방콕 대회, 1978년 방콕 대회(북한 공동 우승), 1986년 서울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28년 만에 2014년 인천대회에서 우승했다. 직전 대회 기세를 이어 20명의 태극전사가 아시안게임 2연패, 역대 최다우승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스포츠클라이밍 김자인 선수, 사격 진종오 선수, 태권도 이대훈 선수 ⓒ연합
올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이 된 스포츠클라이밍도 챙겨봐야 한다. 스포츠클라이밍은 인공 암벽과 안전장치만 갖추면 남녀노소 누구나 입문할 수 있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제 스포츠클라이밍은 동호인 스포츠를 넘어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더욱 알릴 기세다. 세계 랭킹 1, 2위를 다투는 ‘암벽 여제’ 김자인이 출전을 앞두고 있으니 말이다. 김자인은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 여자부 리드 종목에서 개인 통산 26차례 금메달을 거머쥐며 역대 최다우승을 기록했다. 다만 이번 대회에는 리드 종목이 독립돼 있지 않아 콤바인 종목에 출전한다. 콤바인은 스피드(15m 인공 암벽을 누가 더 빠르게 올라가는지 겨루는 종목), 리드(안전 장구를 착용하고 15m 암벽을 가장 높이 오르는 종목), 볼더링(4~5m 암벽 구조물을 로프 없이 오르며 과제를 해결하는 종목) 3종목의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결정한다.
첫 정식 종목만큼이나 이목을 집중시키는 시범 종목이 있다. e스포츠가 그 주인공. 한때 ‘오락’으로만 치부됐던 e스포츠는 급격한 성장세에 힘입어 스포츠 산업으로서 면모를 갖추게 됐다. 2018아시안게임에서는 시범 종목에 머물지만, 아시아올림픽평의회가 2022년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할 계획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2024 파리올림픽에도 e스포츠가 포함될 수 있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우리 선수단은 e스포츠 종주국의 명예를 걸고 리그 오브 레전드(LoL)와 스타크래프트 2 등 두 종목에 출전한다. 모두 금메달이 목표다. 최정상급 e스포츠 선수들이 팔을 걷어붙인 가운데 ‘e스포츠계 메시’로 통하는 이상혁(페이커)이 가장 눈길을 끈다. 이상혁은 롤드컵(LoL 월드챔피언십)에서 세 번 우승했을 뿐 아니라 화려한 플레이로 그 명성이 높다. 다른 선수들의 기량도 출중하다. 김기인(기인), 고동빈(스코어), 한왕호(피넛) 등 대형 경기에 출전한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마우스를 잡는다.
양궁·태권도 등 금메달 기대 종목은
부동의 효자 종목을 꼽으라면 양궁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국제대회 금메달 획득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세계 최강국이란 호칭답게 목표는 전 종목 석권. 혼성팀전이 신설되면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점도 특기할 만하다. 남녀가 한 팀을 이뤄 출전하는 혼성팀전은 그동안 봐온 남녀 개인전, 단체전과는 또 다른 묘미를 더할 예정이다.
▶ 1 양궁 정다소미 선수 2 8월 1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A조 예선 남북단일팀 대 인도네시아의 경기에서 현지 교민들이 한반도기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단일팀을 응원하고 있다. ⓒ연합
태권도 역시 한국이 종주국임을 자랑하는 종목이다. 역대 일곱번의 대회에서 태권도에 걸린 금메달 96개 중 53개가 우리나라 차지였다. 직전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 6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수확했다. 물론 태권도의 국제적 기량이 평준화되고 상대 견제가 심해지고 있다지만, 종합 1위를 내준 적은 없다.
올해 아시안게임에는 품새가 새로 추가됐다. 겨루기가 기존 16체급에서 10체급으로 축소된 대신 품새에 남녀 개인전과 남녀 단체전 등 총 4개의 금메달이 걸렸다. 품새는 태권도 동작으로 속도와 힘, 리듬, 기의 표현 등을 겨룬다. 동작을 정확하고 화려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선수 대부분이 우승 후보지만 그중에서도 간판스타 이대훈은 독보적이다. 이대훈은 2010년 광저우 대회 63kg급, 2014년 인천 대회 63kg급에서 금메달을 가져갔으며 이번 대회에서는 체급을 올려 3연패에 도전한다. 이대훈이 남자부를 대표한다면 여자부에는 강보라가 있다. 강보라는 지난 2월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소희를 잡아내고 성인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5월 여자 49kg급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는 지난해 무주 세계선수권 챔피언 심재영을 이기고 1위에 올랐고, 아시아선수권에서 당시 49kg급 세계 1위 웅파타나키트 패니팍(태국)마저 제압했다.
야구 대표팀의 금메달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야구는 아시안게임 3연패를 노린다. 라이벌인 일본은 사회인리그 선수를 위주로 대표팀을 구성했고, 대만은 해외파 선수를 포함한 프로 선수 10명, 아마추어 선수 14명으로 팀을 꾸렸다. 반면 우리 대표팀은 24명 모두 KBO리그에서 뛰는 프로 선수들로 구성됐다. 대결 방식은 8개 나라가 본선에 올라 2개 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치른다. 조별리그 1, 2위 팀은 이틀 동안 슈퍼라운드를 거쳐 최종 성적 1, 2위 팀이 결승에 나선다. 우리나라의 첫 상대는 대만이다. 8월 26일 조별리그 1차전에서 대만을 꺾으면 금메달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경기와 9월 1일 열리는 결승전을 기억해두자.
샛별 등용문이자 고별무대
아시안게임은 수많은 별들의 등용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선수에게는 작별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번 대회가 마지막 아시안게임이 될 대표적인 스타로 진종오, 김연경을 들 수 있다. 사격의 진종오는 2002 부산아시안게임부터 4년마다 대회를 거르지 않고 출전했다. 올림픽 3회 연속 금메달을 딴 그이지만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은 전무하다. 때문에 진종오는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아시안게임이 될지도 모를 이번 대회에서 첫 개인전 금메달을 노린다.
아시안게임에서 김연경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김연경이 직접 ‘마지막’을 언급한 적은 없지만,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여자 배구 대표팀은 김연경을 주축으로 2회 연속 금메달에 도전한다. 양효진, 이재영 등 기존 간판선수들이 여전한 기량을 자랑하는 동시에 정호영, 박은진, 이주아 등 고교생 3총사가 가세해 활약이 기대된다.
어떤 샛별이 우리를 놀라게 할지 흥미롭기도 하다. ‘마린보이’ 박태환의 공백을 대신할 김서영, 안세현이 기대주다. 김서영은 지난해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개인혼영 200m에서 6위를 차지하며 단숨에 아시안게임 금메달 후보로 부상했다. 안세현도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 접영 100m와 200m 종목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양학선이 없는 한국 체조도 신예들이 채운다. 김한솔이 양학선의 ‘양1’ 기술로 금메달에 도전하며, 여자 기계체조에선 여서정이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