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목소리’에서 ‘허스토리’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영화

2018.08.12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미디어는 사회문제를 대중에게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 사회의 기뻤던 순간, 안타까운 사연 등이 계속해서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에 소재로 등장하는 이유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고 공개 증언을 한 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조명하는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영화_낮은 목소리?, 눈길, 귀향, 허스토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첫 번째 영화는 1995년 변영주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다.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영화 최초로 극장에서 개봉된 작품이기도 하다. 변 감독은 제주도 매춘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촬영하던 중 자신의 어머니가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낮은 목소리’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고국에 돌아온 후 ‘나눔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영화는 1995년 개봉한 ‘낮은 목소리 1’, 1997년 ‘낮은 목소리 2’, 1999년 ‘낮은 목소리 3’ 등 총 3부작으로 구성됐다. ‘낮은 목소리 1, 2’는 인터뷰로 할머니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와 울분을 보여주며, 수요일 정오마다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서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낮은 목소리 3’에서는 감독이 인터뷰하는 형식에서 벗어나 할머니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또 다른 할머니를 인터뷰한다. 여성의 현실을 역사적으로 접근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은 ‘낮은 목소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영화 '눈길' 한 장면 등

▶ 1 영화 ‘눈길’에서 종분과 영애가 고향으로 향하는 장면
2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옥분이 미국연방하원에서 열린 공청회에 참가해 피해사실을 증명하는 장면

2015년에는 KBS에서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눈길’이라는 2부작 단편 드라마를 선보였다. 일제의 수탈 속에서 가난이 지긋지긋했던 종분(김향기)과 그가 동경한, 예쁘고 공부도 잘했던 동네 친구 영애(김새론) 두 소녀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면서 겪은 일을 다뤘다. 방송 당시 김향기, 김새론의 연기와 빼어난 영상미로 호평을 받아 2017년에는 3·1절을 맞아 극장판으로 개봉됐다.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한 영화 중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작품은 ‘귀향’이다. 1943년 열네 살 소녀 정민(강하나)과 영희(서미지)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손에 끌려가 전장 한가운데에서 겪은 끔찍한 고통과 아픔을 담았다.

‘귀향’은 국민의 성원이 없었으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작품이다. 정치·외교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 흥행 여부가 불투명해 선뜻 제작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 절반 정도 되는 12억 원을 모금해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다. 개봉 당시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했던 ‘귀향’은 영화를 상영하라는 시민들의 요구 덕에 점차 상영관을 넓혀가며 최종적으로 관객 수 358만 명을 기록했다. ‘귀향’이 예상치 못하게 흥행하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한 영화가 속속 개봉하기 시작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아이 캔 스피크’, ‘허스토리’

2017년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영화 대부분이 분노와 슬픔이 주를 이뤘던 것과 다르게 경쾌하게 시작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옥분(나문희)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할머니의 모습이다. 발랄하고 경쾌하게 시작해 극 후반으로 갈수록 진지해진다. 옥분이 영어를 배우려는 이유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고통받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함이 밝혀지며 긴장감이 고조된다.

옥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모티브로 만든 인물이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이용수 할머니가 2007년 2월 미국 연방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 채택을 앞두고 직접 공청회에 참가해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내용이다. 영화에서는 옥분이 홀로 청문회에 참석하지만 실제 청문회에는 이용수 할머니뿐 아니라 김군자 할머니, 네덜란드 국적의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가 함께 참석해 증언했다. 할머니들의 증언으로 사죄 결의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올해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 법정에서 최초로 인정받은 ‘관부(關釜)재판’을 소재로 한 ‘허스토리’가 개봉했다. 시모노세키 재판이라고도 불리는 재판의 정식 명칭은 ‘부산 종군위안부 여자근로정신대 공식사죄 등 청구소송’이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과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 등 총 10명의 할머니는 오로지 그들의 노력만으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받아냈다.

관부재판은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있었던 1991년, 부산에서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가 정신대 신고전화를 개설하면서 시작됐다. 1992년 11월 14일 변호사에게 소송 위임장이 전달되고 1992년 12월 25일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에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지난한 재판의 서막이 열렸다. 1998년 4월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일본 정부가 원고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에 각각 30만 엔, 모두 90만 엔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일부 승소판결을 내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 청구 요청은 인정하지 않았고, 근로정신대 피해자 원고인 7명의 청구 소송은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그 뒤 경질됐고, 일본 정부의 항소와 상고 끝에 2003년 최고재판소는 기각 결정을 내리며 판결을 뒤집었다.

영화는 할머니들을 도와 재판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문정숙(김희애)의 시선으로 일본에게 사죄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할머니들의 법정 투쟁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담담하게 볼 수 없다. 법원에서 재판부가 숙연해질 만큼 절절한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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