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오후 기준 우리나라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하 아시안게임) 종합 순위 3위다. 이날까지 한국 선수단이 목에 건 메달은 금 11개, 은 19개, 동 27개 총 57개. 8월 19일 태권도 품새 여자 개인전에서 윤지혜의 첫 메달을 시작으로 ‘6회 연속 종합 2위’를 향해 주저 없이 달리고 있다. 예상치 못한 승전보 또는 패전보가 전해지는 가운데 잊지 못할 순간을 되돌아본다.
▶ 1 8월 19일 태권도 품새 경기 남자 단체 경기에서 우승한 한영훈·김선호·강완진이 금메달에 입을 맞추고 있다. 2 8월 20일 우슈 대표팀 조승재가 도술·곤술 부문 경기에 한창이다. ⓒ연합
아시안게임 한국 첫 금빛 소식의 주인공은 태권도 품새 남자 개인전의 강민성이었다. 강민성은 8월 19일 열린 품새 남자 개인전 결승에서 이란의 바크티야르 쿠로시를 꺾고 금메달을 쥐었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된 품새 종목이었기에 우승 소식은 더 큰 반가움을 안겼다. 품새는 태권도 동작으로 속도와 힘, 리듬, 기의 표현 등을 겨룬다. 동작을 정확하고 화려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민성은 찌르기 동작은 말할 것도 없고 발차기 동작에서 어느 선수보다 뛰어난 기량을 자랑했다. 특히 발차기에서는 위로 올려 차는 각도와 높이가 상대 선수를 크게 앞섰다.
강민성은 금메달을 딴 직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애 첫 국가대표로 오른 무대에서 거머쥔 한국 첫 금메달이었다. 게다가 아시안게임은 운명처럼 찾아온 기회였다. 남녀 개인·단체전 4개 종목을 치르는 이번 대회에서는 당초 한 나라가 최대 두 종목까지 출전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가능성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해 남녀 단체전에 선수를 내보내기로 결정, 대표선발전을 마쳤다. 강민성은 당시 선발전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가 국가별로 4개 종목 모두 출전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변경했고, 대한민국태권도협회는 개인전 대표선발전을 다시 치렀다. 강민성은 당당히 선발전 1위를 차지해 자카르타행 티켓을 얻었고, 최종 주인공의 자리까지 올랐다.
같은 날 품새 남자 단체전에서도 금빛 승전보가 이어졌다. 한영훈·김선호·강완진으로 구성된 대표팀은 결승에서 중국을 눌렀다.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면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품새 여자 개인전에 출전한 윤지혜가 동메달을, 단체전에서는 곽여원·최동아·박재은이 은메달을 거뒀다. 대회 첫날 전체 11개 메달 중 4개가 태권도에서 나왔다.
값진 메달 소식 연이어
▶ 8월 21일 펜싱 여자 에페의 강영미가 결승전에서 중국 순위엔을 공격하고 있다. ⓒ연합
또 다른 효자 종목 펜싱은 대회 첫날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거둬들였다. 기대했던 금메달을 쥐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바로 다음 날 우리 대표팀이 아시아 정상에 다시 올라섰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 펜싱은 역대 최다인 금메달 8개를 수확한 바 있다. 20일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구본길과 오상욱은 동반 결승에 진출하며 일찌감치 금메달을 확정했다. 최종 승자는 구본길이 됐다. 여자 플뢰레 개인전은 전희숙이 막판 연달아 쐐기점을 기록하며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전희숙의 이번 금메달은 한국 700번째 아시안게임 금메달이기도 하다. ‘늦깎이’ 강영미의 활약도 눈부셨다. 여자 에페 대표팀의 맏언니인 강영미는 생애 처음 출전한 아시안게임의 메달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강영미의 경기가 진행되는 종일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는 ‘영미’를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2018 평창동계올림픽 컬링장을 수놓았던 ‘영미 함성’이 반년이 흘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까지 번진 셈이 됐다.
레슬링 대표팀의 첫 금메달은 투혼의 레슬러 류한수에게 돌아갔다. 8월 21일 류한수는 남자 그레코로만형 67kg급 결승전에서 카자흐스탄의 알마트 케비스파예프를 무너뜨렸다. 한국 레슬링의 간판으로서 위용을 뽐냄과 동시에 아시안게임 2연패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류한수는 ‘오뚝이’로 유명하다. 선수생활 중 최악의 불운을 수차례 겪었음에도 꿈을 향해 전진한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선발전 당시 김현우에게 밀려 태극마크를 달지 못한 데 이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선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상을 딛고 지난해 8월 세계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66㎏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기세를 몰아 아시안게임의 1인자 자리를 차지했다.
수영 샛별 김서영과 안세현도 순항 중이다. 두 선수 모두 박태환의 공백을 대신할 기대주로 거론돼왔다. 김서영은 여자 개인혼영 400m 결승에서 4분37초43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수확했다. 비록 자신이 보유한 한국 기록(4분35초93)은 깨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 수영선수로는 첫 은메달이다.
안세현은 여자 접영 100m 결승에서 3위를 거머쥐며 메달을 보탰다. 지난해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운 한국 기록(57초07)만 다시 냈더라면 은메달도 가능할 뻔했다. 안세현의 활약은 단체전에서도 두드러졌다. 8월 22일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치러진 혼성혼계영 400m에서 동메달 획득에 힘을 더했다. 남자 선수인 이주호와 문재권이 각각 배영, 평영 영자로 나섰고 안세현이 접영을, 고미소는 자유형 구간을 책임졌다.
메달 소식 근원지에서 사격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민정이 사격 여자 25m 권총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민정은 4명에서 3명으로 줄이는 엘리미네이션 라운드에서 중국 린웨메이와 26점 동률을 이뤄 슛오프까지 치렀다. 5발을 쏘는 슛오프에서 4 대 2로 승리한 그는 메달 진입을 확보했으나 이후 라운드에서 탈락이 확정되면서 3위로 경기를 마쳤다.
우슈 대표팀에서도 메달리스트가 나왔다. 조승재가 우슈 남자 도술·곤술 부문의 은메달을 가져왔다. 도술은 검을, 곤술은 곤봉을 이용해 연기하는 종목이다. 조승재는 도술의 동작질량과 난도에서 만점을 받고, 3점 만점의 연기력에서도 2.72라는 높은 점수를 얻었다. 곤술에서도 동작질량과 난도는 만점, 연기력은 2.73이었다. 조승재는 2016년 아시아선수권 도술에서 우승했지만 곤술에서는 6위에 그친 바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곤술에서도 선전, 화려한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이와 함께 이용문은 남권·남곤에서 동메달을 손에 넣었다.
세팍타크로 팀 레구 여자부는 값진 은메달을 거뒀다. 세팍타크로는 조금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말레이시아어로 ‘차다’인 ‘세팍’과 태국어로 ‘공’인 ‘타크로’의 합성어다. 배구나 배드민턴처럼 네트를 사이에 두고 하는 경기다. 손과 팔을 제외한 몸 전체, 특히 발을 주로 쓴다. 화려한 공중 동작이 매력적이다. 세 번의 터치 안에 볼을 상대 코트로 넘겨야 한다. 족구와 다른 점은 무게 160g의 플라스틱 공을 땅에 떨어뜨리면 안 된다. 상대 공격을 막기 위해 배구처럼 네트 앞에서 블로킹도 한다.
비록 우리 대표팀은 최강국 태국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이 종목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종전까지 2002년 부산 대회와 2006년 도하 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것이 가장 높은 기록이었다.
예기치 못한 사고 소식도
승자가 있다면 패자도 있듯, 가슴 벅찬 소식만 들려온 것은 아니다. 마지막 아시안게임으로 알려진 진종오 선수의 경기가 대표적. 진종오는 10m 권총에만 출전했고 첫 개인전 금메달을 목표로 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까지 금메달을 휩쓸었고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3개를 따낸 그이지만,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은 없었다. 아쉽게도 ‘사격의 신’ 진종오가 유일하게 이루지 못한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 꿈은 다시 무너졌다. 결선 시작 전 시험사격에서 마지막 발 결과가 진종오의 선수용 모니터 화면에 나타나지 않았는데, 주최 측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선수의 심리 상태를 흔들었다. 사격은 어느 종목보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예민한 스포츠다. 결국 진종오는 주최 측의 미숙한 대회 운영으로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다.
서희주는 우슈 여자 투로 검술 종목 출전 직전 기권을 선언했다. 무릎 부상이 그 이유였다. 애초 그는 첫 번째로 연기를 펼칠 예정이었지만 경기를 앞두고 왼쪽 무릎 통증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전날까지도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했지만 리허설 도중 부상을 당했다는 전언이다. 서희주는 2015년 자카르타 세계선수권 우승자다.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향한 기대감이 더욱 컸을 터. 기권을 확정한 서희주는 끝내 눈물을 쏟았다.
▶ 8월 20일 남자축구 조별리그 E조 3차전에서 손흥민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연합
국내 축구 팬들의 아쉬운 목소리도 들린다.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2연패에 나선 김학범호가 당초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조별리그 3경기에서 전승이 예상됐지만 말레이시아에 발목을 잡히면서 2승 1패,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남북단일팀 향한 기대감 한껏 고조
남북단일팀의 선전도 기대해봄 직하다. 우선 조정 남북단일팀이 남자 에이트 결선에 진출한다. 남자 에이트 단일팀은 패자부활전에서 5개 팀 중 3위에 올라 상위 4개국에 주는 결선 진출 티켓을 획득했다. 남측에서는 강지수·김동현·권승민·명수성·홍훈 5명이, 북측에서는 리현몽·최명학·최광국·정광복 4명이 모였다. 남자 무타포어도 패자부활전을 거쳐 결선 티켓을 확보했다. 단일팀은 중국, 인도네시아, 인도, 홍콩 등과 경쟁한다. 또 다른 조정 단일팀인 여자 경량급 더블스컬 송지선·김은희도 결승을 앞두고 있다. 이들 조는 예선 6개 팀 중 5위를 기록해 메달 획득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단일팀이 보여줄 협력에 시선이 쏠린다.
여자 농구 단일팀은 조별리그를 모두 마치고 8강전을 준비하고 있다. 조 2위로 오른 단일팀은 태국 또는 몽골과 맞붙는다. 특히 국내 최고 센터 박지수가 합류하면서 단일팀으로선 천군만마를 얻었다는 평가다.
▶ 8월 22일 남북단일팀 선수단(아래에서 두 번째)이 조정 남자 에이트 패자부활전에서 힘차게 노를 젓고 있다. ⓒ연합
현지 적응 훈련을 시작한 카누 드래곤보트는 단일팀 첫 메달이 기대되는 종목이다. 노 젓는 사람 10명과 배의 방향을 잡는 키잡이 1명, 북을 치는 드러머 1명으로 구성된다. 25일 남녀 200m, 26일 남녀 500m, 27일 남자 1000m 메달결정전이 잡혀 있다. 카누 드래곤보트가 아시아 전역에 울릴 ‘아리랑’이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