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뉴질랜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비슷한데 뉴질랜드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가 훨씬 높다. 단순히 GDP를 높이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한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인간 진보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학 교수가 진단한 한국의 현실이다. 6월 2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 주최로 ‘2018 국민경제 국제콘퍼런스’가 개최됐다. 크루그먼 교수는 ‘성장으로 충분치 않다(Growth is not enough)’를 주제로 이 같은 내용의 기조강연을 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무역이론과 경제지리학 통합’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 석학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소득이 늘수록 삶의 질은 높아지지만 일정 수준의 소득을 달성하면 상황이 달라진다”고 했다. 경제발전이 일정 단계에 도달하면 GDP로 대표되는 경제성장뿐 아니라 ‘삶에 대한 만족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해결 과제로 지적했다. 그가 강조한 해법은 ‘사회적 포용’이다.
▶ 6월 28일 국민경제자문회의 주최로 개최된 ‘2018 국민경제 국제콘퍼런스’에서 폴 크루그먼 교수 등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 인간 진보에 대해 논해야 할 때”
이는 한국에도 적용된다. 크루그먼 교수는 “1960년대 한국은 가난했기 때문에 성장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 결과 인류 역사에서 볼 수 없던 경제발전을 이뤘다”며 “이제 한국은 인간 진보에 대해 논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제는 사람에 관한 것이고 경제의 목적은 사람을 돕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도 삶의 만족도와 사회적 포용을 향상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할 단계”라고 조언했다.
‘경제 패러다임 대전환: 사람중심 경제’를 주제로 열린 이번 콘퍼런스는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 개회사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축사로 시작했다. 김광두 부의장은 “사람중심 경제에서 정부의 첫 번째 초점이 최저임금 인상, 복지 제공 등이었다면 이제는 사람에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더 높은 교육 수준, 다양한 직업훈련 예산을 할당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가 6개월~1년의 유급휴가를 받아 새로운 기술 훈련을 받는 안도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직성·유동성은 계약을 통해, 비용 부담은 세제 혜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동연 부총리 역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방향과 철학, 개념의 근저에 사람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포용적 성장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합친 또 다른 말이며 우리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사람중심 경제”라고 했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데 세계 석학들도 한목소리를 냈다. 소득·기술의 양극화를 완화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에 대한 투자’라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 패러다임이 ‘사람중심 경제’로 전환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로미나 보아리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선임자문관은 G7 정상회의, OECD 등의 최우선 관심사로 ‘불평등’을 꼽았다. OECD 회원국을 소득 불평등 정도에 따라 나눴을 때 불평등한 국가일수록 사회적 이동이 낮게 나타난 사실도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 비유했다. 특히 “정보화 시대로 변하면서 불평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역량이 낮은 노동자가 큰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했다.
소득주도성장, 경제·안정성 동시 달성
불평등 완화가 필요하다고 밝힌 보아리니 자문관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경제성장을 전환하고 하위 40%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소외 계층에 대한 투자, 기업의 역동성 제고, 포용적인 노동시장 지원, 효율적이고 대응력 높은 정부 구축 등이다. 그는 “기업 역동성을 기르려면 정부가 주도적으로 혁신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교육 시스템을 증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시장에서 필요한 기술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고등교육 이후에도 노동자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오늘날 경제가 ‘저성장과 소득분배 악화’, 기술진보에 따른 ‘일자리 양극화’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국장은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성장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다”며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불평등 완화를 통해 경제성장과 안정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잠재력 있는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기술진보로 일자리가 줄어들기보다 일자리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국장은 교육 보조금 같은 정책으로 일자리 양극화에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 세계 석학들은 경제 패러다임이 ‘사람중심’으로 변하고 있다며 한국도 사람에 투자하며 사회적 포용을 확대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C영상미디어
또한 기술·혁신에 투자하듯 ‘사람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핵심 과제로 평생교육과 사회적 보호정책을 내세웠다. 공적자금으로 평생교육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거론한 이 국장은 “정부는 GDP 대비 4% 미만을 평생교육에 사용한다”며 “지출이 아닌 투자의 관점에서 늘려야 한다”고 정부와 사회의 인식 개선을 촉구했다.
해외 사례도 검토됐다. 알렉산더 게리바체 독일 슈투트가르트 호엔하임대학 교수는 독일이 자동차, 전자기술, 기계 등 기존 산업에는 강하나 바이오기술(BT), 정보통신기술(ICT) 등 첨단산업 활성화에는 어려움을 겪는 ‘역량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했다. 기술 역량을 첨단산업으로 다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적자원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게리바체 교수는 독일에서 이공계를 졸업한 여성이 출산 후 전공을 살리는 비율이 남성과 대조적으로 낮은 점을 꼬집으며 ‘물이 새는 배관’에 비유해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선수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