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의 첫 승 소식을 기대하던 국민은 탄식만 내뱉었다. 대표팀은 무색무취의 경기를 펼친 끝에 승점 사냥에 실패했다. 두고두고 아쉬웠던 일전의 패인을 돌아보고 대회 중반을 향하고 있는 2018 러시아월드컵을 중간 점검해본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무색무취의 경기를 펼치며 승점 사냥에 실패했다. 대표팀은 지난 6월 18일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 1차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유효 슈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하는 등 경기력에서도 압도적으로 밀렸다. 선발 구성부터 의아했다. 조 편성 직후부터 전문가들은 줄곧 “우리보다 큰 스웨덴 선수들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스피드”라고 강조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손흥민(토트넘)이 측면에서 빠른 발을 이용해 돌파하자 스웨덴 수비진은 따라오지 못했다. 전후반 통틀어 가장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날 신 감독이 꺼내든 공격 카드는 장신 공격수 김신욱(전북)이었다. 신태용 감독은 경기 후 “세트피스 수비 상황을 고려해 기용했다”고 밝혔지만, 김신욱은 속도감 있는 역습 전략엔 어울리지 않았다.
또 공격수 손흥민과 황희찬(잘츠부르크)을 수비에 치중하게 만들면서 정작 공격 시엔 이들의 재능을 활용하지 못했다. 거스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은 “경기에서 손흥민을 볼 수 없었다. 톱클래스 공격수를 윙백으로 쓴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경기를 겨냥해 대표팀에 선발했다던 스웨덴 리그 출신 문선민(인천)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나마 성공한 건 골키퍼 조현우(대구FC) 카드였다. A매치 경험이 풍부한 김승규(비셀고베)나 김진현(세레소오사카) 대신 선발 출전한 조현우의 선방은 눈부셨다. 전반 20분 단독으로 맞선 마르쿠스 베리(알아인)의 슛을 허벅지로 막아내더니, 그 뒤로도 정확한 판단력과 민첩한 움직임으로 스웨덴의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영국 방송 BBC에선 그에게 양팀 통틀어 최고 평점(7.48)을 매기며 경기 최우수선수(Man Of The Match)로 선정했고, 국제축구연맹(FIFA) 누리집엔 “그의 선방이 없었다면 전반에만 2,3골은 내줬을 것”이란 평가가 뒤따랐다. 영국 축구전문 매체 HITC에선 “조현우를 영입해야 한다”는 리버풀 팬들의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 6월 18일 골키퍼 조현우가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올라 토이보넨(20)의 헤딩에 앞서 공을 잡아내고 있다. ⓒ연합
디펜딩챔피언 독일을 비롯해 브라질, 아르헨티나까지 2014 브라질월드컵 4강국이자 유럽과 남미의 대표 주자들이 모두 일격을 당했다. 미국의 스포츠전문매체 ESPN은 “영원한 우승후보인 독일과 브라질 그리고 아르헨티나가 조별리그 1차전서 함께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은 월드컵 역사상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세계랭킹 1위인 ‘전차군단’ 독일은 대회 초반 최대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지난 18일 멕시코와 F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0-1로 무릎을 꿇었다. 독일이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진 건 1982년 이탈리아 대회에서 알제리에 패한 이후 36년 만, 또 첫 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친 건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폴란드전 0-0) 이후 40년 만이다. 멕시코에게 패한 건 1985년 평가전 이후 33년 만이다. 이번 대회 8경기에서 5승3무의 초강세를 보이던 유럽팀 중 첫 패배의 불명예도 독일이 썼다. 이어 열린 E조 1차전에서 브라질 역시 스위스를 넘지 못하고 1-1로 비겼다.
그에 앞서 D조의 아르헨티나는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가 페널티킥 실축까지 하면서 월드컵 본선에 처음 오른 ‘소국' 아이슬란드와 1-1 무승부에 그쳤다. 다급해진 경기 후반 아르헨티나는 아구에로(맨체스터시티)에 이어 곤살로 이과인(유벤투스)까지 유럽 3대 리그(스페인·잉글랜드·이탈리아) 득점왕을 총출동시켰지만 끝내 골문을 열지 못했다.
프랑스는 C조 1차전에서 호주에 쩔쩔매다 비디오판독시스템(VAR) 덕에 가까스로 이겼고, B조의 이란은 볼 점유율 36%로 경기 내내 밀리다 후반 인저리타임 모로코 수비수의 자책골로 행운의 승리를 거뒀다. 조별리그 1차전이 모두 끝난 가운데 A조의 개최국 러시아는 예상을 깨고 가장 먼저 2승을 올려 16강 진출을 눈앞에 뒀다. 러시아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70위로 참가 32개국 가운데 가장 낮다. H조에서 콜롬비아를 꺾은 일본은 월드컵 사상 남미팀을 이긴 첫 아시아팀이 됐고, 아프리카의 복병 세네갈은 세계랭킹 8위 폴란드를 제압했다. 누구도 방심할 수 없고, 절대 강자도 약자도 없는 월드컵의 묘미가 속출하고 있다.
한편 비디오판독 시스템(VAR)이 도입된 이번 대회 1차전 17경기에서 10개의 페널티킥이 쏟아져 세 차례 나왔던 단일 월드컵 최다 페널티킥(18개) 경신은 시간 문제다. 자책골도 5개로 1998년 프랑스월드컵의 6개를 넘어설 조짐이다.
떠오르는 샛별은 누구
월드컵은 슈퍼스타의 등용문이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콜롬비아의 하메스 로드리게스(바이에르 뮌헨)가 혜성처럼 등장해 정상급 스타로 자리매김했고 이전에도 루카스 포돌스키, 토마스 뮐러(이상 독일), 폴 포그바(프랑스) 등이 월드컵 무대를 통해 한 단계 도약했다. 이번 대회에선 러시아 27세 늦깎이 공격수 데니스 체리셰프(비야레알)는 벌써 3골을 기록하며 득점왕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신성’ 가운데 돋보이는 선수는 단연 독일을 침몰시킨 멕시코의 이르빙 로사노(PSV에인트호번)다. 만 22세의 윙어 로사노는 연령대별 대표팀을 거쳐 2017년부터 성인 대표팀에서 뛰었다. 자국 리그 파추카에서 뛰다 지난 시즌 유럽에 진출한 후 소속팀에서 29경기에 출전해 17골(8도움)을 넣으며 맹활약했다. 대회 전부터 최고의 기대주로 뽑힌 로사노는 독일과의 경기에서 기대에 걸맞은 ‘한 방’을 꽂았다. 미국 CBS스포츠는 월드컵 이후 로사노가 스페인이나 잉글랜드, 독일 무대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했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제2의 앙리’로 불리는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는 호주와 1차전에서 풀타임을 뛰며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19세 178일’로 월드컵과 유로 등 주요 대회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프랑스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선수가 됐다. 음바페는 2016년 AS모나코에서 데뷔한 후 정규리그에서만 5골을 몰아넣으며 팀의 우승을 이끈 뒤 지난해 파리 생제르맹에 둥지를 틀었다. 이적료는 무려 1억 6500만 파운드(약 2427억 원), 연봉은 1650만 파운드(약 242억 원)으로 월드컵 활약이 예견된 ‘무서운 10대’다. G조에서 잉글랜드의 첫 승을 이끈 젊은 미드필더 델레 알리(토트넘)의 경기 조율 능력도 돋보였다.
이 밖에 부활을 꿈꾸는 ‘무적함대’ 스페인의 마르코 아센시오(레알 마드리드)와 가브리엘 제수스(브라질·맨체스터시티)도 수준급의 기량을 과시했다.
성환희│한국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