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가는 남북 철도협력 청신호

2018.06.17 최신호 보기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 유럽까지 가는, 이른바 ‘철의 실크로드’ 시대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우리나라가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Organization for Cooperation of Railways) 정회원국이 되면서 우리나라 철도와 유라시아 철도망의 연계를 위한 국제적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해빙 무드에 접어든 남북 관계에 힘입어 OSJD 가입 효과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열린 OSJD 장관급 회의에서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OSJD는 1956년 6월 구 소련과 동구권 국가 간 화물운송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창설된 국제기구다. 중국횡단철도(TC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몽골종단철도(TMGR) 등 유라시아 횡단 철도가 지나는 모든 국가들이 참여해 총 28개국을 정회원으로 두고 있다. 정회원 국가 외에 옵서버 7개국 철도회사를 비롯해 각국 철도 운영회사로 구성된 44개 제휴회원도 있다.

경기 파주시 도라산역에 사울과 평양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있다.

경기 파주시 도라산역에 서울과 평양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있다. ⓒ연합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정회원 가입을 추진해왔으나 북한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기존 회원국의 만장일치 찬성을 받아야 하는 정관 규정을 충족하지 못해서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는 북한이 찬성 의사를 밝혔다. 한국 대표단장을 맡은 손명수 국토교통부 철도국장이 의제 상정에 앞서 공식 연설을 통해 한국 가입안 지지를 요청했는데 북한도 찬성표를 던지면서 가입이 최종 결정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남북 화해 기류가 조성되면서 북한이 전향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분석했다. OSJD 가입 기회는 매년 한 번씩 주어지는데 그동안 반대해온 북한이 동의함에 따라 1년 안으로 남북 간 철도 연결 의지를 보였다는 분석이다. 앞서 국토부는 “46차 OSJD 장관회의는 두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기존 태도가 변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열리게 됐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대륙철도 연결 개요

한반도 신경제지도 추진에 탄력

정회원 가입으로 우리나라는 OSJD가 관장하는 국제철도화물운송협약(SMGS), 국제철도여객운송협약(SMPS) 등 유라시아 철도 이용에 중요한 협약들을 다른 회원국과 체결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게 됐다. OSJD는 여타 국제기구와 달리 다자간 협정에 근거하고 있어 정회원이 되면 해당 노선이 지나는 국가들과 일일이 개별 협정을 맺지 않아도 된다. 화물운송 통관절차에서도 회원국 간 우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유라시아 철도를 활용한 물동량 증가 등의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남북 철도 협력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남북은 지난 6월 1일 고위급회담에서 동해선·경의선 철도와 도로 연결 및 현대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도로협력분과회의를 개최하자는 데 뜻을 모은 바 있다. 경의선은 이미 연결돼 있으나 북측 구간이 노후화돼 현대화가 필요하고, 동해북부선 남측 일부 구간(104km)이 단절된 상태다. 고위급회담 당시 개최 날짜와 장소는 추후 합의하기로 했는데 이번 OSJD 가입을 계기로 본격적인 논의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두 노선의 협력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남북 열차의 연결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 철도까지 우리 열차를 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OSJD 가입 승인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서해안과 동해안, 비무장지대 지역을 H자 형태로 동시 개발하는 남북 통합개발 전략이다. 대륙 철도와의 연결을 전제로 동쪽에서는 부산-금강산-원산-나선-러시아로 이어지는 에너지 벨트를 조성하고, 서쪽에서는 목포-평양-신의주-중국을 연결하는 산업·물류 벨트를 만드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우리나라와 러시아 정부가 철도, 가스 등 종합적인 경제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부분이 OSJD 가입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도 생겼다. 지난 6월 7일 양국은 제17차 경제과학기술공동위원회에서 가스·철도·항만·전력 등을 포함한 협력 사업을 구체화하기로 합의했다. 이 사업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동방경제포럼에서 제안한 것으로, 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6월 21일 러시아 국빈 방문에서 진일보한 방안을 도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한국과 러시아 간 협력을 동북아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의 공동 번영과 발전으로 연결해나가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며 이를 뒷받침했다.


나희승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
“북한 찬성, 철도 협력에 강한 의지 표명”

나희승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

“기존 28개 회원국과 운송협정을 맺은 것과 같아요.” 나희승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은 우리나라가 OSJD 정회원이 된 것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열차를 타고 회원국을 지나더라도 별도 협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더불어 OSJD는 운임협정도 관장하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요율의 운임으로 운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게 나 원장의 평가다.

“택시 미터기처럼 운임을 책정할 수 있는데 운임을 할인해주는 협정도 있거든요. 이제 우리나라도 정회원이 됐으니 운임과 관련한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만들 수 있죠.”

나 원장은 남북 철도 협력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북한이 OSJD 장관급 회의에서 찬성 의사를 밝힌 건 남북 간 철도를 운행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그는 이전 회의에서 북한이 우리나라 가입안에 반대했다기보다 유보했다는 표현이 보다 적합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2007년 5월 남북 열차 시험운행을 실시하고 그해 12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도라산에서 판문까지 정기 화물열차를 운행한 적이 있어요. 북한 내부로 들어가서 운행하려면 OSJD 룰에 따라야 하지만 남북 접경지역을 운행할 때는 남북 열차 시험운행 군사적 보장 합의서로도 가능하거든요.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남북 열차 운행이 먼저고 그 이후에 OSJD에 가입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해온 거죠. 결국 이번에 북한이 찬성한 건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까지도 열차를 연계 운행하겠다는 암묵적 동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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