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도시… “이젠 서울에서도 행복할 수 있죠”

2018.06.03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결혼 전 두 사람은 이런 약속을 했다. 언젠가 “아르헨티나에서 1kg에 1만 원 하는 소고기를 먹어보자”고. 그 ‘언젠가’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처음에는 결혼하고 5년 안에는 가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굳이 미룰 이유가 없었다. 막상 가보니 아르헨티나는 생각보다 근사한 곳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한 달은 ‘한 나라 한 도시’라는 두 사람만의 룰에 변수가 됐다. 결국 한 달을 더 머물렀다. 두 사람의 여행은 그렇다. 룰을 정하는 것도, 그 룰을 바꾸는 것도 둘이 결정한다. 남편 백종민 씨는 말했다.

김은덕·백종민 부부가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포즈를 취했다.

▶ 김은덕·백종민 부부가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포즈를 취했다.

“혼자라면 시도도 못했을 일이에요. 은덕 씨와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했죠. 은덕 씨가 주로 새로운 시도를 추진하고 저는 그 시도의 디테일을 만들어요. 서로가 너무 다른데 달라서 잘 맞아요. 쑥스럽지만 ‘천생연분’이 이런 건가 싶어요.”

지금이야 수줍게 ‘천생연분’이라는 말도 꺼내지만, 자기애가 강했던 남자와 여자는 결혼으로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람이라면’ 부부이기 이전에 독립된 개체로 살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둘은 이 마음을 ‘결혼 선언문’에 담았다. 두 사람이 쓴 결혼 선언문은 “인생의 목표를 집의 평수를 넓히는 데 사용하는 대신, 인생을 즐기며 살겠다”는 선포다. 이 선포의 내용은 “세계 여행의 꿈을 실현하는 것”으로 이뤄졌다.

현지인의 삶 안으로 들어가보는 여행

“한 달이라는 시간은 참 적당했어요. 처음 한 주는 그 동네와 친해지는 데 보내요. 다른 관광지를 가기보다는 마을 안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길을 익히죠. 그러다 보면 친숙해진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서 좋은 여행지를 추천해줘요. 직접 태워서 데려다주기도 하고요. 그렇게 두 주를 지내다 보면 다시 떠나야 할 시간이 찾아와요. 그럼 정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음 여행지로 여정을 계획하죠.”(김은덕)

관광 명소에 발도장을 찍는 여행이나 맛집 투어는 두 사람이 원하는 여행의 방식이 아니었다. ‘각 도시의 집 냉장고를 열어보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 정도로 현지인과 마음을 나누고, 그들의 내밀한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여행자보다는 가까운, 현지인보다는 먼 이방인의 눈으로 본 세상은 날마다 달랐다. 달라진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몸이 자주 아팠어요. 스트레스도 있었을 거고, 전반적으로 면역력에 문제가 있었겠죠. 매일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서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새 ‘아프다’는 말을 안 하는 거예요. 우리 여행이 쫓기듯이 진행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속도에 맞춰서 해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건강해지는 기분이었어요.”(백종민)

패키지여행이 아니니 일정은 언제든 바뀔 수 있었다. 충분히 자고 충분히 쉬며 움직여도 한 달은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보통 이렇게 말한다. 학생이거나 취업준비생인 20대에는 여행 갈 시간은 있지만 돈이 없다. 직장인이 되고 난 30대에는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다. 두 사람은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세계 여행을 하는 데 보통 한 사람당 2500만 원에서 3000만 원이 든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어요. 저희는 그 정도 비용으로 두 사람이 다녀왔어요. 항공권이나 숙소도 미리 예약해두고 출발했죠.”(김은덕)

이란의 테헤란에서는 주거비와 생활비를 합쳐 한 달 68만 원으로 살았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유럽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도 주거비와 생활비가 100만 원 남짓이었다. 두 사람의 숙소는 주로 여행지의 숙박 공유 사이트를 이용했다. 현지인처럼 살아보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이스탄불처럼 언제든 마음을 열고 환대해주는 도시가 있는가 하면, 의외로 마음을 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도시도 있어요. 그럼 그 속도에 맞춰서 사는 거죠.”(김은덕)

24개월간 한 달에 한 도시씩 살아본 김은덕·백종민 부부

▶ 24개월간 한 달에 한 도시씩 살아본 김은덕·백종민 부부 ⓒC영상미디어

‘당연한 것은 없다’는 감사함

두 사람은 2년 동안 약 60개 도시를 다녀왔다. 그사이 ‘한 달에 한 도시’를 여행하는 삶에 익숙해지는 순간도 왔다. 여행이 ‘당연한 일상’이 되는 것을 경계해 두 사람은 초심을 마음에 그리고 몸에 새겼다.

“브라질에 갔는데 여행에 대한 감각이 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왼팔 위쪽에 우리가 그동안 다녀온 도시들을 새겼어요. 그때 그 마음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요.”(백종민)

두 사람이 결혼 선언문을 써두고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처럼 ‘한 달 살기’의 감각도 잃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한국에 들어와서도 일상의 속도에 매몰되지 않는 건 그런 노력의 결과다.

“모든 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배웠어요. 여행 후에 본 서울은 달라요. 서울에 흐르는 한강도 달라 보이고, 우리나라의 80%를 차지한다는 산도 달라 보여요. 저희는 지금 반지하 집에 살지만 저희 둘이 함께할 수 있는 그 공간이 너무 소중해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속도에 맞춰 사는 게 행복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그 행복을 지킬 힘도 생겼고요.”(김은덕)

이들은 더 이상 서울 시민이 아니다. 세계와 그들의 삶을 채워 넣은 세계 시민이다. 혹자는 묻는다. ‘한 달에 한 도시’를 살아 너희에게 남은 게 무엇이냐고. 두 사람에게는 서로가 남았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 밤에 잠자리에 누워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떠올려도 그 기억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 처음 여행을 떠날 때는 서로 달랐던 두 사람이 지금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른 한 사람이 이어 말해도 같은 이야기가 될 정도다. 두 사람의 삶을 걱정했던 부모님도, 이제는 자식의 선택을 지지한다. 이들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줬다. 인터뷰를 마치고 두 사람은 다시 일본으로 떠난다. 

“이제 서울에서 살아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가 달라졌으니까요. 하지만 저희의 여행은 계속됩니다.”(김은덕·백종민)


유슬기│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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