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1위’는 마치 신기루와도 같은 단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기회 또는 우연을 통해 선택 받은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신비의 왕좌. 이는 당신이 영어권이 아닌 국가 출신이라면 더욱 가깝게 느껴질 감각이다. 특히 음악을 하고 있다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피붙이처럼 들어왔지만 실제로 가 닿을 수는 없는, 멀고 먼 미지의 땅.
2018년 5월, 방탄소년단(BTS)의 이름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건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빌보드 싱글 차트 첫 진입 10위’라는 기록은 단순히 한 그룹이 거두어낸 성과 그 이상이었다. 대한민국에 대중음악이라는 단어가 생긴 이래, 셀 수 없이 많은 재능 있는 젊음이 염원해온 숫자가 실제로 기록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오랜 꿈의 실현. 아이돌 팬덤은 물론 음악 마니아, 심지어 대통령까지 축전을 보내는 것이 크게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방탄소년단이 거둔 이러한 결과는 단순한 이슈나 하이프(Hype·대대적인 광고나 홍보)에 기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보다 의미심장해진다. 이들이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발표한 ‘화양연화 pt.2’가 빌보드 앨범 차트 171위에 진입한 것을 시작으로 발표하는 앨범마다 착실하게 순위를 높여왔다. 1위를 차지하기까지 실질적으로 3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 셈이고, 이는 이들이 짧지 않은 시간에 팬 층을 탄탄히 넓혀왔다는 증거다. 그렇게 구축된 전 세계 아미(ARMY, 방탄소년단의 팬덤명)가 이들의 트렌디한 음악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속에 담긴 메시지까지 언어와 상관없이 깊게 공감하고 있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청춘의 아픔, 사랑의 희로애락 등 지금을 살고 있는 젊음이라면 누구나 쉽게 마음을 열 수밖에 없는 테마 앞에 인종도, 국적도, 언어도 무용해진 셈이다.
이는 수년 전 싸이가 ‘강남스타일’, ‘젠틀맨’으로 거둔 성과와 방탄소년단의 그것 사이에 명확한 차이점을 만든다. ‘강남스타일’이 중독성 넘치는 후렴구와 말춤으로 세계인을 즐겁게 해주었다면, 방탄소년단을 지지하는 이들은 오로지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과 이들이 만들어내는 음악, 이미지, 이야기, 서사, 무대에 집중하고 열광한다.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한다면, 맞다. 한국의 아이돌팝, 즉 케이팝의 가장 큰 파이를 장악하고 있는 이들의 팬덤과 매우 흡사한 형태다. 우리에게는 이미 너무나 익숙해진 특정 팬덤의 활약은 해외 음악시장에서는 1960년대 중반 밴드 비틀스로부터 촉발된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나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 자체만큼이나 흥미로운 존재로 여겨진다. 넘치는 에너지와 행동력으로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아미가 방탄소년단과 샴쌍둥이처럼 자주 소환되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연합
그렇다면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방탄소년단이 그룹 구성에서 팬덤 유형까지 기존 케이팝 그룹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물론 그 전형성을 해외에 전파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라면 다른 그룹은 안 되고 이들만 될 수 있었던 원인은 뭘까. 현 시점을 기준으로 이 질문에 내릴 수 있는 대답은 사실 허무하리만큼 쉽다. 사랑받는 대중문화의 대부분이 그렇듯 콘텐츠의 힘과 타이밍의 조화다.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양과 질 모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 초반 물량 공세와 유튜브, 트위터 활용에 특화된 전 세계 젊은이들 사이의 기막힌 궁합이 없었다면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1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흑인음악과 전자음악, 케이팝과 팝 사이의 절묘한 합의점을 찾아낸 이들의 음악과 그것을 극대화시킨 무대 퍼포먼스 그리고 그 모두를 유기적으로 연결해주는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없었다면 빌보드 1위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지금을 예측하지 못했듯 누구도 다음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단 하나 확실한 건, 방탄소년단이 지금 거두고 있는 성과들은 지금의 방탄소년단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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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