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성수동구두타운 근처에 위치한 드림제화 대표 유홍식(70) 씨는 서울시 구두 명장 1호다. 2014년 성동구는 ‘성동구 수제화 명장 선정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성동구 수제화 산업현장에서 수제화 숙련 기술을 보유한 기능인 중 명장을 선발했다. 장인정신이 뛰어나고 수제화 제조산업의 계승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 당시 유홍식 씨는 명장 타이틀을 얻었다. 명장 공모에는 유 씨 등 일곱 명의 쟁쟁한 후보들이 응모해 서류심사, 현장실기, 면접의 과정을 치렀다.
▶ 발 모양과 사이즈에 맞게 형틀을 만들고 있는 유홍식 명장 ⓒC영상미디어
성수동에 수제화 매장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다. 일제시대 서울역 인근 가죽창고에서 시작한 수제화 매장은 1970~1980년대 명동에서 크게 번성하다 이후 성수동으로 대거 이동했다.
성수 수제화는 한때 ‘구두의 메카’로 불릴 정도로 황금기를 맞았으나 수입 명품과 저가 중국 제품이 들어오면서 침체 상태에 놓였다. 이에 성수동 수제화를 지역특화사업으로 지정해 문화·관광 상징 사업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서울시, 성동구청, 서울메트로 등의 협력으로 성수 구두테마역(슈스팟 성수) 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서울시는 성수동을 한국의 볼로냐(이탈리아 명품구두 생산단지)로 키운다는 목표 아래 수제화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성수구는 오래전부터 구두 제조업체가 많았던 지역의 특성을 살려 ‘성수동 수제화 산업 활성화’ 사업을 적극 펼쳐왔다. 성수동은 수제화 생산업체 300여 곳과 중간가공·원부자재 유통업체 각각 100여 곳 등 총 500여 곳이 넘는 수제화 관련 업체들이 즐비해 있다. 또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아래에는 수제구두 전시 공간이 마련돼 성수역 자체가 ‘구두테마역’이다.
성수 구두테마역은 2013년 11월, 2호선 성수역사 2층 1·4번 출구 방향과 3층 지하철 승강장 공간 일부를 활용해 구두 관련 전시·체험관·갤러리 등으로 조성한 구두 테마 공간이다. 성수동 수제화 산업의 가치 확산과 홍보를 위해 마련된 이곳은 구두지움, 슈다츠, 구두장인공방, 다빈치 구두 등의 콘텐츠로 구성돼 성수동 수제화의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성수역에서 내리면 자연스럽게 나한테 어울리는 구두를 한 번쯤은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구성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11개의 구두 공방이 마을공방으로 운영되고 있어 구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둘러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6월 19일 성수동 드림제화를 찾았을 때 유홍식 씨는 묵묵히 구두를 만들고 있었다. 기성 구두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패턴과 문양이 섞인 화려한 구두가 특징이었다.
유 씨는 “내가 직접 디자인한 구두로, 여기서밖에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만 만들 수 있다”는 데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색깔, 모양 선택할 수 있는 수제구두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성공한다고 말한다. 명장이 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본인이 좋아하고 미쳐야 가능하다”며 “구두 만드는 것이 재미있었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니 명장이 됐다”고 했다.
왜 사람들이 수제구두를 찾을까. 유 씨는 “자신이 원하는 색깔과 모양을 가진 구두를 마음대로 고르기 위해서는 수제구두를 신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성격이 시원시원했다. 유 씨는 70세가 되도록 평생 이 일에 매달린 이유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10남매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났는데, 집안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솔직히 공부하기 싫어서 무작정 상경했죠. 선배가 명동에서 구두를 만들고 있었는데, 배워보니 적성에 맞아 평생 하게 됐어요.”
전남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가 그의 나이 열세 살 즈음이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반대가 크지 않았을까.
“반대하셨죠. 하지만 적성이 맞으니 끝까지 하겠다고 이야기하자 부모님도 기술을 배워오면 신발가게를 열도록 도와주겠다며 손을 들었죠.”
평생을 매달린 손기술과 명장이라는 명성은 사업에 큰 도움이 되는 듯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손님들이 가게를 찾아 자신에 맞는 구두를 신어보고 했다.
사실 그는 ‘억대 매출을 올리는 서민 갑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가 만든 수제화는 최소 40만 원이고, 특수한 세공법이나 희귀 가죽을 사용할 경우 100만 원이 넘는 것도 많다. 새벽 5시에 출근해 저녁 7시에 퇴근하면서 하루 최대 여덟 켤레의 구두를 꾸준히 만들고 있다. 유 씨가 만든 구두는 모두 그의 가게에서만 판매된다.
“한국인 손재주는 세계 최고”
유 씨는 “한국인의 손재주는 세계 최고다”라며 “정책적으로 구두산업을 지원해 세계 일류 상품을 만들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기술에 대한 자부심은 더 대단했다. 그는 과거 세계기능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이 수제화 부문을 3연패하자 다른 나라들이 참여하지 않아 수제화 부문이 없어질 정도로 한국인의 실력은 세계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실력이 출중하니 기술 한국의 미래는 밝다는 것이 유씨의 생각이다. 조금만 지원하면 된다는 부탁도 했다. 어떤 지원이 가장 필요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서울시장이 직접 가게를 방문해 구두명장 인증패를 수여한 기억을 떠올렸다. 경제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자긍심을 키워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 가죽 박음질 공정 ⓒC영상미디어
유 씨는 작년 말 갑작스러운 유명세를 탔다.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 여섯 켤레를 만들어서다.
“직접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 발 사이즈를 쟀다”며 “그전까지 낡은 구두를 신고 있어 놀랐다”고 했다. 대통령의 구두를 제작하자, 성수동 거리에서는 그를 ‘구두 대통령’이라고까지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경력 때문에 매스컴 출연도 잇따랐다. 방송, 신문 등 다양하게 소개되면서 명장으로 더 유명해졌다.
본인이 기술로 성공한 만큼 유 씨는 “젊은이들이 수제화 기술을 배우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혔다. 나이를 먹으면 기술의 중요성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며 “나도 나이가 칠십인데도 잘 먹고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선진국으로 성장하면 기술을 배운 사람이 잘 살게 되는 것”이라며 “장관, 서울대 나온 사람 하나도 안 부럽다”고 말했다. ‘기술을 배워 당당하게 살라’는 삶의 조언이었다.
이정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