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일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하 백두대간수목원)이 정식 개원했다. 아시아 최대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수목원이다. 더욱이 민족의 정기가 서려 있다고 표현하는 백두대간에 자리하고 있어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 거울연못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쉬엄쉬엄 걸으며 주변을 감상하기에 좋다. ⓒC영상미디어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전체 면적의 80% 이상이 산림으로 이루어진 경상북도 봉화군에 위치했다. 산촌답게 수목원 가는 길도 산속에 놓인 길을 따라 얼마간 가다 보면 비로소 백두대간수목원을 만난다. 높은 산이 한 폭의 병풍처럼 수목원을 감싸고 있어 아늑하다는 첫인상을 받았다. 수목원 안에 들어서니 짙은 녹음으로 가득한 푸른 세상이 펼쳐졌다. 푸르른 잎은 빛에 따라 색을 수시로 바꿔 다양한 초록색을 선보였고,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졸졸졸 냇물 흘러가는 소리까지 더해지니 짧은 순간에도 자연이 오롯이 느껴졌다.

백두대간수목원은 정식 개원에 앞서 2016년 9월부터 1년 8개월 동안 임시 개원을 했다. 그동안 수목원은 방문객 14만 6000여 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정식 개원을 준비하면서 잠시 휴관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이 개원식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후문이다. 그래서일까. ‘숲을 누리다 행복을 누리다’라는 주제로 열린 개원식에는 지역주민, 지자체, 전국 수목원 관계자 등 1000여 명이 참석해 한마음 한뜻으로 축하 박수를 보냈다.
 
한반도 척추에 자리 잡은 수목원

▶ 방사훈련을 마친 백두산 호랑이 ‘한청’이와 ‘우리’가 일반에 공개되었다. ⓒC영상미디어

▶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내부 진입로 모습. 다리를 건너면 진입광장과 트램 출발역이 있다. ⓒC영상미디어

▶ 자연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방문자센터 내부. 나무 줄기를 형상화한 기둥이 인상적이다. ⓒC영상미디어

▶ 방문자센터 2층 특별전시관에서는 안창수 화백의 ‘백두대간, 호랑이를 그리다’를 주제로 한 동양화 전시회가 6월 3일까지 열린다. ⓒC영상미디어

백두대간수목원은 전시·연구·휴양 기능이 복합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전체 규모는 5179ha로 아시아에서 최대이며 세계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한탐국립식물원(6229ha)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중점시설지구는 206ha이며 연구 및 관리동 21동과 27개 주제전시원으로 꾸며졌다. 이곳에는 특산식물, 자생식물, 희귀식물, 귀화식물, 재배식물, 멸종위기 보호대상 식물까지 2189종의 식물이 식재되어 있다. 그 외 4973ha는 생태탐방지역이다. 소나무 군락, 신갈나무 군락 등 습한 계곡성 식생이 발달한 곳으로 백두대간 보호지역의 핵심구역과 완충구역을 포함한다.

백두대간수목원은 문자 그대로 백두대간 능선에 자리 잡았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를 말한다. 총길이는 약 1400km이며 남한 쪽 길이만 701km에 달한다. 한반도를 호랑이로 형상화했을 때 등뼈를 이루는 모습이라 ‘한반도의 척추’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한 민족정기의 상징이며, 국토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자생식물 33%가 서식하고 그중 특산식물 27%, 희귀식물 17%가 있는 중요한 생태축이자 다양한 생물종의 보고로 높은 가치를 지녔다. 최근 기후 변화,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백두대간이 심하게 훼손되어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목원은 훼손된 백두대간 산림생태계의 친자연적 복원과 생물 다양성 유지 등 체계적으로 보전 및 관리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산림생태계의 변화 예측 및 적응을 연구하며, 기후 변화에 취약한 한반도 식물 종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 지역 산림식물자원 수집 및 보전에도 힘쓸 예정이다. 김재현 산림청장은 개원식에서 “기후·식생대별 국립수목원을 조성해 산림생물자원의 보전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방문객을 위해 식물 생태와 중요성에 대해 알리는 교육과 볼거리,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휴양 및 관광, 체험서비스를 담당하며, 백두대간 산림환경과 산림문화 유산을 알리는 데도 앞장선다. 수집된 식물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기초를 제공하는 학술연구 기능을 수행하며, 지속 가능한 수목원 조성과 운영을 위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막중한 역할도 맡았다.

미래 씨앗을 품은 한국판 노아의 방주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는 야생식물 종자 영구저장고인 ‘시드볼트(Seed Vault)’가 2016년부터 가동되고 있다. 시드볼트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최초이며 시설로만 보자면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농업 종자용이라 야생식물 종자 저장시설로는 백두대간수목원이 세계 최초다. 시드볼트는 지구온난화와 기후 변화, 국가 재난 등으로 인해 소실될 수 있는 산림종자를 보존하기 위한 저온저장시설이다. 멸종에 대비해 장기 저장하기 때문에 시드볼트를 ‘한국판 노아의 방주’라고도 부른다. 전 세계 30만 종의 식물 중 안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종은 단 30%에 지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시드볼트는 최대 200만 점 이상 저장이 가능해 앞으로 아시아 지역의 산림식물자원을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고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지하 40m 깊이 터널에 종자를 보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종자 저장시설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며 특히 지하 터널형 구조를 적용한 사례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종자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보관하기 위해 터널 안은 영하 20℃, 상대습도 40%로 연중 24시간 유지된다.

해발고도 높아 늦게 개화하는 봄꽃

2017년 4월 제주도한라수목원은 한라산 일대에서 채집한 산림식물 종자를 백두대간수목원에 저장 위탁했다. 120점의 식물 종자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대표 침엽수인 구상나무, 한라구절초 등 보존이 시급한 희귀종과 멸종위기종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같은 해 8월에는 토종 종자 보전단체인 ‘토종씨드림’에서 보유종자 2638점을 맡기는 등 종자 보존을 위해 국내 수목원, 연구소, 대학 등 12개 기관에서 맡긴 4만여 점의 종자를 보관하고 있다. 2018년 3월 말 기준으로 4만 6670점의 종자가 저장돼 있으며 올해 말까지 5만 점, 오는 2023년까지 야생식물 종자 30만 점 저장 달성 계획을 세웠다. 향후 전 세계 야생식물 종자의 대부분을 저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종자들은 보존은 물론 유전자 다양성까지 확보하게 돼 후손에게 더욱 풍부한 미래 유산을 전해줄 수 있게 됐다.

백두대간수목원에서는 산림자원 외에도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 백두산호랑이를 볼 수 있다. 수목원과 호랑이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생각할 수 있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백두대간을 따라 남·북한을 자유롭게 활보했다. 하지만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뒤 100년 가까이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백두대간을 대표하는 수목원에서 종 보존 활동과 함께 100년 만에 호랑이를 백두대간 품으로 되돌린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백두산호랑이의 보금자리인 ‘호랑이숲’은 호랑이의 넓은 활동 영역을 고려해 백두대간 중턱에 축구장 7개를 합친 크기인 4.8ha 규모로 조성됐다. 최대 10마리가 수용 가능한 국내 최대 호랑이 방사시설이다. 자연 지형과 식생을 최대한 활용해 호랑이가 서식하는 환경과 유사하게 만들었다. 먼저 버드나무와 소영도리나무 위주로 푸른 숲을 조성했다. 암석과 자연석을 이용한 호랑이 쉼터를 설치했고, 목을 축이고 목욕도 할 수 있는 대형 연못도 만들었다. 이렇게 조성된 호랑이숲에 호랑이가 자연 방사되었다. 백두산호랑이가 한반도 남쪽 숲에 방사되는 것은 100년 만이다.

백두대간수목원에 있는 호랑이는 2017년 1월 경기 포천 국립수목원에서 도입한 두만이(수컷, 17세), 같은 해 6월 서울대공원에서 온 한청이(암컷, 13세), 우리(수컷, 7세) 총 세 마리가 있다. 임시 개원기간 동안 호랑이들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정식 개원에 맞춰 세 마리 중 두만이를 제외한 한청이와 우리가 일반에 공개됐다. 두만이는 따로 마련된 방사장에서 적응 훈련을 하며 방사 여부와 시기를 차차 조율할 예정이다.

정식 개장 후 수목원에는 호랑이를 보러 온 인파로 북적였다. 5월 5일부터 7일까지 연휴 기간 동안 1만 명에 가까운 관람객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돼 당분간 호랑이의 인기가 식지 않을 전망이다.

주제전시원(주제원)은 시드볼트, 호랑이숲과 함께 백두대간수목원을 대표하는 곳으로 꼽힌다. 명칭 그대로 각 주제에 따라 대표 식물을 전시해놓은 것으로 총 27곳이 있다. 수목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 중 암석원, 고산습원, 백두대간 자생식물원은 꼭 둘러봐야 할 대표 주제원이다. 세계 최대 규모로 조성된 암석원에서는 고산건조지역 바위틈에서 자라는 약 800종의 식물을 만날 수 있다. 암석 위 또는 주변에 자연스럽게 식재돼 있어 돌 틈 사이사이에 핀 꽃을 살펴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해발 680m 언덕에 위치한 암석원에서 내려다보면 야생화 언덕과 함께 탁 트인 수목원 전경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놓치지 말아야 할 관람 포인트다. 백두대간 자생식물원은 백두대간에서 자라는 우리 식물을 기후 특성에 따라 온대북부지역, 온대중부지역, 온대남부지역으로 구분해 쉽게 살펴볼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자연습지 지형을 보존해 고산의 습지를 재현해낸 고산습원에서는 평소 쉽게 볼 수 없는 고산습지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이외에도 물억새와 달뿌리풀 등이 자라는 하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수변생태원, 우리나라의 다랭이논을 형상화한 돌담정원, 대규모 초화류 군락을 통해 고산지대 대표적인 초원을 형상화한 야생화언덕, 하얀 수피를 뽐내는 자작나무원 등도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백두대간수목원은 해발고도가 500∼1200m로 높아 타 지역에 비해 봄꽃이 늦게 핀다. 개화시기에 맞춰 각 주제원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5월 15일부터는 털개화나무(꽃나무원), 17일은 함박꽃나무(꽃나무원), 21일 철쭉(진달래원), 22일 백당나무(꽃나무원), 23일 구슬댕댕이(식물분류원), 24일 복주머니란(야생초화원), 25일 도깨비부채(백두대간 자생식물원), 26일 뻐꾹채(백두대간 자생식물원)가 필 예정이다.

백두대간수목원은 넓고, 봐야 될 주제원이 많아 트램 이용을 적극 권한다. 수목원을 가볍게 둘러볼 수 있는 ‘쉬엄쉬엄 산책 코스’부터 호랑이숲, 암석원, 고산습원 대표 주제원만 쏙쏙 볼 수 있는 ‘깊은 숲속 호랑이 코스’ 등 트램 노선과 승하차장을 잘 이용한다면 보다 수월하게 관람할 수 있다. 걷는 걸 좋아한다면 길을 따라 수목원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도보 코스를 추천한다. 시간은 제법 걸리지만 낮게 핀 야생화를 보고 일렁이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힘든 것도 잊은 채 수목원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 중 백두대간이란 명칭을 쓴 곳은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유일하다. 그만큼 정통성을 인정받는다는 뜻이며, 백두대간을 상징하는 대표 수목원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수목원은 ‘백두대간’이란 네 글자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곳곳마다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이용 안내

주소  경북 봉화군 춘양면 춘양로 1501
운영일  화요일~일요일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연휴
관람시간 하절기(3월~10월) 오전 9시~오후 6시 
             동절기(11월~2월) 오전 9시~오후 5시
입장료 개인 기준 성인 5000원, 청소년 4000원, 어린이 3000원
문의  054-679-1000

이선희│위클리 공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