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약 22.2㎞ 떨어진 화도(花島)는 소의 머리를 닮은 윗꽃섬 상화도와 복조리를 닮은 아래꽃섬 하화도로 나뉜다. 상화도는 37가구 98명, 하화도는 27가구 31명이 산다. 영화 ‘꽃섬’의 주인공 임옥남은 “꽃섬에 가면 모든 슬픔과 불행을 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방송 프로그램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하화도는 그렇게 여행자들에게 추억의 ‘꽃섬’이 되었다. 섬도 사람도 그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될 때에 비로소 사랑이 되고 기억이 된다.
▶ 꽃섬 돌담고개서 바라본 마을 풍경과 맞은편 상화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던 것처럼 말이다.
‘꽃섬’으로 불리는 하화도는 임진왜란 때 인동 장씨 가족이 뗏목을 타고 피난 중에 동백꽃 등이 흐드러지게 핀 섬을 보고 정착하게 됐다. 이순신 장군이 전선을 타고 가던 중 꽃이 만발한 이 섬을 보고 화도(꽃섬)로 명명했다고도 전한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대화도(大花島)로 기록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꽃섬에는 동백꽃, 구절초, 산개나리, 진달래, 원추리 등이 유난히 많이 핀다. 그렇게 야생화가 피고 지는 꽃섬은 주황색 지붕의 섬마을 풍경이 이국적이다. 숲이 꽤 울창하다. 해안선 기암절벽도 절경이다. 특히 봄꽃 필 무렵에 화도에 가야만 섬도 제 이름값을 하고 여행자도 제대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 비밀의 화원처럼 이어지는 동백숲길
꽃섬은 ‘1981년도 범죄 없는 마을’이라는 표지판이 아직도 걸려 있는데 마을 공동체문화도 여태 그대로 살아 있고, 외지인에 대한 친절함도 그만이었다. 여객선에서 내려 발길을 떼면 맨 처음 마주하는 게 동구 밖 느티나무. 느티나무 그늘은 마을 사랑방이자 여행자들의 쉼터다. 작은 섬에 여행객들이 갑자기 몰리면 온 동네 주민들은 이곳에 모여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 파전을 부치는 등 주전부리와 남도의 소소한 추억 만들기를 거든다.
▶ 깻넘전망대에서 바라본 꽃섬 해안 풍경
꽃섬의 해안선 길이는 6.4km, 꽃섬길 코스는 5.7km. 동네 뒷동산 오르듯 편하게 걸으면 되는 오솔길이다. 걷는 이의 편의와 다양한 멋까지 배려한 듯 돌담길, 흙길, 징검다리, 천연목재 데크길이 잘 어우러졌다. 섬 끝에 서서 기지개를 펴며 해풍을 맞기도 하고, 다시 해식동 해조음에 귀 기울이다 보면 아련한 추억의 오솔길을 걷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눈을 들어 바라보는 저 멀리 보이는 다도해의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다. 300m 길이의 ‘자갈도래’ 해변은 자갈 퇴적층 바닷가로 수심이 얕아 해수욕하기에 좋다. ‘칠때’는 밀물 때 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일곱 개 바위섬을 말한다. 이곳이 농어 낚시 포인트다.
꽃섬 걷기 구간은 천천히 걸어도 세 시간이면 충분하다. 걷기 코스는 선착장→휴게정자 1→휴게정자 2→순넘밭넘구절초공원→큰산전망대→깻넘전망대→큰굴삼거리→막산전망대→애림민야생화공원→선착장 구간이다.
휴게정자에서 호흡을 고른 후 600m 정도 걸으면 구절초공원 고개가 나오는데 ‘순넘밭넘은 고개’이다. 오래전 마을의 ‘순’이라는 사람의 밭이 있는 고개라는 뜻이다. 조금 다시 더 걸으면 ‘큰산전망대’ 표지판이 나오는데 꽃섬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 해발 118m에 지나지 않는다.
큰산전망대를 넘어가면 깻넘전망대와 막산전망대를 잇는 출렁다리가 있다. 지난해 3월에 만들었다. 다리 아래로 반짝이는 푸른 바다 빛깔과 절벽에 낀 푸른 이끼를 흔들어대는 갯바람과 파도 소리의 하모니는 작은 꽃섬에서 담아가는 또 다른 멋과 맛이다.
큰굴삼거리의 유채꽃도 봄 바다와 장관을 이룬다. 유채꽃밭을 지나면 야생화공원이 나오는데 배 시간이 촉박하거나 먹거리를 즐기는 시간을 더 갖고 싶다면 과감히 이 지점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게 좋다. 여기까지 걷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한 시간 정도다. 자고로 여행이란 여유의 균형이 중요하다. 마음이 편치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법. 이 지점 이후부터는 해안선 지형과 볼거리 소재들이 다소 중첩되는 느낌과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시간대인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그렇게 꽃섬은 각진 일상에서 벗어나 여백이 있는, 그런 시간의 여행 코스로 제격이다. 바로 앞에 위치한 사도도 가볼 만한 섬인데 바다가 갈라지는 등 스토리가 있는 섬이다. 낚시, 펜션 등 편의시설이 준수하다. 갑오징어, 농어, 숭어가 많이 잡힌다. 이곳 수산물은 여수시내 횟집과 수산시장에서 특산물로 팔린다. 옆 섬 개도는 특히 숭어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꽃섬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대한민국 대표 걷기 길로 선정한 곳이다. 지리적으로 또 다른 남도의 걷기 코스로 선정된 바 있는 해남 달마고도, 고흥 미르마루길, 완도 청산도 슬로걷기 길과도 근접성이 좋아 연계 여행 코스로도 좋다.
전남관광 순환버스인 ‘남도한바퀴’가 매주 목요일 광주버스터미널과 송정역에서 꽃섬 코스를 운행한다. 여수에서 꽃섬 가는 여객선은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과 백야도 선착장에서 출발한다. 남도한바퀴 버스(062-360-8502),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061-663-0116~7), 백야도 선착장(061-686-6655).
박상건 한국잡지학회장은 <샘이깊은물> 편집부장과 월간 <섬> 발행인을 지냈고 현재 사단법인 ‘섬문화연구소’ 소장이다. 섬과 등대 이야기를 수년간 써왔으며 단행본도 출간했다. 학자이자 여행가, 작가이기도 한 그는 지금도 틈날 때마다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