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과 남북관계 진전은 세계사 주도할 기회

2018.05.12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벌써 1년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되었다. 국민들은 어떤 삶의 변화를 체감할까? 2016년 10월 29일 토요일,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2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박근혜정부의 퇴진을 외쳤다. 이후 토요일마다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에 모여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민심의 물결이었다. 총 23차례에 걸쳐 1700만 촛불시민이 참여한 장대한 역사적 드라마는 한국 정치사뿐만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시민적 공화주의(civic republicanism)’를 보여주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8명 전원일치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이는 광장과 제도정치권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렸다. 이로써 근대 대의제민주주의와 광장의 직접민주주의가 결합된 ‘촛불민주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촛불민주주의가 만든 대통령

2017년 5월 10일 제19대 대통령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대통령은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를 실현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대통령 인수위원회를 대신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통해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를 구체화하는 100대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이 위원회는 국가비전으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제안하고 이를 5대 국정목표로 구체화했다. 5대 국정목표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 ‘더불어 잘 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그리고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로 설정됐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는 국민주권의 촛불민주주의 실현, 소통으로 통합하는 광화문 대통령,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 권력기관의 민주적 개혁을 4대 국정전략으로 내놓았다. 더불어 잘 사는 경제는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일자리경제, 활력이 넘치는 공정경제, 시민과 중산층을 위한 민생경제, 과학기술발전이 선도하는 4차 산업혁명, 중소벤처가 주도하는 창업과 혁신성장이 5대 국정전략을 제시됐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는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 국가가 책임지는 보육과 교육, 국민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사회, 노동 존중·성평등을 포함하는 차별 없는 공정사회의 5대 국정전략을 내놓았다.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자치분권, 골고루 잘 사는 균형 발전, 사람이 돌아오는 농산어촌으로 국정전략을 제시했고,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는 강한 안보와 책임국방, 남북 간 화해 협력과 한반도 비핵화, 국제협력을 주도하는 당당한 외교를 국정전략으로 삼았다.

그러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제안하고, 이때 제시된 100대 국정과제를 관리하고 새로운 정책 어젠다를 개발하기 위해 12월에 만들어진 정책기획위원회는 문재인정부의 제도적인 틀보다 더 중요한 변화들을 이끌어내고 있다.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는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민주주의에 의해 국민들이 주도하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도 학계 등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이 국정과제를 정리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뜨거운 관심과 시민적 열기는 국민들이 직접 정책에 참여하는 ‘광화문1번가’에 있었다. 이 새로운 정치공간은 국민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정책을 직접 만드는 일상 민주주의(everyday democracy)의 광장이었다.
 
문재인정부가 내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 새로운 삶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2016년과 2017년의 겨울과 봄 동안 진행된 촛불혁명은 국민들이 스스로 하나는 공동체임을 느끼게 했다. 이 시민적 자각이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를 문재인정부를 통해 실현했다. 그런 새로운 성숙한 시민적 자각은 문재인정부의 개혁정치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지금 한국정치는 문재인정부 등 제도권 정치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민주주의라는 도도한 역사적 흐름에 문재인정부가 등에 업혀 가는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자신이 ‘촛불혁명’이 만든 대통령임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이 도도한 민심의 바다는 한국 정치의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들에 대해 국민의 거센 저항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인 정치구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예컨대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이전 올림픽에서 흔한 애국주의를 뛰어넘는 개인의 강조와 새로운 세계 시민의 연대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명의 1등을 만들기 위해 다른 선수가 희생돼야 하는 것이 예전과 같은 애국주의로 용인되지 않았다. 공정하고 누구든지 차별받지 않고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국민들은 스스로 정치적 의사를 표출했다. 촛불민주주의는 한국 정치에서 비로소 진정한 ‘개인의 발견’을 시작한 셈이다.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2등을 한 이상화 선수는 시상대에서 울지 않고 1등을 한 일본 선수 고다이라를 축복해주었다. 올림픽을 세계 평화의 진정한 축제로 즐기는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했다. 국민들은 과거의 애국주의보다 이런 새로운 흐름에 열광했다. 이 힘이 북한 응원단에게 따뜻한 동포애로 드러났고 진정한 남북대화의 문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세계 정치지도자로서 손색없는 등장을 이뤄냈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를 끌어낸 진정한 동기와 힘은 바로 2016년과 2017년 한겨울 동안 뜨거웠던 광장의 열기에서 비롯됐다.

‘고통대국 모순’ 극복이 첫 번째 과제

이제 문재인정부 1년이 지났다. 이즈음에서 그 뜨거웠던 열기를 뒤로하고 차분히 대한민국과 동아시아 그리고 글로벌 공동체의 미래를 담대하게 상상해봐야 할 시점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국가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경제대국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살률, 노인 빈곤, 남녀 임금 격차, 저출산 문제 등 OECD 국가들 중에서 맨 꼴찌를 차지하는 지표가 50개를 넘는 고통대국이기도 하다. 나라 전체는 잘사는 것 같은데, 개인은 가난하고 삶의 벼랑으로 내몰리는 고통대국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문재인정부에게 첫 번째로 남겨진 국가적 과제이다.

촛불혁명과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대한민국은 진정으로 세계사를 주도할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다. 세계 정치는 포퓰리스트(populist)의 보수정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국 트럼프, 일본 아베, 중국 시진핑, 러시아 푸틴, 브렉시트로 혼돈된 유럽연합에서 세계 시민들은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의 희망을 찾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이 판문점 선언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한국의 촛불민주주의에 호기심을 갖고 주목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가 단군 이래로 좋은 의미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첫 번째 기회가 바로 지금이지 않을까 한다. 이 절호의 기회를 대한민국의 미래 30년의 국가비전으로 녹아내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이다.

향후 30년 뒤인 2050년에는 지금 유엔 체제를 훨씬 뛰어넘는 글로벌 거버넌스가 등장할 것이다. 이를 초보적인 세계정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동아시아 분쟁 해결의 기회를 잘 활용하면 역설적으로 한국은 세계 평화의 중심국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어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이 동아시아에서 진행된다. 세계는 기후 변화, 사이버 안보, 전자화폐, 취약국가 문제 등 새로운 글로벌 어젠다에 직면해 있다.

문재인정부의 과제는 한국을 경제 규모와 국제정치에서 역할에 맞게 국정운영을 글로벌 표준으로 담대하게 성장시키는 것이다. 2050년에 글로벌 거버넌스가 진전되고 유엔 체제를 넘어서는 초보적 형태의 세계정부가 등장한다면 이를 담당하는 오프라인의 세계정부 수도도 생길 것이다. 그곳이 유엔이 있는 초강대국 미국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도 아니다. 미국 문명과 중국 문명의 패권 경쟁을 촛불민주주의로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한 한국 문명이 중재할 수 있는 담대한 상상력이 지금 필요하다. 그 초석을 문재인정부가 ‘국가비전 2050’으로 제시하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가 등장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앞으로 4년의 단기적인 국정운영 계획도 필요하겠지만 30년 이후를 글로벌 관점에서 내다보는 담대한 설계와 그 실천이 요청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앞으로 4년이 아니라 국가 100년 대계의 글로벌 국가비전을 만들고 실천해나가길 바란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임채원│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관련기사

페이지 맨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