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 전성시대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의 경우 인사동을 중심으로 북촌과 서촌, 홍대나 상수, 연남동의 작은 골목들마다 크고 작은 공방들이 많이 생겨났다. 나무를 깎아 보석함을 만들고, 가죽을 잘라 가방을 만든다. 고급스런 린넨 천으로 영화에 나올 법한 앞치마를 만들고, 한 땀 한 땀 수를 놓아 장식한 빛깔 고운 비단 이불도 있다. 가성비 넘어 나를 만족시켜주는 ‘가심비(價心比)’를 보다 높은 가치로 여기는 요즘 분위기 속에 다시금 공예가 재평가되고 있다. 만든 이의 손맛이 고스란히 담긴 공예품은 모두가 아닌 나만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생활용품이다. 그러나 공예라고 하면 어딘가 고리타분한 인상이 들고, 실용성만 따지고 본다면 만만찮은 가격에 진입장벽이 높은 게 현실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공예가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사람들을 향해 공예가 먼저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공방과 전시장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났다. 거리마다 화사한 볕이 가득했던 5월 첫째 주, 서울 인사동 일대를 중심으로 서울 경기 도심 곳곳에서 일주일간 열렸던 사상 첫 공예 축제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뜻깊은 개막식으로 시작된 첫 공예 축제
5월 1일부터 7일까지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나만의 공예를 만나는 일주일’ 공예주간(크래프트위크)이 열렸다. 우리의 생활을 아름답고 즐겁게 가꾸어주는 공예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일상 속에 보다 가까운 공예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문화 정착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하 진흥원)과 함께 ‘2018 공예주간’을 개최했다. 이 행사는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진흥원의 ‘KCDF갤러리’와 옛 서울역사에 문을 연 ‘문화역서울 284’를 중심으로 서울시와 경기도의 공방과 공예점들이 모여 있는 거리에서 판매장터, 전시, 체험, 투어 등이 동시에 열리는 축제다. 공예라는 단일 주제로는 처음 열리는 행사여서 그 어느 때보다 큰 화제를 모았다.
▶ 1 공예주간에 출품된 소반, 현대 공예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공예주간 자체 기획 전시인 ‘크래프트 리턴’ 전시장. 공예의 어제와 오늘을 재조명했다. ⓒC영상미디어
공예작가의 작업 공간부터 공예품을 전시 판매하는 상업 공간까지 총 160여 개의 협력사들이 함께한 이번 축제는 도심 곳곳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기에 충분했다. 축제는 진흥원갤러리 개막식으로 시작했다.
개막식 하이라이트는 올해 행사를 시작으로 처음 제정된 ‘올해의 공예상’ 시상이었다. 공예계에서 20여 년 이상 활동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독창적으로 구축한 작가와 공예품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기획, 전시, 판매 등을 하는 기관에게 시상했다. 1회 시상자로는 작가 부문 공예가 이헌정 작가와 매개 부문 아원공방이 수상했다.
▶ 3 이번 공예주간 크래프트 리턴에는 공예가와 공방 등 160여개 협력사가 참가한 사상 첫 공예 축제였다. 4 디자이너 강금성의 수공예 생활예술 브랜드 빈 컬렉션의 전시 ‘안녕이라는 선물’의 전통 베개 작품들 5 요즘 생활환경을 배려한 재치 있는 아이디어가 더해진 수공예품들이 인기다. 빈 컬렉션 제품 6 '테이블 웨어’라는 일상의 테마로 우리 식탁에 필요한 다양한 금속공예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C영상미디어
‘크래프트 리턴’ 공예가 돌아왔다
개막 첫날의 시작은 공예주간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크래프트 리턴’ 기획 전시였다. 개막식에 이어 진흥원갤러리에서 오픈한 전시에는 내외 귀빈들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날로그에서 하이테크까지’, ‘시장에서 플랫폼으로’, ‘크래프터가 되는 다양한 방법’ 등 네 개의 카테고리로 기획된 전시는 아이디어의 도출 과정에서부터 제작 방법, 교육 형태, 유통 방식에 이르기까지 사회와 일상 속에서 변화하는 공예 가치를 재발견하는 기회를 보여줬다. 전통적인 우리의 소반부터 화려한 식기, 다기나 도자기, 가방 등 익숙한 생활 물건들은 장인의 정신과 손맛, 그리고 시대의 세련됨까지 갖추어 탄성을 자아냈다. 예술의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는 일상의 물건들이 주는 감동이 바로 공예가 주는 즐거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공예가가 되는 방법을 제안하는 다큐멘터리 영상 관람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공예평론가 최범은 “주제를 공예의 귀환으로 정한 이유는 공예를 즐기는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데서 출발했다”며 “공예품과 공예문화를 더 이상 분리하지 말고 누구나 즐기는 공예문화가 자리 잡는 계기를 마련하는 게 이번 공예주간 축제의 핵심 목표”라고 설명했다. 공예주간 자체 기획전시는 진흥원갤러리의 ‘크래프트 리턴’(5.1~5.20)과 국립민속박물관의 ‘소금_빛깔·맛깔·때깔’(5.1~5.31) 전이다. 진흥원과 국립민속박물관이 공동으로 기획해 3년째 선보이고 있는 한식문화특별전 ‘소금_빛깔·맛깔·때깔’(이하 소금전)은 소금, 공예, 음식의 연결고리를 찾아 공예의 가치를 조명했다. 소금이란 화두를 통해 공예의 아름다움을 짚으면서도 소금과 음식, 또 그 과정마다 함께하는 공예를 보여주면서 그릇만이 공예의 전부라는 생각을 바꿔준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작품은 이동훈 작가의 한식 사진이다. 장 담그기, 생선 염장, 젓갈, 김치 등을 만드는 과정을 안동 전통 한지로 인화해 보여주는데, 우리 삶 속 깊숙한 곳에서 언제나 함께해온 한국 공예의 멋을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다.
서울·경기 도심 곳곳으로 떠나는 감성 나들이
공예주간 행사는 인사동·북촌·삼청동을 중심으로 하는 종로 지역에서는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공예를, 홍대·연남동·상수동 등에서는 재치 발랄하고 실험적인 젊은 공예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와 신당동에서는 세계로 뻗어가는 역동적인 공예를 느낄 수 있다. 가로수길·청담동·성수동을 잇는 강남 지역에서는 최신 유행하는(트렌디) 공예를, 파주 헤이리·한국도자재단·경기상상캠퍼스 등이 함께하는 경기 지역에서는 유유자적 나들이와 공예를 즐길 수 있다. 160여 개 공예 관련 협력사가 함께하는 이번 공예주간 행사는 공예점들이 모여 있는 거리를 중심으로 열려 도시 곳곳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다양하게 준비된 행사와 더불어 행사 기간 동안에는 전시장과 공방이 활짝 문을 열고 일반 관람객을 맞이해 축제 분위기를 한껏 달구었다. 가장 인기를 끌었던 곳 중 하나는 문화역서울 284에서 5월 6일~7일 이틀간 펼쳐졌던 자체 기획 판매장터 ‘마켓유랑’과 행사주간 동안 인사동 북인사마당에서 열렸던 ‘공예와 마켓’이었다.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마켓유랑’은 우리 일상을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어주는 수준 높은 공예품을 제작하는 150팀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직거래 장터였다. 시민들은 작가들에게 생활에 밀착된 공예품의 제작 의도나 활용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듣고 그 자리에서 작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이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공예주간 동안 인사동 북인사마당에서는 매일 ‘공예와 마켓’이 열렸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공예작가와 작품들이 거리로 나와 대중 속에서 체험하고 소통하는 시간이 돼주었다. ‘공예와 마켓’에서는 섬유공예품과 전통공예품, 단청벽걸이나 고무신, 가죽공예, 수공예 패션 액세서리 등을 만나볼 수 있는데, 인사동 입구에 자리 잡아 공예주간을 즐기러 온 시민들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가세해 장사진을 이뤘다.
다양한 행사중에서 장인, 공예가, 공방이 ‘함께하는’ 공예주간 추천명소는 놓치기 아깝다. 문체부와 진흥원이 공예주간 기간에 개최되는 공예문화프로그램을 공모를 통해 선정한 곳들이다.
장인, 공예가, 공방이 ‘함께하는’ 공예주간 추천명소
▶ 공예주간 행사는 인사동·북촌·삼청동을 중심으로 하는 종로 지역에서 열렸다. ⓒC영상미디어
종로구 통의동에서는 디자이너 강금성의 수공예 생활예술 브랜드 빈 컬렉션의 전시 ‘안녕이라는 선물’이 열렸다. 4대가 함께 사는 집안에서 자란 강금성은 친가와 외가의 할머니들로부터 명문가 여인들에게 전해지던 삶의 지혜와 예술 안목을 배웠다고. 자연에서 얻은 좋은 재료와 정성스러운 손바느질, 거기에 요즘 환경에 맞춘 재치 있는 아이디어를 더한 베개와 이불 등 수공예품을 선보였다. 연남동의 복합문화공간스튜디오 안에서는 금속공예가와 함께 ‘테이블 웨어’라는 일상의 테마로 우리 식탁에 필요한 다양한 제품들을 전시했다. 또한 기초적인 금속공예 작업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공예가의 식탁’을 준비해 보다 다양한 경험을 제공했다. 강남 신사동 킨디고 더쪽에서는 발효 염색 체험 프로그램 ‘쪽 항아리 여는 날’이 진행됐다. 킨디고(Kindigo, Korean Indigo)는 한국의 쪽이라는 뜻으로, 잊혀져가는 한국의 쪽빛을 되찾고 세계에 알리는 전문기업이다. 이들은 건강한 입을 거리, 친환경 라이프 스타일을 위한 대안으로 쪽의 효능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공예주간 기간에는 발효 쪽 염색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 누구나 쉽게 자신의 옷을 직접 천연 염색 해보며 친환경 생활방식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예술적 감각과 감상을 키우는 만족도 높은 투어프로그램도 있었다. 크래프트 버스투어(공예이음버스)와 ‘서울 남산 재미랑 공방길 문화체험 투어’다. 공예이음버스는 이름 그대로 공예를 만나러 가는 길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공예주간의 대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권역별로 순환 운행되는 버스다. 이음버스를 이용하면 공예 축제 관람을 보다 실속 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서울 남산 재미랑 공방길 문화체험 투어는 봄날에 걷는 크래프트 로드였다. 명동역 3번 출구에서부터 남산까지 이어지는 공방에서 만나는 다양한 공예 전시와 체험, 마켓은 공예주간 속 또 다른 축제였다. 처음으로 시작된 공예주간은 공예가 생각보다 우리 생활 가까이 있음을 알기에 충분했다. 공예주간 이후에도 계속되는 전시와 행사가 있으니 아쉬움을 달랠 시간은 남아 있다. 가보자, 나만의 취향을 담아낸 공예품을 찾으러.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폐막 이후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
크래프트 리턴 (5.1~5.20/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갤러리)
다시 돌아온 공예는, 단지 과거의 모습 그대로 되돌아온 공예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크래프트 현상’을 통해 변화한 사회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담론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다. 대표적인 공예주간 기획전시다.
소금_빛깔·맛깔·때깔 (5.1~5.31 / 국립민속박물관)
앞서 소개한 공예주간 자체 기획 전시로 5월 한 달 동안 이어진다. 회화, 사진, 영상과 함께 다양한 재료의 품격 있는 현대 공예가들의 작품으로 구성한 이번 전시는 시각, 미각, 촉각이 어우러진 융복합전시로 진정한 공예적 태도와 가치를 조명한다.
장인들 ‘술 빚는 장인 공예 하는 장인’ (5.5~5.26 / 신사동 갤러리 LVS)
1625년 일본 가나자와에서 창업한 일본 전통주 회사 후쿠미츠야는 장인정신으로 양조해온 술과 그 지역 공예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하고 제안하는 상생의 가치를 지닌 기업이다. 후쿠미츠야의 사례와 일본의 최고정점에 있는 유리공예를 소개하고 직접 사용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윤택한 삶을 위한 ‘공예의 일상화’를 제안하는 전시다.
크래프트위크와 함께 (5.1~6.7 / 인사동 갤러리 작은자연-소연)
그릇 만들기로 출발해 오늘날 금속조형작가로 불리기까지 시작과 전개 과정을 볼 수 있는 금속공예가 김승희의 전시다. ‘눈물단지가 보물단지로…’라는 전시 제목처럼 6kg의 쇠망치를 들고 눈물로 시작한 그의 대장장이 작업 이야기가 오롯이 담겼다.
그 남자의 공예 (4.30~5.28 / 상수동 디티에이블)
금속 재료를 이용해 핀홀카메라와 시계를 만드는 작가 현광훈의 전시다. 카메라와 시계는 세밀한 금속 부품으로 이뤄지는 메커니즘으로 완성되는 기계식 무브먼트로 오래전부터 남성들에게는 사랑받는 아이템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은 다른 세대, 다른 생활방식과 상황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남성들에게 우리 수공예 디자인의 매력과 그 문화 향유 방식에 대한 신선한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다.
예올 북촌가_음용도구전 (4.19~5.17 / 북촌 예올/ 월, 공휴일 휴관)
기물을 직접 손으로 느끼고, 음료와 조화를 이루는 색상을 감상하고, 술과 차를 위해 제작한 차림상의 맛과 향을 음미할 수 있는 예올만의 유일한 오감체험 전시를 선사한다. 각기 다른 영역의 작가들의 협업 작업을 통해 작가 개인의 개성과 단체전의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강은진│위클리 공감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