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적인 이미지, 독특한 화면 구성, 아름다운 색채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마르크 샤갈의 작품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전시 규모는 역대급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작품을 포함해 샤갈의 인생을 총망라한 260여 점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특히 프랑스, 스위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4개국 컬렉터들의 개인 소장품을 포함해 국내에 최초로 공개되는 샤갈의 작품 25점이 포함돼 있다. 이번 전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열리는 사걀의 작품전이라는 점 외에도 관람객의 눈길을 끈 것이 있다. 배우 유인나가 오디오가이드로 재능 기부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라디오 DJ 시절 ‘꿀디’라는 애칭으로 사랑받았던 만큼 나긋하고 편안한 목소리가 작품에 몰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전시가 사흘째인 4월 30일, ‘영혼의 정원展’이 열리는 M컨템포러리 로비에는 오픈 시간인 11시가 되기 전부터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꽤나 붐볐다. 이번 전시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 1 2 전시장 내부 모습 ⓒC영상미디어
마르크 샤갈은 회화, 소묘, 판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 화가다. 피카소, 마티스, 미로, 고갱 등과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작품 활동을 했던 80여 년 동안 인류의 예술사에 중대한 공헌을 한 수많은 걸작이 탄생했다. 샤갈이 위대한 화가로 칭송받는 이유는 독특한 작품 세계 때문이다. 당시 많은 화가들이 추상화로 대변되는 야심찬 실험을 추구한 데 반해 야수파와 입체파의 아이디어를 흡수하면서 구상화가 가진 힘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시는 다양한 소재를 다룬 작가의 세계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샤갈이 주로 다뤘던 키워드를 중심으로 4부로 구성됐다.
유인나 목소리 재능기부
1부 ‘꿈, 우화, 종교’에서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샤갈이 러시아 혁명을 겪은 후 파리로 왔던 20대부터 미국으로 강제 추방된 시간을 지나 프랑스로 다시 돌아온 50대까지, 샤갈의 초·중기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원색을 활용한 동판화로 표현한 ‘성서’ 시리즈와 채색 에칭 기법을 활용한 ‘라퐁텐 우화’ 시리즈가 주를 이룬다.
2부 ‘전쟁과 피난’에서는 제1·2차 세계대전과 러시아의 10월 혁명 등 샤갈의 내면을 할퀸 전쟁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샤갈은 전쟁으로 경험한 공포를 흑백으로 표현했다. 친구이자 작가 앙드레 말로가 쓴 <대지에서>의 삽화 작업을 보면 샤갈이 느꼈던 전쟁의 이미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말로의 책에 수록된 마지막 삽화에는 전쟁이 끝난 후 자유를 찾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소중히 여긴 작가의 의지가 돋보인다. 전쟁 속에서 보여준 ‘희망’은 샤갈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 1 샤갈의 작업실을 재현한 ‘샤갈의 공방’에서 관람객이 직접 판화 작업을 해볼 수 있다.
2 3 4 샤갈의 작품이 벽면을 가득 채운 전시장 내부 모습 ⓒC영상미디어
▶ 5 러시아 마을 Marc Chagall, Russian village (1929)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hagall ?
6 붉은 배경의 꽃다발 Marc Chagall, Bouquet de fleurs surfond rouge (1970 ca.)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hagall ?
7 보라색 수탉 Marc Chagall, Le Coq Violet (1966-72) oil,gouache and ink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hagall ?
8 시인 아폴리네르 Marc Chagall, Apollinaire (1976) coloredlithography, Private Collecti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hagall ?
9 와인잔을 든 이중 초상화 Marc Chagall, ?tude pour ledouble portrait au verre de vin (1976) colored lithography,
Private Collecti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hagall ?
3부 ‘시의 여정’에서는 화가뿐 아니라 시인으로 활약한 샤갈의 작품이 소개된다. 1950년대 이후부터 말년까지 초현실주의풍의 후기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프랑스 프로방스에 거주하면서 겪은 작가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다. 작가가 자주 다뤘던 서커스, 종교, 우화, 꿈, 꽃 등 주제는 다양하지만 작품 곳곳에 삶에 대한 희망이 배어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 바바의 초상 Marc Chagall, Portrait de Vava (1953-56) oil on cardboard, Private Collecti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hagall ?
4부 ‘사랑’은 샤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샤갈의 영원한 동반자 ‘벨라’, 벨라가 죽고 난 후 만난 ‘바바’와의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생전 샤갈은 “벨라는 나를 예술로 인도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벨라는 샤갈의 뮤즈답게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바바 역시 마찬가지다. 벨라가 죽고 난 뒤 실의에 빠진 샤갈을 다시 일으켜 세운 이가 바바다. 바바를 만난 이후 샤갈의 그림은 한층 더 밝아지고 색채도 화려해졌다. 벨라와 바바 두 사람이 준 사랑은 샤갈의 생과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두 여인의 헌신적이고 성숙한 사랑은 샤갈의 작품 속에서 진정한 사랑으로 표현된다.
전시장 곳곳에는 샤갈의 작품뿐 아니라 생전에 했던 말이 함께 소개된다.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 “침실 창문만 열었는데 푸른 공기, 사랑, 꽃들이 그녀와 함께 들어왔다” 같은 문구를 보면 생의 마지막까지 희망과 사랑을 놓지 않았던 샤갈의 따뜻한 영혼이 관람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전시 정보
기간 8월 18일까지
장소 M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요금 성인(만 19세 이상) 1만 3000원, 학생(중·고·대학생) 1만 원, 어린이(만 3~12세) 8000원
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입장 마감 오후 7시)
휴관 매월 넷째 주 월요일
문의 02-3451-8199
장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