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찾아왔다. 이 봄이 우리 민족에게 찬란한 미래를 약속한다는 희망은 작년 한 해 동안 우리가 겪었던 안보 위기의 겨울이 우리를 너무도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불과 6개월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언제라도 북한이나 미국에 의해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느껴지는 혹한에 시달렸다.
작년 이맘 때 출범한 문재인정부가 북한의 지속적인 미사일 발사 도발로 불면의 밤을 보내고,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을 연일 발설할 때 전쟁 불가를 외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불안한 상황은 작년 9월 북한의 수소폭탄급 핵 실험 감행과 11월 29일 미 본토를 가격할 수 있다는 화성 15형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때까지 지속됐다.
그러나 문재인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면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남북 화해와 평화 공존 그리고 호혜적인 협력을 꾸준히 주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압박 전략에는 원만하게 공조하면서도 무력 사용은 우리 정부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임을 조용하지만 완강하게 주장했다.
국·내외 긴밀한 공조로 남북관계 급진전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격언처럼 한반도 최악의 안보 위기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빠른 속도로 풀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올림픽 개막 특사로 보냈다. 우리 정부의 진정성이 김 위원장에게 전달됐고 남북관계의 개선뿐 아니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까지 성사되는 기적적인 급진전이 이뤄졌다.
이는 운이 좋아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꾸준한 노력에 국정원의 북한 통일전선부, 미국 CIA와의 긴밀한 연락망 형성이 더해졌다. 남·북·미 정보부 간 원활하고도 긴밀한 공조가 작동돼 이룩한 성과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한반도 정세에서 자칫 고립될 처지에 놓일 수도 있었지만 우리 정부의 배려로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북미정상회담 카드를 잡았다. 수십 년간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도와주다가 이제는 한국이 일정 부분 미국의 체면을 살려주는 수준까지 성장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상 간에 화해하고 협력의 기틀까지 형성했다. 수십 년간 소모적인 갈등과 대립을 일삼던 남북은 이제 정상 간 진심 어린 우정을 나누고 통일한국의 미래를 함께 그리게 됐다. 그리고 한나절의 만남이 짧다고 아쉬워하면서 헤어졌다.
남북 정상은 이제 전쟁이 완전히 끝났고 다시는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지 않으며 혹시라도 우발적 여지가 있는 부분은 한시라도 빨리 제거하자는 데 의지를 모았다. 주변 강대국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는 걸 알고도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과거를 부끄럽게 여기면서 이제라도 단계적으로 상호 긴장을 완화하고 호혜적인 협력을 해보자는 마음을 다잡았다.
재래식 군사력으로 다시는 남한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우리 특사단에게 다짐한 바 있는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 도로의 불편함 등 부족한 점을 시인하고 향후 유무상통의 협력을 하자고 다짐했다. 특히 판문점 선언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할 것임을 밝히고 향후 남북 간에 이루어진 합의는 반드시 지키자고 역설했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 내에 종전을 선언하고 한반도 평화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미국, 중국과 함께 평화체제를 수립하자고 합의했다. 상호 간에 더 이상 적대적 행위를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하며 과거 정상 간 합의사항들도 실천해나가기로 했다. 그뿐만 아니라 호혜적인 협력을 진흥해 자주적인 통일로 나아가기로 합의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평화와 안정, 공동 번영을 지향하게 됐다.
양측 정상은 신뢰를 돈독하게 다지고 핫라인도 설치했다. 문화 예술을 비롯해 다양한 교류 협력을 약속했고 대대적인 경제 협력을 시행할 수 있는 신뢰의 기반도 마련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보인 김정은 위원장의 진솔한 태도와 언행, 판문점 선언의 내용, 그리고 양 정상 간에 형성된 따뜻한 신뢰관계를 감안하면 남북관계는 평화와 공동 번영의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큰 그림이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아직 핵을 보유하고 있고, 여전히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과시하고 있다. 국제정치의 영역에 속하는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대북 제재도 여전히 남아 있어 남북관계 진전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북핵문제의 해결과 연계돼 있다. 5월 중 개최 예정인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가 확실한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어야 남북관계도 개선·발전되고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북미 정상 합의안도 능동적으로 중재해야
이런 맥락에서 정부는 이제까지의 성공에 자부심은 가지되 지나치게 고무되지 말고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지원하고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판문점 합의사항에서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를 저촉하지 않는 사항들을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특히 북한뿐 아니라 우리 국익에도 가시적으로 이득이 되는 사안들을 먼저 시행하고 성과를 내면서 보다 많은 국민의 지지를 유도해야 한다.
현재 북한이 과거와 달리 대가 없이 비핵화 부분에서 일부 성의를 보이고 있으나 사실상의 핵과 핵 프로그램을 틀어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북미정상회담에서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확실한 핵 포기 약속을 유도해야 한다. 핵 폐기 완료 시점을 명시하고 현재 가동 중인 핵과 장거리미사일 프로그램의 가동을 동결하며 북한 핵 자산을 총체적으로 신고한 뒤 사찰과 검증을 받도록 규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미 행정부도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한 체제 안전을 북한에 보장해야 한다. 과거 북한의 핵 포기 유도에 실패한 데는 북미 양측 간 불신도 있었지만 북한의 핵 포기를 선 양보로 얻으려는 미국의 일방주의도 한몫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북한의 핵 포기를 확실히 얻기 위해 우리 정부의 역할이 크다. 핵 문제를 북미에 맡겨두기보다 양측의 핵문제 해결 방안을 부단히 접근시켜야 한다. 끊임없이 핵 문제 타협안을 작성해 제시하고 또 수정·제시함으로써 양측 간 합의안을 사실상 우리가 작성한다는 각오로 인내심과 지혜를 가지고 양측을 능동적으로 중재해야 할 것이다.
홍현익│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