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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그곳의 시간은 왜 유독 느리게 흐를까

2018.04.30

<위클리 공감>과 한국관광공사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을 중심으로 매월 추천 여행지를 소개한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2013년 ‘한국관광 100선’을 도입한 이후 2년마다 전국 명소를 선정해오고 있다. 5월에는 섬으로 떠나보자.

 

힘찬 뱃고동 소리를 벗 삼아 배를 타고 바다 위를 달리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낀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나갈 필요도, 시끄러운 소음에 귀를 막을 필요도 없다. 이따금 불어오는 봄바람을 따라 배가 향하는 곳으로 갈 뿐. 배의 목적지에 다다르면 고요함이 매력인 공간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건 바로 섬이다. 도시인들에게 섬은 안식의 상징이다.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 지친 심신을 말없이 어루만져주는 여행지로 대표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느림의 풍경’이 있는 섬, 청산도로 발걸음을 옮긴다.

청산도 전경

유채꽃이 흐드러진 청산도 전경 ⓒ한국관광공사

서울에서 출발해 서해안고속도로를 끝까지 달리고도 한 시간 더 달려 완도항에 도착했다. 완도항에서 다시 뱃길로 50여 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섬이 청산도다. 괜히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가 아니다. 청산도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곳의 시간은 유독 느리게 간다고.’ 다만 여기서 느림은 물리적인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게 아니다. 빼어난 절경이 발걸음을 절로 느리게 만든다는 의미다. 샛노란 유채꽃이 지난 자리에 초록빛이 채워지는 5월에는 더욱 그렇다. 사시사철 산과 바다, 하늘이 모두 푸르러 붙여진 이름 ‘청산(靑山)’이 빛을 발한다.

상서마을 돌담길, 청산도 슬로길 안내지도, 쉼표 조형

1 차곡차곡 쌓아올린 상서마을 돌담길은 청산도 명소다. 뉴시스  2 ‘느림’을 상징하는 달팽이 모양의 청산도 슬로길 안내지도 한국관광공사  3 청산도 바다와 어우러진 쉼표 조형 연합

청산도 도청항에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달팽이 모양의 조형물이다. 그 옆으로 ‘느림의 섬, 청산도’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여행을 왔다는 설렘에 잠시 조급해진 마음을 다시 내려놓게 했다.

대개 여행을 가면 ‘무엇을 봐야 하나’ 고민한다. 하지만 청산도에서는 그런 고민이 필요 없다. 도청항에서 곧바로 연결되는 슬로길이 현답이다. 슬로길은 청산도 주민들이 오가던 길을 11코스(42.195㎞)로 조성한 길이다. 각 길마다 얽힌 이야기와 어우러져 거닐 수 있도록 해 2010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이야기가 있는 생태탐방로’로 선정됐다.

거리로만 따지면 전체 슬로길은 마라톤 풀코스에 해당하는 거리다. 전체를 돌아보는 게 가장 좋겠지만, 일정이 빠듯하다면 인기 있는 곳을 골라 찬찬히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1코스를 추천한다. 사실 청산도가 유명해진 건 1993년 개봉한 영화 ‘서편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 세 사람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구불구불한 돌담길을 걷는 명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 장면이 탄생한 곳이 1코스 ‘서편제 길’이다. 영화를 추억하기 위해서인지 탐방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길이기도 하다. 길 위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진도아리랑’ 노랫가락에 취해 어깨가 절로 들썩여진다. 

탐방객 중 투어버스를 탄 채 이 길을 지나는 경우가 많은데 직접 걸어볼 것을 권한다. 항구에서 ‘서편제’ 촬영지까지 2㎞도 채 되지 않을뿐더러 돌담길 좌우로 흐드러진 유채꽃의 향기가 달다. 향도 좋지만 청산도 꽃들은 여느 꽃들과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다. 그저 씨앗이 뿌려진 대로 피어난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유명 관광지의 잘 정리된 꽃들과 달리 두서없이 가득한 꽃이 선물하는 아름다움은 또 다른 백미다.

세월의 흔적 묻어나는 상서마을

돌담길 뒤편 언덕을 넘어 이정표를 따라 걸었다. 화랑포 길이 나왔다. 파도 물결 뒤집히는 모습이 꽃 피는 것 같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화랑포 전망대에서 담는 바다는 참 넓다. 시원하다. 탁 트인 바다를 가득 안으면 그동안 쌓인 피로가 눈 녹듯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마치 호랑이가 웅크린 형상 같다고 해서 ‘범바위’라 이름 붙여진 봉우리도 놓치면 아쉬울 명소다. 이곳에 얽힌 전설을 알고 나면 더욱 호랑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옛날 신선을 모시고 다니던 범이 열 개의 영원한 생명들을 모으라는 명을 받았는데, 범은 그중 자신이 빠졌다는 것이 화가 나 사슴을 물어 죽였다. 신선이 이를 알고 크게 분노해 범을 돌로 만들자 그 이후부터 바람이 불면 범바위에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난다고 한다. ‘에이, 설마’ 싶다가도 실제 들려오는 앙칼진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청산도 주민들의 삶이 궁금하다면 상서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마을 전체가 구불구불한 돌담으로 채워졌다. 여기 돌담은 흙을 사용하지 않고 돌만 쌓은 전형적인 강담 구조다. 바람이 많은 도서 지방의 환경적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돼서다. 성긴 담벼락에는 이끼가 꼈고 돌담 사이에서 자라는 담쟁이덩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청산도에서만 볼 수 있는 인상적인 풍경에 구들장 논도 한몫한다. 논바닥에 돌을 구들처럼 깔고 흙을 부어 만든 구들장 논은 농토가 적고 물 빠짐이 심한 지형 조건을 극복한 개척 논이다. 이젠 섬마을 풍경에서 빠질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에 이곳 사람들의 애환도 슬쩍 드러난다.

마을을 돌아 나오는 길, 돌담 언저리에 붙은 글귀가 인상적이다. ‘꽃 한 송이 핀 것을 경이롭게, 열매 하나 익는 것을 아름답게 보는 마음이 있다면 삶은 결코 초라하거나 허무하지 않을 것입니다.’ 청산도를 하나하나 더듬으며 느리게 걸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내달리던 일상에 짧은 쉼표를 찍어보자. 또 다른 삶이, 행복이 보일지도 모른다.

섬으로 떠나는 5월 힐링 여행

울릉도·독도
울릉도, 독도

두 섬 모두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섬 여행지이지만, 들고 나는 방법이 오직 뱃길뿐이라 망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섬에 닿는 순간 그곳이 간직한 천혜의 비경에 입이 딱 벌어지니 달려온 긴 시간이 무색해진다. 독도 여행은 울릉도 입도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울릉도를 거쳐야만 독도에 갈 수 있는 게 당연하다지만, 울릉도를 밟고 나면 애틋함과 그리움이 생겨 주저 없이 독도행 배에 몸을 싣게 될 테니 말이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울릉도 동남쪽에서 뱃길 따라 이백 리는 달려야 보이는 한반도 최동단 섬 독도. 망망대해 가운데 꿋꿋하게 서 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다만 독도 관광은 기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출항시간과 운항주기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한국관광공사

신안 홍도

신안 홍도

해 질 녘이면 섬 전체가 붉게 보인다 해 ‘홍도(紅島)’라는 이름이 붙었다. 물이 맑은 덕에 바람이 없는 날에는 바다 속 10m가 넘게 들여다보이는데, 그 신비로운 경관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또 지나칠 수 없는 절경으로는 단연 낙조가 꼽힌다. 해가 바다로 빠져들기 직전, 진홍빛에 잠기는 바다와 그 속에 점점이 박힌 바위섬의 모습은 아주 운치 있다. 
홍도는 희귀식물 540여 종, 동물과 곤충 231종이 서식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170호이기도 하다. 이곳 마을 이외에 산은 들어갈 수 없으며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도 채취하거나 반출할 수 없는 이유다.│한국관광공사

강진 가우도

강진 가우도

전남 강진만의 8개 섬 중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이다. 강진읍 보은산을 소의 머리로 여기고, 섬 모양이 소의 멍에처럼 생겼다고 해서 ‘가우도’라 부른다. 이곳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섬이지만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섬과 뭍을 잇는 저도 출렁다리(438m)와 망호 출렁다리(716m), 이 두 개의 다리가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단 자동차는 진입할 수 없다.
섬을 에두르는 2.5km의 생태탐방로는 이곳 여행의 묘미다. 가우도는 강진만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어 어디서든 바다를 눈에 담을 수 있다. 걷고 싶은 만큼 걸으며 해안 경관을 즐겨보자. 한 가지 더 추천한다면 가우도 정상에서 출발하는 짚트랙을 타고 해상을 나는 경험도 특별하다.│한국관광공사

제주 우도

제주 우도

제주 성산포 앞바다에 떠 있는 우도는 이름 그대로 소섬이다. 섬의 모습이 소가 드러누웠거나 바다로 머리를 내민 모습과 같아서다. 해안선 길이가 17km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가장 제주다운 풍경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해녀들이 물질을 한 뒤 옷을 갈아입고 몸이 녹이기 위해 쌓아놓은 불담, 밭과 밭을 가르는 돌담, 동네 초가집을 둘러싼 울담 등 볼거리가 옹골차다. 우도 여행에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우도봉을 빼놓을 수 없다. 우도봉 정상에 서면 섬 전체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데, 날씨가 좋을 때면 건너편 성산일출봉이 코앞에 있는 것만큼 가깝게 보인다.│한국관광공사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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