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쪽같이 숨은 날

2018.12.30 최신호 보기

 

01
“고래님, 무지개 좀 만들어줘요!”
친절한 고래는 물을 잔뜩 마시고 코로 죽죽 뿜어서
등 위에 무지개가 반짝 떠오르게 했어요.
“고래님, 공중에 훌쩍 뛰는 묘기 좀 보여줘요!”
친절한 고래는 강으로 풍덩 뛰어들어
멋지게 고래 뛰기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고래님, 이것도…!”
“고래님, 저것도…!”

고래우화4

02
이웃을 기쁘게 하는 건 즐겁지만,
오늘처럼 쉬고 싶을 때에도 불쑥불쑥 찾아오면
고래는 어디론가 꽁꽁 숨고 싶어져요.
“바닷속 작은 물고기들은 돌틈 사이에, 물풀 사이에,
텅 빈 조개껍데기 속에 꼭꼭 숨곤 했지.”
고래는 두리번두리번 숨을 곳을 찾았지만
도무지 마땅한 데가 없었어요.
이불 속에도, 침대 밑에도, 장롱 안에도
커다란 몸을 숨길 수가 없었어요.

03
“이곳이 바닷속이라면 깊이 깊이 숨을 텐데…”
향고래 같으면 바다 밑 2000미터도 더 내려가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저 바닥에서
두 시간 넘게 숨을 참고 있을 수 있어요.
그야말로 잠수함이 따로 없지요.
“나도 그렇게 잠수를 타고 싶어.”
하지만 혹등고래는 기껏해야 10분,
아무리 길어도 30분밖에는 숨을 참지 못하지요.

04
“내 몸이 돌고래처럼 작다면 어떨까?
혹은 고등어나 오징어, 올챙이처럼…”
그러면 어디든지 숨을 수 있을 거예요.
서랍 속에도, 가방 속에도, 심지어 필통 속에도요.
“하지만 사람들이 찾아와 샅샅이 뒤지면…?”
사람들은 뭔가를 찾아내는 데는 선수예요.
예전에 고래를 사냥하던 시절에도
음파 탐지기며 항공 레이더까지 동원해
온 세상 바다를 이 잡듯이 뒤졌어요.

05
“아하! 변신을 하는 건 어떨까?”
고래는 몸이 아주 납작해져서
벽에 벽지처럼 붙어 있는 모습을 떠올렸어요.
바닥에 장판처럼 깔려 있는 모습도 떠올렸어요.
“아니면 이렇게 변신할 수도 있겠지.”
고래는 소파, 냉장고, 식탁으로 변신한 모습을 떠올렸어요.
의자, 밥통, 빗자루로 변신한 모습도 떠올려 보았어요.
그러다 문득 손뼉을 딱 쳤어요.

06
“아하, 이러면 진짜 진짜 못 찾을걸!”
고래는 아예 커다란 산으로 변신하는 거예요.
등성이 전체가 고래의 등이지만,
사람들은 절대로 눈치 채지 못해요.
혹은 강으로, 혹은 하늘을 가득 덮은 구름으로…
“아니 아니, 차라리 바다가 되는 거야.”
고래는 가끔 저 동쪽 바다로 가요.
바다 전체가 꿈틀꿈틀 움직이는 고래이지만,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한답니다.


동화작가 신정민은 눈높이아동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동안 <수염 전쟁>,<친절한 돼지 씨>, <이야기 삼키는 교실>, <툭> 등의 책을 냈다. 민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고래가 있는 민화展’ 등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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