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한 컷] 내가 만난 북한, 세 가지 장면

2018.04.09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2003년 평양서 열린 제6차 남북 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 참석자들과 함께

▶ 2003년 평양서 열린 제6차 남북 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 참석자들과 함께 ⓒ연합

오는 4월 27일과 다음 달이면 2018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차례로 열린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미래를 논하는 중요한 자리가 될 것이다. 원로자문단의 한 사람으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바라보면서 지난 세월 북한과 맺었던 인연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 북한과 만난 곳은 1985년 소련이었다. 그때만 해도 소련과 외교관계가 없던 냉전시기여서 한국 사람의 소련 방문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유엔대학이 유엔 설립 40주년을 기념해 소련의 타슈켄트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평화와 안보 회의’를 개최하면서 특별히 남북한 학자들을 동시에 초청했다. 북한은 한국학자의 참가를 강하게 반대했으나 일본 도쿄에서 일주일을 기다린 끝에 소련 비자를 받았다.

어렵사리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하자 당시 나를 마중 나온 소련 관계자가 한국 공관이 없으니 대신 신변 보호를 해주겠다면서 북한 담배를 건넸다. 북한과의 첫 만남은 담배와 한 셈이다.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를 거쳐서 회의 현장인 타슈켄트로 향했다.

회의에는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안보를 연구하는 세계의 저명학자들이 참석했다. 한반도 분과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의 전문가가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논의한다고 해서 모든 참석자의 관심을 끌었다. 사회를 맡은 일본 도쿄대학의 사카모토 요시카즈 교수는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발표 이후, 남북한 분단 이래 최초의 역사적 토론이므로 다른 분과의 양해를 얻어서 남북한의 시간제한 없는 난상 토론을 제안했다. 북한에서는 대남 전문가 두 명이 참석했고, 남한 대표는 나 혼자였다. 북한은 정부 공식 견해를 소상히 밝혔고, 나는 남북을 넘어 한반도 차원에서 평화와 안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가운 냉전질서 속에서 북한 전문가들과 소련에서 가진 2주일 동안의 만남은 내게 일생일대의 체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두 번째 만남은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탈냉전의 서막이 열리던 1990년 여름 나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초청으로 북한 전문가들과 함께 한반도 군비통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했다. 남측 대표 네 명과 북측 대표 세 명이 미국 참가자들과 함께 며칠 동안 비공개로 토론에 임했다. 회의의 가장 큰 성과는 남한과 북한의 평화 개념이 얼마나 다른가를 서로 명확하게 확인한 것이었다. 1990년대 초의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아온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체결됐다.  

세 번째 만남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남북 해외학자 통일회의였다. 몇 번의 중국 베이징 회의를 거친 후 2003년 3월에 평양에서 열리는 제6차 회의에 참석했다. 내가 발표하기로 했던 주제는 한반도 핵문제의 해결 방안이었다. 내가 강조했던 것은 한반도 핵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21세기적 지평에서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 선언과 한국과 관련 당사국들의 명실상부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예민한 상황에서 북한의 반대로 내 발표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세 가지 장면을 돌이켜보면 결국 남한과 북한이 성공적으로 대화에 임하려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문제에 얼마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었다. 북한과 처음 의견을 나눴던 1985년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긴 시간 대화를 이어왔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 11년 만에 다시 정상회담을 맞이한다. 남과 북이 오랫동안 다르게 생각해온 비핵화와 평화체제라는 기본 개념의 편차를 줄이는 노력이 최우선이다. 2018 남북정상회담은 남과 북의 상이한 입장을 제대로 극복하는 자리가 될 수 있길 바란다.

 

하영선 재단법인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하영선│재단법인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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