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20년, 어떻게 달라져왔나

이근하 위클리 공감 기자 2018.12.30 최신호 보기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 왔다는 외국인들의 머리색과 눈동자가 각양각색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욘사마”를 외치던 주변국 사람들이 한류 인기를 입증하는 전부였다면, 이젠 세계인이 한류를 좇는다.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태동한 한류가 유럽, 미대륙으로까지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류는 한국 문화가 해외에서 인기리에 소비되는 현상을 통칭한다. 그 기원에 대해선 관련 학자마다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어 한 가지로 규정할 순 없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가시화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지연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연구원은 “‘한류’라는 단어 자체는 중국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1997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중국에 수출한 게 계기”라고 말했다.

‘사랑이 뭐길래’는 중국 현지 시청자 수 4000만 명에 육박하고 역대 수입 외화 시청률 2위에 올라서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중국에서 방영된 외국 드라마의 시청률이 1% 내외에 그쳤던 반면 ‘사랑이 뭐길래’는 4.3%를 기록했을 정도다. 이후 ‘별은 내 가슴에’, ‘목욕탕집 남자들’ 등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 드라마가 중국 드라마 시장의 한 축에 섰고, 이는 한국을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나라로 인식하게 했다. 드라마 수출을 기반으로 한 한류는 2000년대 초 정점을 찍었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 열도를 뒤흔들면서 한류 무대가 일본으로 확장됐고, ‘대장금’도 한류 확산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드라마 위주 수출에 머물렀다면 오늘날 한류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류가 장르, 대상 연령 및 지역의 한계를 마주하면서 새로운 동력이 요구됐고 그때 등장한 것이 ‘K-팝’이다. 이 시기를 초기 한류와 구분해 ‘한류 2.0’이라고도 일컫는다.

한류 20년

가수 보아가 2001년 일본에서 현지화 전략으로 데뷔해 K-팝의 포문을 열었다면 2005년 동방신기가 불씨를 당겼다. 동방신기는 2007년과 2008년 연이어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라 일본 아이돌 시장에서 K-팝 그룹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이들의 진출은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다. 2000년대 후반 일본 음반 산업은 정체기에 들어서면서 신인을 육성하는 대신 시장에 바로 투입 가능한 콘텐츠를 필요로 했고, 국내 기획사들은 좁은 내수 시장을 벗어나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이에 빅뱅, 카라, 소녀시대 등 국내 아이돌 그룹이 한류에 뛰어들면서 K-팝 범위가 급속하게 커졌다. 다만 K-팝의 강세는 아시아 시장에 국한됐을 뿐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미미했다. 2008년 보아와 비 등이 미국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고 이듬해 원더걸스가 국내 걸그룹 최초로 미국으로 향했다. 각자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지만 한국 최정상 가수라는 명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한류 확산 매개체 다변화

한류 20년

K-팝 중심 한류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폭발했다. 싸이가 2012년 7월 발매한 앨범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 수가 치솟더니 발매 한 달 만에 ‘최근 한 달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동영상’ 순위에서 연이틀 1위에 올랐다. 강남스타일은 세계 3대 팝 차트 중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에서 2위까지 기록했다. 세계 각국에서 강남스타일 ‘말춤’을 따라 하는 동영상이 줄을 이었다. 의도적인 글로벌 기획이나 홍보 없이도 나타난 이 현상은 K-팝 성공사례 이상의 의미였다. 한류를 전파시키는 매개가 진화했음을 시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변화는 한류 위기 극복의 발판이 됐다. 일본에서는 경직된 외교 관계, 우익 정권의 장기 집권 탓에 최근 몇 년 간 혐한(한국을 극도로 싫어하는) 분위기가 젊은 세대까지 미쳤고, 중국은 사드 배치를 이유로 한류 콘텐츠의 수출을 막는 등 한류는 지역 문제를 안고 있었다. 온라인 플랫폼은 이 장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됐다.

인터넷이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다른 나라의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서다. 대표적으로 미국 시장에 안착한 그룹 방탄소년단을 들 수 있다. 방탄소년단은 미국 진출을 목표로 별도 프로모션을 하지 않았다.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자신들의 노래를 들려주고 소셜미디어에서 해외 팬들과 직접 소통해온 게 전부다. 이 점이 각국 팬들의 공감대를 형성했고 방탄소년단을 미국 무대에 올렸다. 더 이상 한류는 인근 국가, 일부 콘텐츠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새 유통 플랫폼을 타고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김지연 연구원은 “아시아권을 대상으로 드라마, 음악 등이 이끈 한류가 이전의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우리나라 모든 문화 앞에 ‘K’자를 붙이고 있다. 이를테면 케이 뷰티, 케이 푸드 등 이것을 ‘한류 3.0’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신한류’의 등장도 기대해봄 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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