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강현실(AR), 어디까지 봤니?

유슬기 위클리 공감 기자 2018.12.30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SF소설의 거장 아서 C. 클라크는 말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고.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이 마법이 “우리 삶에 가까이 와 있다”고 말했다. 저커버그는 지난 4월 페이스북 연례 개발자회의인 ‘F8’에서 “증강현실은 우리의 모든 기술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포켓몬고’는 증강현실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포켓몬고’는 증강현실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먼저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과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상현실은 가상의 이미지를 이용하고, 증강현실은 현실의 이미지와 배경을 이용한다. 가상현실 게임은 ‘가상의 나’와 ‘가상의 적’이 대결하지만, 증강현실은 ‘현실의 나’가 ‘현실의 공간’에서 ‘가상의 적’과 대결한다. 지난해 인기를 모았던 ‘포켓몬고’를 떠올리면 쉽다. 하지만 증강현실은 그 현실 안에 함께하는 이들에게만 나타난다. ‘포켓몬고’를 깔지 않은 유저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몬스터를 발견하지 못한다. 함께 있어도 다른 현실을 볼 수 있는 시대, 증강현실의 시대다.

AR, 드라마가 되다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드라마 안에 증강현실을 도입했다. 남자주인공 유진우(현빈)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끼어 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적과 숱하게 칼싸움을 벌인다. 숱하게 죽이고, 숱하게 죽는다. 클래식 명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기타 선율이 은은하게 울리면, 유진우의 현실에는 첨단과학기술이 만들어낸 게임이 시작된다.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현실과 게임 속을 오가는 증강현실을 소재로 화제를 모았다.

▶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현실과 게임 속을 오가는 증강현실을 소재로 화제를 모았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쓴 송재정 작가는 2016년 드라마 ‘W’에서 현실에 사는 여자(한효주)와 웹툰 속에 존재하는 남자(이종석)의 두 세계를 그린 바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현실에 사는 남녀가 있고, 이 현실 위로 ‘증강현실’이 열린다. 드라마의 주인공 현빈과 박신혜는 “대본의 힘이 엄청났다”고 말했다.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가 열렸다”고 말이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이 드라마는, 앞으로 현실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예고편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현실 속 다른 현실을 보는 건 남자지만, 여자는 남자의 말과 행동을 환각이라 여기지 않고 믿어준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는 남자, 그는 현재 게임의 세상 속에 갇혀 있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틀리며 균열을 일으킬 때, 우리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작가는 보이지 않는 칼과 총이 난무하는 이 세상을 설계해두고, 시청자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떨 것 같으냐’고. 멀지 않은 미래가 우리 앞에 와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극 중에서 게임 속에 있는 이들은 칼과 방패를 가지고 저마다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현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모습은 텅 빈 광장에서 허우적거리는 이상한 사람일 뿐이다. 마법에 걸리지 않은 이들의 눈으로는 마법을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드라마에 게임이 등장하고, 현실과 CG가 절반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방영 3주 만에 시청률 8.6%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올랐다. TV뿐 아니라 넷플릭스에서도 함께 방영되고 있다. 생소한 소재라고 여겼던 AR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출하고 있는 안길호 PD는 전작 ‘비밀의 숲’에서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 호평받은 바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현란한 기술뿐 아니라 기술 앞에 선 인간의 고뇌도 담았다.

“증강현실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습니다. 환상과 현실의 접점을 찾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다가갔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증강현실 역시 우리에게 곧 다가올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증강현실, 우리 곁에 다가온 미래

드라마뿐 아니다. 증강현실이 ‘현실’이 됐다. 서울시는 서울 사대문 중 하나인 돈의문을 증강현실로 복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문화재청, 우미건설, 제일기획 등과 함께 복원 방법을 모색하던 중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첨단 디지털 기술인 증강현실로 돈의문을 재현할 방안을 고안해냈다고 밝혔다.

일명 서대문인 서울의 ‘돈의문’이 104년 만에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해 복원된다.

▶ 일명 서대문인 서울의 ‘돈의문’이 104년 만에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해 복원된다. ⓒ문화재청

돈의문(敦義門)은 ‘의를 북돋우다’라는 뜻으로 한양도성의 사대문 중 하나다. 일명 ‘서대문’이라고도 불린다. 한양 사대문 중 유일하게 복원되지 못한 비운의 대문이기도 하다. 1396년 한양의 2차 성곽 공사를 마무리할 때 지은 8개 성문 중 하나였던 돈의문은 태종 13년에 ‘풍수적으로 돈의문의 자리가 좋지 않다’는 주장에 따라 폐쇄됐다. 세종 4년에 신문로 언덕에 문을 세운 뒤 이름을 다시 ‘돈의문’이라 지었다. 당시 백성들은 ‘새로 세운 문’이라 하여 ‘새문’이라고도 불렀는데, 육조거리에서 돈의문까지 잇는 길이 지금도 ‘새문안길(신문로)’로 불리는 이유다. 시간이 지나 일제강점기인 1915년, 일제는 경성에 전차궤도를 복선화한다는 이유로 돈의문을 헐었다. 그렇게 조선 초부터 약 500년간 서쪽 대문 역할을 해오던 돈의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철거된 돈의문의 기와와 목재는 경매에 부쳐졌고 당시 205전 50전에 팔렸다.

그 후로 다시 104년이 흘러 돈의문은 증강현실로 재현된다. AR 기술을 이용해 돈의문이 있던 정동사거리에 다시 세워지는 것이다. 근처를 지나는 이들은 스마트기기로 과거 돈의문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다. 돈의문 터인 정동사거리 인근을 스마트폰으로 비추면 화면에 옛 돈의문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는 방식이다. 돈의문의 뼈대는 문화재청과 서울시 등이 보유하고 있는 돈의문의 과거 사진과 축조 기록이다.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복원 프로젝트의 총괄기획과 지원을 맡고, 우미건설은 프로젝트를 주관하며, 제일기획은 증강현실 복원작업과 체험공간 제작 등을 맡는다. 서울시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2019년, 돈의문이 철거됐던 6월경에 돈의문 복원 프로젝트가 완료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증강현실 부문을 맡은 제일기획 관계자는 “104년 만에 AR로 복원되는 돈의문이 사라졌던 문화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디지털 기반의 신개념 역사체험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스마트 출판 시대, 증강현실 인터뷰

스마트폰으로 페이지를 찍으면 영상으로 책을 볼 수 있는 증강현실 기술

▶ 스마트폰으로 페이지를 찍으면 영상으로 책을 볼 수 있는 증강현실 기술 ⓒ믿어줘서 고마워

책 지면에 스마트폰을 비추면 영상이 재생된다. 영상 속에는 지면에 기록된 인터뷰이의 모습이 담긴다. SNS 작가로 활동 중인 이창민 작가는 지난 5년간 만난 8000명의 인터뷰를 책 <믿어줘서 고마워>에 담았다. 약 195GB의 데이터가 담겨 있고,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234명의 증강현실 인터뷰를 볼 수 있다. 화면에는 3D 기술이 접목돼 360도로 인물을 볼 수 있다. 그가 인터뷰한 인물은 정세균 전 국회의장, 김덕룡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 정치인부터 머슬퀸 이연화, 러시아 방송인 안젤리나 다닐로바, 치어리더 박기량 등 다양하다. 책은 이미 발간됐지만, 증강현실 인터뷰는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중이다.

“<세상을 보는 안경, 세안>을 쓸 때부터 영상 인터뷰를 지면에 융합시키는 시도를 해왔어요. 출판사에서도 좋게 봐주셨고, 본격적인 증강현실 인터뷰 책을 만들게 됐습니다.”

이창민 작가는 2013년 교통사고를 당했다. 홀로 고립되었다고 느꼈던 시기, SNS를 통해 친구들을 만났다. 오프라인의 만남은 낯설고 서툴렀지만, SNS에서의 만남은 편안했다. 이후 그는 SNS를 이용해 한국뿐 아니라 해외 친구들과도 소통하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은, 존경받거나 인정받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조바심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가치와 의미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지름길은 없다는 걸 알게 됐죠.”

증강현실을 인터뷰에 접목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책 한 권을 내는 데 5년이 걸렸다. 그의 책 제목이 <믿어줘서 고마워>인 이유도, 이 책이 나올 수 있기까지 함께해준 이들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다.

“지금도 유튜브와 인터뷰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영상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마트폰을 열면 그가 바로 내 곁에 와 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SNS로 소통해보면 중국이나 영국 등 해외에서는 ‘증강현실 인터뷰’에 대한 관심이 높아요. 기술적인 면에서는 더 발전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대중적인 관심’은 한국보다 훨씬 뜨겁죠.”

이창민 작가는 ‘증강현실’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리라 확신한다. 이를 위해서 생활밀착형 ‘증강현실’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마음으로 느끼는 만큼’ 우리 생활 가까이에 와 있다고 말이다.

“저는 이번 책을 ‘스마트 출판’이라고 부릅니다. 증강현실이 책과 접목하면, 이전의 출판 방식도 많이 달라질 거예요. 이런 흐름에 한국이 앞장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용어 정리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IKEA)가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IKEA)가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모바일 앱을 출시했다. ⓒ이케아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증강현실이라는 용어는 1990년 보잉의 톰 코델이 항공기의 전선 조립을 위해 가상이미지를 실제 화면에 중첩(Augmented)시키면서 쓰이기 시작했다. 현실세계를 가상세계로 보완해주는 형태다. 실사영상에 3차원 가상영상을 겹쳐 현실 안에 가상현실을 만든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컴퓨터로 만들어놓은 가상세계에서 가상의 ‘나’가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기술이다. 특정한 상황이나 환경을 만들어서 사용자가 마치 주변 상황,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느낌을 만들어준다. 직접 경험하기 어려운 환경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능이 있다.

혼합현실(Mixed Reality, MR)  완전한 가상세계 구축이 어렵기 때문에 현실세계를 기반으로 가상세계를 접목하려는 시도다. 사용자가 환경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증강현실도 그 일부다. 현실과 가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손바닥에 놓인 가상의 애완동물을 쓰다듬는다거나 집안의 가구를 가상으로 재배치해볼 수 있다.

관련기사

페이지 맨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