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처럼 깊이 있게, 뉴스처럼 빠르게 ‘북저널리즘’

선수현 위클리 공감 기자 2018.12.30 최신호 보기

디지털 시대로 진입하며 출판·신문 업계의 위기설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문제는 대처 방식이다. 업계가 위기를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어떻게 모색하고 결합하느냐에 따라 위기는 도리어 신산업을 창출할 수도 있다. 스리체어스(Three Chairs)는 북저널리즘에서 기회를 찾았다. 북저널리즘은 북(book)과 저널리즘(journalism)의 합성어로 ‘책처럼 깊이 있게, 뉴스처럼 빠르게’를 지향한다.

이연대 대표(왼쪽 위)와 스리체어스 직원들

▶ 이연대 대표(왼쪽 위)와 스리체어스 직원들 C영상미디어

뉴스 이용자는 기사를 읽으며 사건의 흐름을 좇을 수 있으나 그 폭과 깊이에 갈증을 느끼기 쉽다. 더 많은 정보를 얻고자 책을 찾지만 책 한 권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모든 이슈를 책으로 찾아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반면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은 관심 분야의 책을 고르지만 언제 읽어도 그만이란 생각을 갖기 쉽다. 시의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문의 속도와 단행본의 깊이를 결합한 콘텐츠는 없을까. 북저널리즘은 이연대 대표가 위기와 위기에서 찾은 대안이다.
 
“출판과 언론이 모두 사양세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전 다르게 봐요. 두 산업을 합친 시장 규모가 12조 8000억 원쯤 돼요. 아무리 위기라고 해도 규모 면에서 매우 큰 시장이죠. 트렌디한 주제를 빠르고 깊게 알 수 있는 지적 플랫폼이 있으면 이용자로서 좋을 것 같았어요.”

‘지금 깊이 있게 읽어야 할 주제’ 선정

스리체어스가 북저널리즘을 시작한 건 2017년. 설립 초기에는 한 명의 인물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격월간지 <바이오그래피>를 발간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의 <바이오그래피> 인터뷰는 이 대표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됐다. 김 의장은 1997년 인터넷이 활성화되는 걸 보고 한게임을 만들어 네이버와 합병했고, 2007년 미국에 체류하면서 아이폰 출시를 보고 앱 생태계를 포착한 인물이었다. 이후 그는 국민 메신저앱 카카오를 출시했다. 김 의장은 환경 변화를 체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늘 새로운 산업을 발굴하는 감각이 있었다. 현상을 해석하는 시각도 남달랐다.

이 대표는 출판·언론계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봤다. 다른 영역에 있는 혁신이 부족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문제를 제기해도 큰 변화는 없었다. 이 대표는 책보다 얇고 신문보다 깊이 있는 20쪽 분량의 경제 간행물이 떠올랐다. 스리체어스는 고민을 다듬어 북저널리즘을 제시했다. 출판업계와 언론을 결합해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이다. 기존 출판업계는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담을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주제 선정부터 집필과 편집, 인쇄 일정을 거치면 6개월에서 2년이 소요됐다. 북저널리즘은 뉴스처럼 시의성 있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이 과정을 2개월로 단축해 속도감을 높였다. 주제에 따라 집필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인터뷰, 전문가 칼럼, 스트레이트 등 기사 작성 방식을 적용했다.

출판계 내에서 선별도 필요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지적 갈증은 존재했다. 본질은 콘텐츠의 질이었다. 지식 콘텐츠는 두 갈래로 분류됐다. 읽을 가치가 있는 것(worth to read)과 읽어야 하는 것(must read). 전자는 고전, 교양서 등으로 읽으면 좋지만 언제 읽어도 관계없는 책이다. 더 솔직히는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으로 독자의 편차 역시 심했다. 북저널리즘은 후자에 집중하기로 했다. 뉴스를 챙겨보며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취득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콘텐츠를 선정했다. ‘지금 깊이 있게 읽어야 할 주제’는 북저널리즘을 잘 대변한다.

얇은 구성, 속도감 있는 발간으로 시장성 입증

이연대 대표는 그동안 출판, 언론을 옭아매온 정의에 변화를 가미했다.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같은 형식은 철저히 공급자 중심에서 시기별로 선정한 뉴스 공급 방식이었다. 얇으면 신문이고, 두꺼우면 책이라는 판형도 공급자가 만들었다. 이를 이용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달랐다. 시시각각 변하는 분야가 아니라면 오늘의 콘텐츠를 꼭 오늘 소화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자 기사를 지금 읽든 1년 뒤에 읽든 필요한 시점에 적절히 읽는 게 핵심이었다. 이렇게 바라보면 콘텐츠 생명력도 길어졌다.

북저널리즘 효과를 배가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전문가의 기자화’였다. 법률전문기자, 의학전문기자, 과학전문기자 등 언론에서 ‘기자의 전문화’가 이뤄진 것과 유사했다. 책과 언론의 경계에서 전문가들이 기자처럼 대중이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다.

속도감 있는 발간으로 북저널리즘 시리즈는 2년 사이 인쇄물 31종, 디지털 약 50종을 발행했다. 주제는 크게 밀레니얼스, 밸런스, 퓨처, 폴리틱스, 비즈니스 등이다. 뉴스가 오랜 기간 취재 영역을 분류해온 것에서 차용해 스리체어스 방식으로 최근의 흐름을 얹어 범주를 정했다.

북저널리즘 가운데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미래의 교육, 올린>이다. 교육 혁신으로 유명한 미국 올린공과대학을 다룬 책이다. 올린공대의 교육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저자가 직접 학생 주도, 경험 중심의 교육 패러다임 전환을 소개했다. 기존 교육 분야의 책이 거대 담론으로 접근했다면 이 책은 일선 학교에서 기본 명제를 실현하고 있는 것에 집중했다. 여기까지는 여느 책과 다르지 않지만 강점은 따로 있었다. 135쪽의 얇은 두께에 경험 중심의 내용 구성. 사례 연구가 필요한 교육 종사자들이 짧은 시간에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게 한 점이 구매로 이어졌다.

2017년 5월 발행한 <검사는 문관이다>의 반응도 뜨거웠다. 당시 ‘검찰 개혁’이란 소재가 맞물려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속도감 있게 출간했기에 가능했다. 검찰 개혁 하면 자칫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정작 이 책은 검찰 내부 개혁을 다뤘다. 피의자 심문 시 표적수사, 피의사실공표 등 검사가 지양할 태도를 검사 출신 저자가 애정을 담아 조언했다.

<합니다, 독립술집>은 요즘 세상의 트렌드를 포착한 대표적 발간물이다. 스리체어스만의 기준으로 독립술집을 정의하고 한창 젊은 나이에 술집을 차린 젊은 사장 다섯 명을 심층 취재해 변화한 사회 단면을 바라봤다. 대기업에서 나와 술집을 차리고 신학을 공부하다 와인식당을 열고 정치에 입문했다가 막걸리를 판매하는 독립술집 주인들은 과거 술을 판매하는 행위를 넘어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획자이자 공간의 예술인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북저널리즘에 대한 독자의 반응도 같았다. 시의성 있는 주제를 깊이 읽을 수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북저널리즘의 성장세는 독자의 반응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분기별 성장률이 평균 43%를 달성했다. 모든 콘텐츠가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도 했다.

향후 스리체어스는 디지털 영역을 확장하고자 한다. 아직 전체 매출에서 디지털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대밖에 되지 않지만 이 대표는 디지털 시장성을 높게 바라보고 있다. 온라인 음원시장이 커지고 만화(웹툰), 영화, 드라마 등의 영역 변화가 이뤄진 지는 오래지만, 활자 콘텐츠는 이제 변화의 본격화를 앞둔 시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월정액 독서 앱이 인기를 모으는 상황이기도 하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태생)는 유료 콘텐츠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낮아요. 기성세대가 온라인 활자 콘텐츠에 돈을 지불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20~30대는 안 그래요. 정보를 취득하는 방식도 달라요. 과거 20~30대처럼 신문을 즐겨 보지 않죠. 대신 인터넷 커뮤니티 모임을 이루거나 전문가의 SNS를 팔로우하며 피드백을 받고 나름의 전문적 시각을 정립해요. 이들은 주요 소비계층이 될 거예요.”

북저널리즘시리즈

북저널리즘시리즈

북저널리즘 시리즈

 

본질은 최고의 저자, 최소의 시간, 최상의 지적 경험

밀레니얼 세대는 트렌드에 민감해 정보에 뒤처지지 않도록 기꺼이 콘텐츠에 지불 의사가 있다는 설명이다. 젊은 혁신가들 역시 이런 방식으로 전문 정보를 얻는다고했다. 스리체어스의 디지털 콘텐츠를 이용하는 65%가 25~39세인 점도 같은 맥락이다. 때문에 디지털 전용 북저널리즘 시리즈는 20분이면 완독이 가능하게 제작한다. 이 대표는 이를 “미드(미국 드라마) 분량”이라고 언급했다. 긴 글을 잘 읽지 않는 요즘 세대가 집중할 수 있게 겨냥한 것이다. 더구나 짧은 시간을 투자해 책 한 권을 독파한 성취감까지 전하는 셈이다. 이 시점에 꼭 필요한 정보를 짧은 시간에 제공하는 본질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다.

“주제는 트렌드에 맞춰 선정하지만 스리체어스는 1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본질을 추구해요. 이용자 입장에서 본질적인 면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와요. 최고의 저자, 최소의 시간, 최상의 지적 경험을 주는 데 답이 있지 않을까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 집(오두막)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하나는 우정을 위한 것이며, 하나는 사교를 위한 것이다.” 여기서 세 개의 의자는 각각 나, 친구, 사회를 뜻한다. 스리체어스가 지향하는 북저널리즘 시리즈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이연대 대표는 “내가 만족할 줄 알고, 친구에게 권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에 유의미한 콘텐츠를 제작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콘텐츠 공급자 스리체어스는 의자 셋을 준비한 듯하다. 자, 세 의자가 있는 스리체어스의 오두막을 방문할 준비가 됐는가.

관련기사

페이지 맨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