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은 ‘널문리’라는 지명에서 유래했다. 널문리는 널빤지를 깔아놓은 문이라는 뜻이다. 경기 파주시 진서면에 위치한 평범한 시골 마을이 분단의 상징이 된 것은 6·25전쟁 때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부터다. 첫 휴전회담은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열렸다. 금방 마무리될 줄 알았던 휴전협상이 장기 조짐을 보이자 군사정전위원회 유엔 측은 회담 장소를 남쪽으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주막을 겸한 널문리가게 앞 콩밭에 회담 장소가 마련됐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사됐다. 전쟁이 일어난 지 3년 1개월, 휴전회담을 시작한 지 2년, 본회의 159회를 포함한 765번의 회담이 마침내 일단락됐다. 155마일(248km)의 휴전선이 한반도를 가로지르며 남북은 전쟁을 중단했다. 휴전선은 38선과 다르다. 38선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패망에 따라 미군과 소련군이 분할 점령을 약정하며 그어진 선이다. 휴전선은 남북이 점하고 있던 영토를 기준으로 획정됐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휴전선 위도가 다른 이유다. 1953년 10월 군사정전위원회는 널문리 일대에 동서 800m, 남북 400m의 지대를 설치했고 지금의 판문점이 모습을 갖췄다. 중공군은 ‘널문리가게’를 한자로 표기했다. 이때부터 널문리 회담 장소는 판문점(板門店)으로 불렸다.
자유롭게 왕래·대화하기도
휴전선의 공식 명칭은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 MDL)이다.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2km 떨어진 지점을 남방한계선, 북방한계선이라고 부른다. 그 사이의 남북 각 2km, 총 4km가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DMZ)다. 판문점은 군사분계선에 위치한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 JSA)이다. 남과 북이 직접 맞닿은 공간으로 팽팽한 긴장이 흐른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 우리 지역은 유엔군사령부에서 경비 임무를 관할하다가 사실상 2004년 11월부터 한국군이 완전히 맡게 됐다. 판문점에는 유엔(남측)과 북측 외에도 중립국감독위원회 감독관이 있다. 스웨덴·스위스(남측), 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북측) 소속이다. 북한은 1995년 북측 중립국감독위원회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를 추방해 현재는 스웨덴과 스위스만 남아 있다.
▶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4월 27일 ‘2018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
판문점에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다. 여러 채 막사 가운데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에는 T1,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는 T2가 써 있다. T는 ‘임시(temporary)’의 약자다. 하지만 ‘임시’라는 의미가 무색하게 판문점의 시간은 65년이 흘렀다. 남쪽에는 평화의 집, 자유의 집이, 북쪽에는 판문각, 통일각이 있다. 자유의 집과 판문각에는 상설 연락사무소와 직통전화 2회선이 설치돼 있다.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폐쇄된 북측 연락 통로는 2018년 1월, 23개월 만에 재가동됐다.
과거에는 판문점 내 왕래와 대화가 자유로웠다. 병사들은 서로 안부를 묻고 나란히 벤치에 앉아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러나 1976년 8월 18일 이른바 ‘도끼만행사건’ 후 판문점의 역사가 바뀌었다. 도끼만행사건은 판문점 내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판문점 내에서 자유로운 왕래와 일체의 사적 대화가 중단됐다.
판문점으로 망명을 시도한 사례도 있었다. 1959년 1월 구 소련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이동준 평양 특파원이 취재 도중 귀순했고, 1967년 3월 북한 조선중앙통신 이수근 부사장이 위장 귀순했다. 1981년 10월 중립국감시위원회 소속 체코인 로버트 오자크 일병이 망명해 미국으로 갔다.
각종 남북대화 출구 역할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이다. 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렇지만 대화의 출구 역할도 톡톡히 해왔다. 남북은 1971년 9월 남북적십자예비회담을 계기로 각종 회담 장소로 판문점을 활용해왔다. 1980년대 남북총리회담을 위한 실무대표 접촉, 남북경제회담, 남북국회회담, 수해물자 인도·인수를 위한 남북적십자 실무 접촉, 남북이산가족 고향 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 등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1990년대에는 남북학생회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1월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실무회담과 3월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에 따른 실무 접촉이 각각 열린 바 있다.
▶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두 차례에 걸쳐 소 떼 1001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을 방문했다. ⓒ연합
판문점은 남과 북을 오갈 때 거쳐야 하는 관문 역할도 한다. 1985년 북한 고향 방문단은 판문점을 통해 방문했고, 1990년 서울전통음악연주단이 판문점을 거쳐 평양으로 향했다. 남북한이 사람을 송환하거나 유해를 돌려줄 때도 판문점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판문점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은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두 차례에 걸쳐 소 떼 1001마리와 함께 북한을 향한 일이다. 미국 CNN은 이 장면을 생중계했으며 전 세계는 판문점이 열어갈 평화·협력의 물꼬를 기대했다.
판문점 방문하려면?
판문점 견학을 원하면 최소 2개월 전에 신청해야 한다. 일반인은 최소 인원 30인부터 45인까지 신청할 수 있으며 개인 자격으로 관광·견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방문자 명단, 견학 관련 서류를 통일부 누리집(www.unikorea.go.kr)에서 내려 받아 작성 후 등기로 보낸다. 주소는 본인 인증을 하고 나면 안내된다.
•학교 및 공공기관단체 : 통일부 남북연락과 031-950-9208
•일반단체 : 국가정보원(111) → *(별표) → 상담원 연결
선수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