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 기성품에 새 의미를 심다

장가현 위클리 공감 기자 2018.12.30 최신호 보기

현대미술사에 ‘레디메이드(ready-made)’의 등장만큼 파격적인 사건이 있을까? 평범한 기성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레디메이드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미술품이 됐다. 레디메이드라는 새로운 예술을 만든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이 ‘파격’을 시작으로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지금까지 칭송받고 있다.

뒤샹이 만든 레디메이드는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 리처드 해밀턴, 로버트 라우센버그를 시작으로 미디어아티스트 백남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2004년에는 영국 미술가 500인이 뽑은 ‘20세기 100년간 후대에 영향을 많이 끼친 20세기 작품’에 뒤샹의 ‘샘’이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샘’, 1950(1917년 원본의 복제품), 자기(磁器) 소변기

1 ‘샘’, 1950(1917년 원본의 복제품), 자기(磁器) 소변기│©Association Marcel Duchamp /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C영상미디어

뒤샹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남성용 변기, ‘샘’이다. ‘샘’은 제작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1917년 뉴욕 독립미술가협회 전시에 출품하려다 거절당했다. 작가가 손을 댄 것이라곤 ‘R. Mutt 1917’이란 서명뿐인 소변기를 미술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출품한 지 82년이 지난 1999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무려 1700만 달러(191억 4200만 원)에 낙찰되며 재평가를 받았다.

‘샘’, ‘자전거 바퀴’ 등 뒤샹 대표작 총망라

현대미술에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던 ‘샘’, ‘자전거 바퀴’ 같은 레디메이드 작품뿐 아니라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 등 뒤샹의 대표작과 삶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가 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전 세계에서 뒤샹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의 소장품이 대거 공개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회화, 레디메이드, 드로잉 등 150여 점 중 대다수가 우리나라에 처음 공개된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마르셀 뒤샹전 전시관 입구

2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마르셀 뒤샹전 전시관 입구│C영상미디어 3 ‘에로즈 셀라비로 분장한 뒤샹’, 1921, 만 레이, 젤라틴 실버 프린트, 17.8x13.3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Library and Archives: Gift of Jacqueline, Paul and Peter Matisse in memory of their mother Alexina Duchamp│ⓒ MAN RAY TRUST/ ADAGP, Paris & SACK, Seoul, 2018 4 ‘안과의사 목격자’와 뒤샹, 1967, 리처드 해밀턴, 젤라틴 실버 프린트, 21x15.9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Library and Archives: Gift of Jacqueline, Paul and Peter Matisse in memory of their mother Alexina Duchamp│©Association Marcel Duchamp / ADAGP, Paris–SACK, Seoul, 2018 C영상미디어

‘자전거 바퀴’ 1913

 5 '자전거 바퀴' 1913, Philadelphia Museum of Art: 125th Anniversary Acquisition. Gift (by exchange) of Mrs.
Herbert Cameron Morris, 1998│© Association Marcel Duchamp / ADAGP, Paris–SACK, Seoul, 2018 C영상미디어

인상주의 등 프랑스 화풍에 영향을 받았던 초기 작품

6 인상주의 등 프랑스 화풍에 영향을 받았던 초기 작품│C영상미디어 7 ‘여행가방 속 상자’ 작품 뒤로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C영상미디어

전시는 뒤샹의 삶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총 4부로 나눠 구성됐다. 1부는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파 등 프랑스의 화풍을 익혔던 작품이 소개된다. 1912년 작인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는 뉴욕 아모리 쇼에 전시돼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2부는 주로 프랑스를 벗어나 작가의 달라진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아방가르드 미술의 규칙에 신물이 난 뒤샹은 미술의 전통적인 제작 방식을 뒤엎는다. 막스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읽고 깊은 감명을 얻은 뒤샹은 예술가가 의지만 있다면 대량생산된 물건도 얼마든지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품는다. 레디메이드의 시초다. 여기서 ‘자전거 바퀴’, ‘샘’ 같은 레디메이드 작품과 뒤샹의 대표작 ‘큰 유리’를 제작하는 데 영향을 준 ‘초콜릿 분쇄기’도 만날 수 있다.

3부는 뒤샹의 또 다른 자아 ‘에로즈 셀라비’가 소개된다. 에로즈 셀라비는 뒤샹이 만든 여성의 자아다. 뒤샹은 셀라비로 고정된 성적 정체성을 허무는 데 힘썼다. 유머러스하고 성적 함의가 가득한 언어유희 작가로 활동했다. 여기서는 미니어처 이동식 미술관 ‘여행가방 속 상자’를 눈여겨봐야 한다. 여행가방 속 상자는 뒤샹이 전쟁으로 작품이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만든 것이다. 뒤샹이 직접 디자인부터 수정, 유통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 전시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인 1941년 에디션과 필라델피아미술관 1966년 에디션을 함께 비치해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4부는 세계 여러 곳에서 전시를 하던 뒤샹의 아카이브가 소개된다. 생전 마지막 작업으로 알려진 ‘에탕 도네’를 제작하며 남긴 스터디 작품을 볼 수 있다. 필라델피아미술관에 영구 설치된 건축물 ‘에탕 도네’와 이동하기 어려운 ‘큰 유리’는 미디어 전시로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 거장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2019년 4월 7일까지 열린다. 

기간 2019년 4월 7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요금 4000원   
전시문의 02-3701-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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