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촛불혁명’ 민주공화국 100년 새로운 민주주의는 참여 더하기 대의

2018.03.18 최신호 보기

내년 2019년은 ‘민주공화국 100년’이 되는 해다. 1919년 4월 11일 선포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제로 함”이었다. 민주공화국 이념은 지난 100년 동안 우리나라를 지탱해온 힘이자 정체성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황제가 없나요? 있소. 대한 나라의 과거에는 황제는 1인밖에 없었지마는 금일은 2000만 국민이 모두 황제요. 제군 모두가 황제요.”

임시정부의 한 주역인 안창호가 1920년 임정의 신년축하회 연설에서 한 말이다. 대한민국의 ‘민국(民國)’이란 ‘국민의 나라’임을 뜻한다. 이렇듯 2019년은 대한민국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이자 국민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임을 당당히 선포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광복을 이룬 것은 1945년이었다. 1948년에는 임시정부에 이어 새로운 정부 수립이 이뤄졌다. 새로운 대한민국에 부여된 두 가지 시대적 과제는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는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민주화였다.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화가 주로 사회운동에 의해 성취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는 한국 민주화 과정을 특징짓는 현상이었다. 1960년 4월 혁명은 이러한 민주화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출발점을 제공했다.

4월 혁명은 다양한 사회운동으로 발전

주목할 것은 4월 혁명을 1960년 4월 19일에 일어난 반독재 투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4월 혁명은 일련의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구체적으로, 1950년대 후반 이승만정권은 억압적 물리력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두고 장기 집권을 획책했고, 그 결과 시민사회의 불만이 고조됐다.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는 하나의 전환점을 이뤘다.
 
이승만정권은 완장 부대 활용 등 상상을 초월하는 부정 선거를 준비해 감행했고, 이에 항의하는 시위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2월 28일 대구 고등학생 시위, 3월 15일과 4월 11일 두 차례에 걸친 마산 시위, 4월 19일 서울에서 학생과 시민이 주도한 대규모 시위, 그리고 4월 25일 교수단 시위가 이어졌다. 4월 혁명 결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고, 이승만정권이 막을 내렸다.

이러한 4월 혁명이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서 갖는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시작한 4월 혁명은 학생과 시민이 중심을 이룬 시민혁명이었다. 민주화는 본디 이중의 과정으로 특징지어진다. 한편에서 그것은 민주주의 제도의 정착과 성숙으로 나타나고, 다른 한편에선 민주주의를 향한 사회운동을 통해 발전한다. 영국 명예혁명, 프랑스대혁명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근대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의 집합적 행동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심화시키는 데 결정적 계기를 부여했다.

주목할 것은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시작한 4월 혁명이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운동과 통일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으로 발전해갔다는 점이다. 당시 교원노조는 노동운동을 전개했고, 민자통(민족자주통일협의회)은 통일운동을 벌였다. 민주화운동이 이렇게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으로 확산된 것은 일견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민주화에 대한 시민사회의 열망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달성되면 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로 심화되고, 분단 상황이라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민주화운동은 통일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4월 혁명이 우리 현대사에 선사한 선물은 아래로부터의 시민사회 저항이 성공한 최초 경험이었다는 데 있다. 성공한 사회운동인 만큼 4월 혁명은 이후의 사회운동에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4월 혁명의 주도 이념인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반독재·반외세 사회운동의 이념적 지반을 제공했고, 4월 혁명에 대한 집합적 기억은 이후 시민사회의 저항에서 정서적 공감대의 원천을 이뤘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항쟁은 4월 혁명의 연장선 위에서 일어난 사회운동이었다.

촛불시민혁명의 다른 점

이 가운데 6월항쟁은 민주화 시대를 연 사회운동이었다. 6월항쟁은 4월 혁명과 여러 측면에서 많이 닮았다. 주체의 측면에서 6월항쟁은 4월 혁명처럼 학생과 시민이 운동의 중심세력이 됐고, 목표의 측면에서도 4월 혁명처럼 독재를 거부하고 민주화를 요구했다. 나아가 민주화 시대가 열리면서 노동운동이 활성화되고 통일운동이 점화된 것 역시 4월 혁명의 진행 과정과 유사했다. 무엇보다 4월 혁명과 6월항쟁은 모두 독재정권을 퇴진시킨 성공한 사회운동이었다.

2016년 촛불시민혁명은 이런 4월 혁명과 6월항쟁의 전통 속에서 일어난 사회운동이었다. 부패한 권위주의 권력의 거부와 국민주권 헌법정신의 구현을 요구한 촛불시민혁명은 4월 혁명과 6월항쟁의 민주주의 정신을 계승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촛불시민혁명과 앞선 민주화운동들과의 차이점이다. 4월 혁명과 6월항쟁에선 학생이 이른바 선도세력을 형성했지만, 촛불시민혁명에선 시민들이 선도세력이자 중심세력을 이뤘다. 이러한 차이는 그만큼 우리 민주주의의 저변이 넓어졌다는 것을 함의한다.

광복 이후 민주화운동의 도도한 역사가 우리에게 안겨준 교훈은 무엇일까.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민주화운동은 국민주권의 중요성을 계몽시킴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민주주의에서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가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라는 국민주권 원리를 4월 혁명에서 촛불시민혁명에 이르는 민주화운동들은 증거했고 또 성취했다. 요컨대 민주화운동이 한국 민주주의의 원동력이었음은 분명하다.

둘째, 이러한 국민주권의 원리는 사회운동을 넘어서 제도적 차원에서 구현돼야 한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주도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다. 문제는 대의민주주의만으로 국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제대로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많은 국민들은 선거와 투표를 넘어서 자신의 의사가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국가 의사결정에 반영되기를 원하고 있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 거버넌스, 국민소환제 등을 위시한 다양한 참여민주주의 제도들이다.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의 생산적 결합은 민주공화국 100년을 맞는 한국 민주주의에 부여된 매우 중대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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