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월성’ 전시회 ⓒ연합
경주 월성 발굴 현장을 예술 작품에 접목한 특별전시 ‘프로젝트展 월月:성城’이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기획전시실Ⅱ에서 전시 중이다. 월성에서 발굴된 토우(土偶)를 현대인들에게 친숙한 장난감 ‘레고’와 접목한 작품들을 전시해 특히 아이들이 흥미 있게 관람할 수 있다. 전시를 준비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4월 8일까지 기획 전시를 계속할 예정이다.
월성 현장을 국민과 공유하고 앞으로의 지속적 발굴조사에 전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4년 차에 접어든 월성 발굴조사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며 예술 작품과의 접목을 시도한 특별한 행사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이상윤, 양현모, 이인희 세 명의 작가가 1년 동안 월성을 돌아보며 느낀 월성의 정체성을 예술적인 시각으로 재구성해 다양하게 표현해낸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 ‘문라이트 오브 팰리스 앤 미스터리(Moonlight of Palace and Mystery)’는 이상윤 작가가 월성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토기와 월성 해자에서 나온 동물 뼈를 바탕으로 한 작품 전시다.
이상윤 작가는 일본 니혼대학교 예술연구소 사진학을 수료한 후 동대학원에서 예술연구과 영상예술을 전공했다. 일본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했으며 도쿄, 나고야,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함께 한국 문화유산 촬영 같은 의미 있는 작업을 진행했으며 현재 배재대학교 광고사진영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1, 2 이상윤 작가, ‘문라이트 오브 팰리스 앤 미스터리’
3 이인희 작가, ‘AD(기원 후) 101로 떠나는 여행’
4,5,6 양현모 작가, ‘토우, 레고와 함께 놀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 작가의 작품은 월성 발굴 현장에서 나온 토기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면 깨진 정도에 따라 평면이 마치 달이 차고 기우는 모습이 연상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또한 월성의 모양이 반달과 비슷해 오랫동안 반월성으로도 불려왔는데, 작가는 이러한 사실에 주목해 월성의 토기를 달로 형상화한 사진으로 표현했다.
소형 레고와 잘 어울리는 흙인형
월성 해자에서는 자연적인 수장고 역할을 해온 뻘 층에서 멧돼지, 개, 말, 곰 등 썩지 않은 다양한 뼈들이 나왔다. 작가는 이러한 뼈들을 사진으로 촬영해 특수 플라스틱인 에폭시(epoxy)를 부어 만든 설치물을 통해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동물 뼈처럼 재현했다.
2부 ‘토우, 레고와 함께 놀다!’에서는 양현모 작가가 월성에서 나온 토우들을 현대인에게 친숙한 장난감 ‘레고’와 조합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양현모 작가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이탈리아노 디 포토그라피아 인스티튜토를 수석 졸업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초대전을 시작으로 수십 차례 전시회를 가졌으며, 현재 일 스튜디오 대표로 활동 중이다. 수년 동안 우리나라의 탑 사진을 찍어왔고 그 결과물을 모아 2017년 12월 뉴욕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흙으로 만든 인형’이라는 뜻의 토우는 주로 경주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특히 토기에 붙어 있는 토우는 평균 5~6cm 크기라 소형 레고 인형과도 잘 어우러진다. 전시 기간에 열리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하는 의미로 선보인 ‘아이스하키를 하는 토우’가 눈길을 끌었고, 지난해 경주 월성에서 발굴된 이슬람 문화권의 옷인 카프탄을 입고 터번을 쓴 토우도 소형 레고 인형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3부 ‘AD(기원후) 101로 떠나는 여행’은 이인희 작가가 적외선 카메라와 3차원 입체(3D) 카메라 등을 활용해 월성 발굴 현장의 생생함을 전하고 있다. 작품 속 현장은 특수촬영기법을 통해 실제 모습을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어 관람객들은 월성 발굴 현장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인희 작가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경일대학교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 유명 잡지의 사진작가로 활동했으며 여러 기관의 사진 대회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한편 2014년 12월부터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들어간 월성은 학계와 일반인의 높은 관심 속에서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성벽 아래에서는 공양의 의미로 묻은 인골이 나오기도 했으며 월성 해자에서는 당시 신라인의 생활상을 추정할 수 있는 수많은 동물 뼈, 목간, 각종 식물 씨앗들이 출토되기도 했다. 신라 파사왕 22년(101년)에 월성을 쌓았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살펴볼 때 10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월성은 신라 왕궁지 역할을 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주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다. 자세한 문의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신라월성학술조사단(054-777-6385)으로 하면 된다.
신라 천년을 간직한 월성
천년 고도 경주 역사 정체성 확립 목적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의 하나로 2015년 3월부터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정밀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경주 월성 조사는 천년 고도 경주의 역사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1914년 일제가 남벽 부근을 처음 파헤친 지 100년 만에 우리 손으로 실시한 최초의 내부 조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 2017년 5월 공개된 월성 유물들 ⓒ연합
▶ 2017년 5월 조사단이 경북 경주시 월성에서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
월성은 신라 천년 수도의 궁성으로, 서기 101년 파사왕이 처음 쌓았다고 전해진다. 특히 〈삼국유사〉에 신라의 국보였던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이 보관돼 있었다고 기록될 만큼 오래전부터 국가의 중요 시설이었다. 월성 성벽은 흙으로 만든 토성이며, 성질이 다른 흙을 서로 번갈아 가면서 쌓아올리는 성토 기술로 축조했다. 성벽 최상부에는 사람 머리 크기만 한 돌이 4~5단가량 무질서하게 깔려 있다. 이는 흙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한 기능으로 보이며, 월성의 특징 중 하나다.
2016년 3월 정밀 발굴조사 결과 하나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통일신라 후기 건물지군이 확인됐다. 정밀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건물 흔적은 동서 51m, 남북 50.7m의 정사각형 모양이며, 담장을 둘러친 일곽 안팎에 총 14기의 건물이 배치된 형태로 나타났다.
건물과 담장의 건축 시기는 인화문(도장무늬)토기, 국화형 연화문수막새 등 관련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된 것으로 보아 8세기 중반 이후로 추정된다. 초기에는 담장 안팎에 길이 36m(정면 16칸, 측면 2칸) 규모의 대형 건물 등 6동의 건물을 배치했으나, 이후 내부 공간 확보를 위해 좌우 경계인 동·서쪽 담장을 허물고 건물 8동을 증축하면서 모두 14동의 건물을 갖춰 왕궁 내 시설을 완성해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흙으로 만든 토우 출토
2017년 5월 출토조사 결과, 정밀 발굴조사 중 서쪽 성벽의 기초 층에서 제물로 추정되는 인골 2구가 나왔으며, ‘소그드(Sogd)인’으로 추정되는 터번을 쓴 토우가 나오고, 병오년 간지가 정확하게 적힌 목간이 발굴됐다고 발표했다. 소그드인은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를 근거지로 하는 현재의 이란계 주민을 말한다.
해자에서 출토된 흙으로 형상을 빚은 토우들이 여럿 출토됐는데, 모양은 사람과 동물, 말 탄 사람 등 다양하지만, 이 중 터번을 쓴 토우의 출토는 많은 관심을 끌었다. 터번 토우는 눈이 깊고, 끝자락이 오른쪽 팔뚝까지 내려오는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있다. 소매가 좁은 카프탄을 입고 있으며 허리가 꼭 맞아 신체 윤곽선이 드러나고 무릎을 살짝 덮은 모양인데, 당나라 시대 소그드인 옷과 모양이 유사해 페르시아 복식의 영향을 받은 소그드인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6세기경 만들어진 토우로 추정되기 때문에 현재까지 출토된 소그드인 추정 토우 중 가장 이른 시기로 판단된다.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인골이 확인된 국내 사례는 월성이 최초이다. 주거지 또는 성벽의 건축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사용한 습속은 고대 중국에서 성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제방이나 건물의 축조와 관련된 설화로만 전해져왔는데 월성 발굴로 고고학적으로 처음 확인된 셈이다.
이정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