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강력히 대응하면서도 남북 평화공존과 화해 기조의 정책을 일관성 있게 펼친 결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올림픽 참가와 남북관계 정상화 의지를 피력했다. 이후 남북관계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두 달여 만에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응원단, 예술단, 고위대표단 등의 방한을 통해 빠른 속도로 정상화됐다.
특사로 온 김여정이 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했고, 폐회식에 온 대남정책 총책 김영철은 우리 고위 당국자들과 깊이 있는 논의를 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북미 북핵 대화 재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동결을 거쳐 궁극적인 비핵화에 이르는 2단계 해법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한반도 데탕트 흐름에서 소외된 미국의 최대 우려 사항인 북핵 문제는 해결 방면으로 전환되지 않았다. 따라서 올림픽 기간에도 미국은 대북 제재를 강화했고 북한은 이에 꼿꼿이 맞섰다. 패럴림픽이 지나면 연기된 한미연합훈련이 시행되어 한반도 정세는 또다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컸다.
▶ 대북 특별사절 대표단이 3월 5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특별기에 탑승하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핫라인 구축, 한반도 운명 우리가 주도
이런 맥락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 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 원장 등 특사단을 북한에 파견했다. 이에 김정은은 특사단을 파격적으로 환대하고 한반도 안보 상황을 획기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6개항의 합의 도출에 동의했다.
먼저 4월 말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청와대와 김정은 서기실 간 핫라인을 설치해 정상회담 이전에 통화를 실시하기로 했다.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이를 미국과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고, 북미대화가 지속되는 동안은 추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끝으로 북한은 한국의 태권도 시범단과 예술단을 평양에 초청했다. 김정은이 4월에 한미연합훈련이 예년 수준으로 진행되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는 것도 전해졌다.
사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도발이 한반도 안보를 심각하게 훼손해왔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더라도 이 문제가 해결되는 방향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미국이 압박과 제재를 넘어 군사적인 조치까지 가할 태세였으므로 한반도 안보는 위기를 맞게 될 처지였다. 따라서 특사 파견의 큰 성과는 북한의 비핵화 의향을 도출해 북미 대화가 개시되는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한반도 안보 상황이 한미동맹,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 남북관계가 선순환 관계로 개선될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조성된 것이다.
또한 한국이 북미대화를 중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남북 정상 간 핫라인 구축으로 우리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와 수시로 소통하는 핵심적인 장치를 통해 한반도 안보 위기를 관리·통제하게 된 것은 우리가 한반도 안보와 민족의 운명을 주도할 수 있게 됐다는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다.
대미 특사단, 북미 협상 설득해야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조건부인 데다 미국의 대북 불신이 여전해 과연 북미대화가 신속히 재개될지는 대미 특사단의 결과를 봐야 하고, 설사 북미대화가 개시되더라도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동결을 거쳐 궁극적인 핵 포기에 합의하도록 하려면 다양한 대가를 요구할 것인데 이를 초강대국인 미국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이런 맥락에서 대미 특사단은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면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전 능력 보유를 막을 수 있고, 제재 완화 가능성을 활용해 북한의 핵을 동결을 거쳐 불능화, 폐기 및 검증 단계로 나아가면 11월 중간선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우선 제재를 견지하면서 북미 협상을 재개하라고 설득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북한 지도부에게는 북미대화에 진전을 보인다면 궁극적으로 제재 완화를 거쳐 제재 해제로 나아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그리고 다양한 남북 경협 사업이 추진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북미 협상에 진전이 이뤄지도록 추동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정부는 북미 협상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하더라도 상호안보와 동시행동 원칙에 입각한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타협안을 작성하고 양측의 의견을 반영해 계속 수정해나가 양측 간 합의 도출을 도와야 한다.
중국, 일본, 러시아의 측면 지원을 유도하는 한편 북미 양측을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여 북미 협상에서 진전이 이뤄진다면, 4월 말 판문점에서 가질 남북정상회담은 주변 4강 모두의 환영 속에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을 것이고, 한국은 한반도 운명의 주역을 계속 맡게 될 것이다.
홍현익│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