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영웅과 함께하는 숨은 영웅들

2018.03.11 위클리 공감 최신호 보기

수년간 땀 흘려온 선수들의 명승부가 펼쳐지는 평창동계패럴림픽 현장, 그 뒤로는 선수들 못지않은 열정과 노력을 더하는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더욱 빛날 수 있다. 때로는 정신력을 잡아주고 때로는 신체의 일부가 돼주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패럴림픽과 함께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큰 경기 부담감 덜어줄 선수들의 소울메이트죠”

박인혜 멘탈 코치

ⓒC영상미디어

박인혜 멘탈 코치

어릴 적부터 유난히 부끄러움을 탔다고 했다. 자신을 향해 시선이 모아지는 것을 느끼면 양 볼이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였다. 초등학교 때 육상선수 활동 기간에는 더욱 그랬다. 극심한 긴장감까지 더해져 대회 전날이면 배탈을 일으켰고 경기 도중 탈진을 한 적도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쉬움이 든다. ‘내 마음을 다잡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방향이라도 제시 받을 수 있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고민을 털어놓는 선수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박인혜 씨는 평창패럴림픽 스노보드 선수단을 전담하는 대한장애인스키협회 소속 스포츠 심리상담사다. 일명 ‘멘탈 코치’라고 불린다. 과도한 불안감과 같이 경기에 방해가 될 수 있는 감정을 역으로 이용해 경기 역량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한다.

멘탈 코치는 공식 설문지를 통해 선수의 심리를 파악한 뒤 그 결과를 토대로 멘탈 관리 접근방식을 결정한다. 코치마다 이를 선수에게 적용하는 방식은 다르다. 박인혜 코치의 경우 더 많이 들어주고 공감하는 데 주력한다. 선수가 전지훈련 중일 때는 매주 1회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메일을 통해 선수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을 조언한다.

“선수의 들쑥날쑥한 감정을 매일 체크하려고 해요. 의족이 마모돼 생긴 상처 때문에 훈련이 어려워지면 그 불안감을 조절하는 방법을 모르는 선수들도 있거든요. 그들이 생각을 비우고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거나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패럴림픽 선수의 심리상담이라고 해서 올림픽 선수와 다르지는 않아요.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선수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은 모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선수와 상담 과정에서 박 코치가 얻어 가는 즐거움도 있다.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된 선수들이 도전하는 모습에서 전해지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그것이다. 박 코치는 혹자가 궁금해하는 금전적 가치보다 선수와 연을 맺는 그 자체가 더 큰 의미라고 말한다.

“경기 내용뿐 아니라 사는 이야기도 자주 나눠요. 이때 선수의 사생활을 지켜줘야 하는 것은 의무이자 역할이에요. 늘 다짐해요. ‘선수들이 어떠한 불편을 꺼내도 놀라거나 비난하지 말자.’ 심리를 다루는 문제이기 때문에 민감한 부분을 건드릴 경우 상담하는 사람들에게 적대감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저는 선수들에게 ‘어린왕자의 장미꽃’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저와의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그것이 선수의 경기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길 바라죠.”


“2년간 휴가 아껴놨다 뉴질랜드서 10시간을 날아왔어요”

배서영 자원봉사자

ⓒC영상미디어

배서영 자원봉사자

뉴질랜드 시민권자 배서영 씨는 지난 1월 열 시간을 넘게 날아 한국을 찾았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자 이후 2년 동안 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모았다.

“고등학생 시절 88서울올림픽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또 올림픽이 열릴 수 있을까’ 했는데, 제 고향이 개최지가 됐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작은 보탬이라도 돼야겠다는 생각에 한국행을 준비하게 됐어요.”

배 씨는 평창올림픽 NOC 어시스턴트에 이어 평창패럴림픽에서도 NPC 어시스턴트를 맡게 됐다. 선수단의 입국부터 출국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업무를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다.

선수단 성격에 따라 어시스턴트 업무량이 달라지는데, 앞서 배 씨가 전담했던 통가 선수단은 개회식 퍼포먼스로 특히 주목을 받았던 터라 상대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항상 웃을 수 있었던 건 스포츠 행사의 색다른 면을 직접 볼 수 있어서다. 생중계되는 경기 장면 외에 선수 간의 교류, 저녁 이벤트 등 올림픽이 보여준 다양한 모습에 매료됐다.

“패럴림픽과 올림픽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선수들이 세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건 모두 같으니까요. 패럴림픽이 오히려 조금 더 어려운 조건에서 선수들이 도전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지요.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올림픽 자원봉사를 할 때보다 더 의미부여를 하고 있어요. 패럴림픽 선수와 자원봉사자의 관계는 마치 가족이라고나 할까요. 친밀해야죠.”

그는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패럴림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지 않다는 점을 꼽았다. 올림픽 당시 교통 체증이 발생할 만큼 많은 사람이 대회 장소를 찾았지만, 유입객이 상대적으로 적은 게 한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꼭 패럴림픽 경기가 아니더라도 곳곳에서 열리는 다양한 문화행사, 그리고 이곳의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와서 확인해주세요. 저 역시 패럴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평창올림픽 폐회식에서 자원봉사자들의 공로가 언급됐듯 패럴림픽이 끝난 후에도 모두 함께 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훗날 지금을 돌아봤을 때 ‘내가 패럴림픽 현장의 한 사람이었다’는 자체만으로 짜릿할 것 같아요. 그때는 장롱 속에 있을 유니폼이 이 모든 순간을 떠올려주겠죠.”


“선수들이 장비에 신경 쓰지 않도록 해줘야죠”

송창호 의지보조기사

ⓒC영상미디어

송창호 의지보조기사

대개 스포츠 선수의 경기력을 가르는 요소를 꼽으라고 하면 ‘선수 본인의 기량’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동계패럴림픽 일부 선수들은 의지(의수와 의족을 통틀어 지칭)보조기의 성능에 따라 다른 결과를 받아들 수 있다. 선수 개개인의 입장에서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의 의지보조기를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오토복코리아는 평창패럴림픽 선수들에게 하지의지(의족)를 무상으로 지급했다. 대회 기간 동안 선수들의 의지를 돌보는 송창호 오토복코리아 소속 의지보조기사(CPO)를 만났다.

“평창패럴림픽 선수촌에 마련된 리페어센터에서 의지 제작 및 수리 등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스노보드와 아이스하키, 노르딕 스키와 같이 의지 착용이 불가피한 종목에 관여하고 있어요. 선수의 신체 일부나 다름없는 의지를 관리하는 건 빼놓을 수 없는 일이죠.”

장비는 크게 일상생활용 의족과 체력단련용 의족, 경기용 의족으로 구분된다. 대표적으로 스노보드 선수가 사용하는 프로카브(procarve)는 운동을 할 때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근육 역할을 재현한 의족이다. 송창호 의지기사는 패럴림픽 선수에게 장비의 가치를 ‘성능 좋은 전동휠’에 빗댔다. 스포츠 장비 기술은 이미 상당히 발전했고, 선수가 그 제품의 기능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좋은 경기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3년 전 우연히 마주한 스노보드 팀의 장비는 굉장히 열악한 수준이었다. 일상생활용 의족으로만 체력단련과 경기를 모두 하고 있었다. 가격 부담 때문에 질 좋은 의지 구매를 포기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들었다. 당시 박동현 대표가 상황을 파악하고 대한장애인체육회를 통해 스포츠 의지와 휠체어가 필요한 선수들에게 장비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보행용 의지만 제작하던 송 기사가 장애인 선수를 위한 장비를 만들게 된 계기였다. 

선수 경기력 향상될 때 가장 벅차

“자동차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시트가 불편하면 운전이 어렵잖아요. 또 F1 경기에서 자동차의 타이어가 터지면 아무것도 못하죠. 마찬가지입니다. 장비가 망가지면 선수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돼요. 선수들이 최소한 장비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게 저희 임무입니다. 장비 중에서도 절단 환부를 직접 감싸는 부분을 ‘소켓’이라고 하는데, 선수의 환부 상태가 제각각이라 맞춤형으로 제작해야 돼요. 석고붕대를 이용해 환부를 직접 본뜨는 ‘취형’부터 미세 수정 이후 그대로 복사하는 ‘파이널 소켓’ 작업까지 크게 다섯 단계를 거쳐 평균 1~2주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의지기사로 활동한 지 약 9년. 송 기사는 국제 스포츠 대회 현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나라에서 개선돼야 할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의 기술력으로만 따지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볼 수 있지만, 장애인 관리 측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게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패럴림픽 선수를 향한 자신의 시각을 분명히 했다. 당연히 측은함을 느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닌,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다. 그는 “패럴림픽 현장에서만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짜릿함이 있다”며 “여타 올림픽 대회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지만 올림픽 못지않은 열정으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송 기사는 자신이 제작한 의지를 착용한 채 훈련하는 선수들을 보면 뿌듯하다. 실제로 선수의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확인되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정이 벅차다. 

“주어진 일의 크기와 관계없이 충실히 했을 때 얻는 가치를 알게 됐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저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에 더욱 열심히 하려 합니다. 절단 장애를 가진 선수들은 물론 묵묵히 선수를 돕고 있는 의지기사들도 응원해주세요.”

오토복코리아는 평창패럴림픽 기간 동안 선수촌에 리페어센터를 마련하고 의지 제작과 수리를 맡았다.

▶ 오토복코리아는 평창패럴림픽 기간 동안 선수촌에 리페어센터를 마련하고 의지 제작과 수리를 맡았다. ⓒC영상미디어


아지토스를 아시나요?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가 주관하는 패럴림픽(Paralympic)은 하반신마비를 뜻하는 ‘paraplegia’와 ‘올림픽(Olympic)’을 합쳐 만든 말이다. 이후 IPC는 ‘para’를 그리스어 ‘함께, 나란히’라는 뜻으로 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경기’, ‘올림픽과 나란히 열리는 장애인 올림픽 대회’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했다.

패럴림픽은 1948년 영국의 스토크 맨더빌 국립병원에서 열린 ‘스토크 맨더빌 게임’에서 시작됐다. 당시 이 병원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척수 손상을 입은 상이군인을 위한 재활센터가 있었다. 병원장인 루드윅 구트만 박사는 환자들의 재활을 위한 방법을 궁리하다가 스포츠가 재활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양궁 대회를 열었다. 영국의 작은 병원에서 시작된 양궁 대회는 1952년 네덜란드 등 유럽의 여러 나라가 참석하면서 대회 규모가 커졌다. 이후 1960년 로마 하계올림픽 때부터 참전용사가 아닌 장애인 선수까지 참가하면서 하계패럴림픽이 시작됐다. 동계패럴림픽은 1976년 스웨덴 외른셸스비크에서 처음 열렸다.

성화는 올림픽의 시초가 된 그리스 아테네에서 채화해 올림픽이 열리는 장소로 가져온다. 패럴림픽의 성화는 영국 스토크 맨더빌이 모태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채화해 패럴림픽 개최국으로 이송된다.

패럴림픽 역사에 1988 서울패럴림픽을 빼놓을 수 없다. 서울패럴림픽은 올림픽과 동일한 도시에서 패럴림픽을 동시에 개최한다는 관례의 시작을 이뤘고, 올림픽과 동일한 시설 사용, 전용 선수촌 제공, 황연대 성취상 시상 등 패럴림픽 운영의 기준이 마련된 대회였다.

오륜기가 올림픽을 상징하듯 패럴림픽의 상징은 ‘아지토스(Agitos)’다. 패럴림픽을 상징하는 엠블럼도 서울패럴림픽에서 사용한 오색 태극 엠블럼이 시초다. 1989년 IPC가 서울패럴림픽에서 사용했던 엠블럼을 공식 엠블럼으로 채택했다. 이후 엠블럼 모양이 조금씩 달라졌다가 지금의 아지토스(평창 엠블럼 아래 부분)의 형태를 갖췄다. 

아지토스는 라틴어로 ‘나를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는 신체적 한계에 굴하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전 세계 장애인 스포츠인을 상징한다. 아지토스는 선수들의 화합을 상징하는 빨강, 파랑, 초록을 사용한다.

이번 평창패럴림픽 엠블럼은 한글 단어 ‘평창’의 ‘ㅊ’ 모양을 나란히 배치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선수와 관중이 함께한다는 의미를 표현했다. 평창패럴림픽 엠블럼은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을 사용해 한국 전통의 색감을 살렸다. 이 다섯 가지 색은 인종과 지역, 장애를 뛰어넘는 평화와 희망을 상징한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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