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일 저녁 창덕궁 돈화문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건물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근황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책 이야기로 귀결된다. 돈을 내고 독서하겠다는 사람들, 독서 모임 회사 트레바리의 회원들이다. 독서 모임 회사라는 지칭이 조금 어색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독서 모임을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명백한 기업이다.
트레바리는 순우리말로, 매사에 반대하고 트집 잡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뜻한다.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만 이해했다면 아쉽다. 다수가 지구는 평평하다고 해도 둥글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합하겠다. 그래야 트레바리가 지향하는 비전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독서 모임은 많다. 하지만 트레바리는 최대 20여만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활동할 수 있는 유료 독서 모임이다. 돈을 냈다 해도 독후감을 쓰지 않았다면 모임 참가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모임에 가기 위해 돈을 쓰겠다는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번 시즌(2018년 1월~4월) 활동자 수는 2000명을 넘겼다. 2016년 회원 80명으로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빠른 성장세다. 오프라인 독서 모임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싶은 독서가 또는 그곳에서 비롯된 경험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 재공유하고 싶은 독서가들이 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2년째 트레바리로 활동 중인 손진규 씨는 과거 참여했던 독서 모임과 트레바리의 차이점으로 ‘깊이감’을 들었다.
“양서(良書)는 일주일로 독서를 끝내기에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그런 점에서 트레바리는 한 달간 제대로 읽고 완전한 독후감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게 강점이에요.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깊고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갈 수 있거든요. 혹자는 독서 모임에 그 정도 비용을 지불하는 게 비싸다고 할 수 있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내 생활 그리고 나의 평생 독서 습관을 만들어줄 수 있는 시간이에요. 또 함께하는 사람들도 소중하죠. 금전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 ⓒC영상미디어
트레바리의 인기 요소를 하나 더 꼽자면 각 독서 모임(클럽)을 이끄는 ‘클럽장’이라고 할 수 있다. 150개가 넘는 트레바리 클럽은 인문, 사회, 취미, 실용까지 웬만한 서점의 섹션을 망라할 정도다. 클럽장은 이들 분야의 전문가로 회원들의 멘토인 셈이다. 클럽장 중에는 김상헌 네이버 전 대표,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등 소위 말하는 저명인사도 상당하다. 모든 클럽에 클럽장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클럽장이 없는 클럽이 훨씬 많은데 이 경우에도 모임 진행을 돕는 ‘파트너’ 개념은 있다.
독서와 독서 모임의 가치 달라
“독서는 개인적 경험이고 독서 모임은 사회적 경험이에요. 독서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면 독서 모임에서는 ‘혼자라면 읽지 않았을 책’을 읽을 확률이 더 높죠. 독서 모임을 통해 이전에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타인의 생각이나 자신의 무관심 영역에 대해 깨닫게 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어요.”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가 언급한 ‘사회적 경험’은 독서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압구정 아지트와 안국 아지트, 이름부터 트레바리 회원만 이용할 수 있다는 소속감을 풍긴다. 방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의자와 책상이 놓여 있고 분위기를 더해줄 그림 액자가 걸려 있다. 대놓고 ‘독서’, ‘책’이라는 요소를 드러내는 대신 액자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이미지가 트레바리의 성격을 보여준다. 트레바리는 결코 독서만 하는 곳은 아니다. 책을 기반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하는 커뮤니티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크루(트레바리 운영진)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각양각색 이벤트, 이를테면 북 콘서트나 위스키 시음회 등은 트레바리가 주는 또 다른 사회적 경험이다.
“‘읽기’와 ‘읽고 쓰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친해지는 패키지’의 시너지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요리에 비유하자면 읽기는 생각의 재료를 냉장고에 쌓는 것이며 쓰기는 그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거예요. 그렇다면 대화하기는 만든 요리를 먹어보는 거겠죠? 누구든 냉장고에 넣어둔 재료가 아무리 많아도 사용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상하게 돼 있어요. 요리하고 소화하는 과정이 없다면 그 재료의 가치는 작아진다고 봐요.”
▶ 트레바리 크루들로 구성된 ‘크루크루’의 북클럽 모습 ⓒ트레바리
많은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나름의 대처법도 있다. 모임 참여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은 ‘독후감 쓰기’라는 것. 마감 시간과 분량 모두 엄중히 지켜져야 한다. 친목 형성 과정에서 비롯되는 여러 문제가 있겠으나 특히, 친목에만 무게를 싣는 탓에 독서 모임의 본질이 흐려질 경우를 막기 위한 일종의 장치다. ‘어떤 방식으로 규칙을 세워야 구성원들이 더 자연스럽게 지적으로 성장하고 의미 있는 우정을 쌓을 수 있을까’라는 크루들의 고민이 묻어난다.
“트레바리가 잘될수록 세상이 좋아질 거라고 굳게 믿어요. 트레바리가 잘되는 건 더 많은 사람이 독서 모임을 한다는 것인데, 독서 모임은 여러모로 현대인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활동이니까요. 트레바리는 마음 부자가 되고 더불어 세상은 좋아지는 이러한 교집합이 짜릿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면서 윤 대표는 덧붙였다.
“트레바리는 조금 더 지적이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 싶은 회사예요. 그 수단이 독서 모임이 되길 바라는 거지요.”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