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연·김도희 씨는 3대째 이불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경기 성남에서는 제법 알려진 터줏대감 격 업체다. 1970년 김 씨의 외할머니가 문을 연 ‘오복상회’는 30년 후 어머니 고백연 씨가 물려받아 ‘중앙이불커텐’으로 맥을 이었다. 2013년 딸 김도희 씨가 어머니와 자신의 이름을 따 재탄생한 게 지금의 ‘연희데코’다.
ⓒC영상미디어
“처음부터 가업을 이을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가니 대다수가 대기업이나 공무원을 준비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던 미래도, 적성도 아니었어요. 틈틈이 어머니를 도와 드리면서 어머니 일하시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어요.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 장인정신을 느끼면서 저의 미래를 발견한 것 같아요.”
김 씨에게 할머니·어머니의 가게는 놀이터와 같았다. 늘 단추를 만졌고 원단 속에서 놀았다. 우연히 시장상인회로부터 상인대학에 가볼 것을 권유받았고 이것이 터닝 포인트가 됐다. ‘가업을 잇자!’
딸의 결심을 듣고 어머니 고 씨는 20년 전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꽁꽁 언 손을 불어가며 이불을 꿰매어 힘들게 고 씨를 대학에 보냈던 것이다. 10년간 일하던 간호사를 그만두고 이불가게를 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고 씨를 믿어줬다. 당시 고 씨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마음이, 지금의 도희 씨를 바라보는 고 씨의 마음과 같았을까.
고 씨의 남편은 딸을 말렸다. 이 세상일이 쉬운 게 있겠냐마는 오랜 기간 장모님과 아내의 고생을 옆에서 봐온 남편은 딸이 조금은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길 바랐다. 그러나 고 씨는 딸의 마음을 백번 이해했다. 이번에는 본인이 딸을 믿어줄 차례였다. 외할머니가 시작한 이불가게는 어머니 고 씨를 거쳐 디자인이 다양화됐다. 단골도 꾸준히 늘었다. 딸 김 씨는 온라인으로 시장을 확대했다. 어머니가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이불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3대에 걸쳐 이어져오는 철학은 확고하다. 고객맞춤이다. 어머니 고 씨는 “고객의 요청으로 세 번이나 고쳐주는 딸을 봤어요. 제가 어머니께 배운 걸 딸이 그대로 하고 있더라고요. 한두 번 이윤을 남기기보다 고객과 신뢰를 쌓는 게 더 중요하단 걸 안 거죠. 또 일에서만큼은 항상 절 존중하더라고요”라며 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연희데코는 블로그를 통해 입소문이 퍼졌다. 대표 상품은 ‘아기 범퍼’다. 아기 침대 사방에 쿠션을 둘러 충격을 완화하고 낙상사고를 막을 수 있는 제품이다. 물론 시중에 아기 범퍼는 많다. 연희데코는 여기에도 고객맞춤을 반영했다. 방의 규모, 다둥이 자녀, 다양한 색깔 등에 맞춰 범퍼를 제작했다. 각기 다른 생활 방식, 개성 강한 현대인의 취향이 반영돼 고객의 니즈를 충족한 것이다.
어머니 고 씨는 모녀만의 색을 창출해 브랜드화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 유행을 좇기보다 연희데코만의 개성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연희데코의 색은 손님과 함께 만들어갈 계획이다. 손님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공간을 통해서다. 누구나 놀러와 이야기도 나누고 비치돼 있는 짜투리 천을 이용해 재봉틀로 손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모녀는 이를 바탕으로 연희데코를 백년기업으로 키워갈 계획이다. 지금은 새 단장에 들어간 성남중앙시장 인근에 점포를 꾸리고 있지만 2019년 공사가 끝나면 다시 중앙시장의 이불가게 모녀로 돌아갈 예정이다. 점포 한구석에 가보처럼 간직하고 있는 ‘오복상회’ 시절 할머니가 쓰던 재봉틀과 가위를 가지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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