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뜨거운 겨울을 보낸 이들이 있다. 장애에 굴복하지 않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패럴림픽 선수들이다. 경기장에 서기까지 한순간, 한순간 드라마보다 더한 감동을 그려낸 선수들. 이제 그 하이라이트가 평창에서 펼쳐진다.
평창동계패럴림픽은 6개 종목에서 80개의 금메달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한국은 종합 순위 10위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한 번도 거두지 못한 금메달을 향해 선수들은 전력 질주한다.
한국 노르딕 스키의 새 역사 신의현

▶ 2017년 3월 11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바이애슬론센터에서 열린 2017 세계장애인노르딕스키월드컵 크로스컨트리 스키 롱 좌식 종목에 출전한 신의현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뉴시스
평창동계패럴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안겨줄 강력한 후보는 노르딕 스키의 신의현(38)이다. 육군 수도군단 특공연대에서 군 복무를 마친 신의현은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그는 사고에 굴복하지 않았다. 휠체어농구를 시작하며 삶에 대한 의지를 다시 찾았고 나아가 장애인 아이스하키, 핸드사이클 선수로 활약했다. 늦깎이 신예 신의현은 세계 정상급 선수로 한국 민간인 최초의 장애인 실업팀 창성건설 소속이 됐다.
그가 처음 노르딕 스키를 접한 것은 2015년. 노르딕 스키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3관왕에 등극했고 리비브 월드컵에서 비장애인을 통틀어 우승을 차지했다. 또 알펜시아바이애슬론센터에서 열린 2017 세계장애인노르딕스키월드컵대회에서는 금·은·동 메달을 모두 획득하는 진기록을 만들었다. 2017 캐나다 캔모어세계장애인노르딕스키월드컵에서 당당히 은메달 1개와 동메달 2개를 차지했다. 신의현은 세계 정상급 선수로 두각을 나타내며 한국 노르딕 스키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고 있다.
노르딕 스키는 눈 덮인 언덕과 평지를 스키로 달리는 크로스컨트리와 주행 도중 과녁을 맞히고 다시 달리는 바이애슬론 두 종목으로 나뉜다. 신의현은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 두 종목 모두 출전한다. 그의 주 종목인 크로스컨트리 15km에서 금빛 쾌감을 안겨줄지 기대해볼 만하다.
16년 전 감동, 평창에서 재현할 한상민

▶ 2016년 3월 10일 용평 IPC 알파인스키아시안컵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상민이 슬로프를 역주하고 있다. ⓒ뉴시스
한상민(39)은 한국 알파인 좌식스키 간판스타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동계패럴림픽에서 한국에 동계올림픽 첫 메달을 안겨준 주인공이다. 이전까지 국제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상황에서 전한 깜짝 메달이었다.
기쁨은 잠시 중단됐다.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는 결승선 앞에서 넘어졌고 2010년 밴쿠버 대회를 앞두고 어깨 부상으로 실력 발휘를 다하지 못했다. 설상가상 많은 비가 내려 대회는 엉망이 됐다. 이 대회는 참가선수 51명 중 11명이 넘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상민은 이번 올림픽에서 모든 아쉬움을 말끔히 씻어낼 생각이다. 16년 전 감동을 다시 한 번 전하기 위해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스위스, 프랑스 등에서 열리는 각종 대회에 출전,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다. 정선 알파인경기장에 애국가가 울려퍼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 2017년 2월 9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제14회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알파인스키 여자 회전 시각 종목에 출전한 양재림(왼쪽)과 고운소리 가이드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시각장애 스키 선수 양재림(29)은 평창의 기대주다. 미숙아 망막병증으로 3급 시각장애인이 될 양재림 곁에는 가이드 러너 고운소리(23)가 함께한다. 고운소리는 비장애인 스키 선수 출신 가이드 러너다. 시각장애 선수보다 먼저 출발해 무선 헤드셋으로 코스 상황을 알려주며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고운소리의 음성이 눈이 되어 양재림은 눈 위를 거침없이 질주할 수 있다.
알파인스키는 회전, 활강, 대회전, 슈퍼대회전, 복합, 혼성 등의 종목으로 나뉘며 각각 입식, 좌식, 시각장애 세 가지 영역으로 분류된다. 양재림·고운소리 콤비는 5개 종목에 출사표를 던졌다.
2014년 소치동계패럴림픽 알파인스키 회전 종목에 참가해 4위를 기록한 양재림은 아쉽게 메달을 양보했지만 이번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다. 한 몸처럼 움직이며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는 두 선수의 경기를 기대해봄 직하다.
아이스하키는 동계패럴림픽에서 가장 격렬한 종목이다. 그 가운데 정승환(32)은 단연 돋보인다. 167cm의 작은 체구에 독보적인 스피드로 퍽을 요리조리 몰고 다니며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빙상장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는 정승환은 넘어져도 누구보다 빨리 일어난다. 그런 모습에 ‘빙판 위의 메시’, ‘로켓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몸이 왜소해 몸싸움에서는 밀려 남들보다 한 발 먼저 움직여야 한다”면서 “넘어지면 먼저 일어나 더 빨리 더 많이 뛰다 보니 가장 빠른 선수라고 불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2006년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한 그는 2009년, 2012년, 201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 차례나 최우수공격수(MVP)로 선정됐을 만큼 이미 세계적 선수다. 2014년 소치동계패럴림픽 때는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가 선정한 ‘주목할 스타 20인’에 이름을 올렸다.
아이스하키는 메달 진입 가능성이 높은 종목이다. 2017년 세계장애인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차지하며 평창 출전 티켓을 확보했다. 정승환은 아이스하키의 강호인 캐나다, 미국 등을 꺾기 위해 한민수(48)·이종경(45)과 삼각대형을 이뤄 치열한 공격을 선보일 전망이다.
‘팀킴’ 열기가 휠체어컬링 드림팀으로
“영미! 영미!”를 외치며 우리나라에 컬링 열풍을 안겨준 ‘컬스데이’ 국가대표팀이 값진 은메달을 차지했다. 단 첫 출전에서 기적의 은메달을 선사한 모습이 데자뷰를 연상케 한다.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대회에서 휠체어컬링 대표팀의 상황과 닮았기 때문이다. 당시 대회에서 휠체어컬링 팀은 미국에 역전승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했다. 캐나다와의 결승 무대에서 접전 끝에 8 대 7로 아쉽게 패하며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 2017년 12월 7일 열린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미디어데이에서 차재관, 정승원, 방민자, 서순석, 이동하(왼쪽부터)가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뉴시스
연습장을 구하지 못해 수영장 물을 얼려 아이스매트를 깔고 연습했다는 휠체어컬링 팀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으로 대회를 향한 열정을 보여줬다. 스킵 서순석(47), 리드 방민자(56), 세컨드 차재관(46), 서드 이동하(45)·정승원(60)으로 구성된 휠체어컬링 팀은 또 한 번의 메달 사냥에 나선다. 스킵 서순석이 소치에 이어 두 번째로 출전해 팀을 이끈다. 홍일점인 리드 방민자는 국가대표팀 김영미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휠체어컬링은 반드시 1명 이상의 여성 선수가 팀에 포함돼야 한다.
휠체어컬링 팀은 2017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맛봤다. 경기가 진행되는 약 2시간 30분 동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것이다. 강력한 체력 트레이닝에 기술까지 보완하며 경기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팀킴’을 향한 응원 열기가 휠체어컬링 드림팀으로 이어질 것이다.
평창동계패럴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노보드에서는 박항승(31)을 주목해보자. 네 살 때 사고로 오른팔과 다리를 잃은 그는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스노보드를 생각해본 적도 없던 그가 처음 스노보드를 타게 된 건 2012년 아내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스노보드는 양다리로 지탱하며 균형 감각이 중요한 스포츠다. 박항승은 한쪽 다리로 중심을 잡다 보니 넘어지기 일쑤였지만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렇게 스노보드를 즐기게 된 그는 국내 최초 장애인 스노보드 선수팀을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합류했다. 의족과 맞붙는 살이 짓물러 고름을 닦는 게 일상이 됐지만 그는 스노보드를 놓지 않았다.
2017년 9월 장애인 스노보드 월드컵에서 4위를 기록한 박항승. 스노보드에 도전하던 그날처럼 동계패럴림픽 정식 종목에 처음으로 도전하는 그가 평창에 섰다.
장애인 스노보더의 표본 비비안 멘텔 스피

▶ 1 2014년 3월 14일 비비안 멘텔 스피(가운데)가 소치동계패럴림픽 여자 스노보드 크로스스탠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연합
2 2012년 12월 8일 열린 세계아이스슬레지하키대회에서 미국과 경기를 펼치고 있는 캐나다의 아담 딕슨(왼쪽) ⓒ연합
네덜란드의 비비안 멘텔 스피(46)는 2014년 소치동계패럴림픽에서 시범 종목으로 열린 스노보드 크로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소치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돼 ‘황연대 성취상’을 수상한 그는 평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노보드의 강력한 우승 후보다.
비비안은 비장애인 하이파이프와 크로스에서 네덜란드 챔피언을 여섯 번이나 기록한 선수였지만 암으로 인해 오른쪽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수술 후에도 스노보드를 포기하지 않았고 4개월 만에 장애인 스노보드 정상에 섰다. 그는 스노보드 종목의 표본이 됐으며 2002년 장애인 스노보더가 된 후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전성기를 유지하고 있다.
캐나다는 휠체어컬링 ‘강호’ 국가다. 휠체어컬링이 패럴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2006년 토리노부터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까지 3회 연속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 마크 아이드슨(39)은 캐나다 팀의 리드를 맡으며 소치동계패럴림픽을 금메달로 이끌었다.
마크는 사고가 있기 전 헬리콥터 파일럿이었다. 그의 헬리콥터가 추락하며 다리, 골반, 흉골, 척수 등에 손상을 입었다.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스켈레톤 선수 존 몽고메리가 “캐나다를 대표해 세계무대에서 뛸 수 있다”는 인터뷰를 보고 자극을 받아 오히려 자신에게 맞는 스포츠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휠체어컬링 덕분에 마크는 캐나다를 대표해 세계무대 정상을 누비고 있다.
“위험 없는 즐거움은 없다(No risk, no fun)”는 스포츠 신념을 갖고 있는 독일의 안자 위커(27)는 그의 신념만큼 노르딕 스키에서 거침없는 질주를 하고 있다. 201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를 획득했고, 2014년 소치동계패럴림픽에서도 이미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따냈다. 많은 스포츠를 해봤지만 어느 스포츠보다 인내와 도전을 필요로 하는 크로스컨트리 스키가 가장 좋다고 말하는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캐나다 아이스하키 골문을 두드리기 위해서는 아담 딕슨(29)을 거쳐야 한다. 2006-2007시즌에 캐나다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그는 2017 장애인아이스하키챔피언십에서 골 4개와 어시스트 14개를 기록하며 캐나다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열 살에 오른쪽 다리 골암을 진단받은 아담 딕슨은 어린 나이에도 하키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그러나 게임 도중 멈추는 게 쉽지 않자, 딕슨에게 가족과 친구들은 수비를 권했다. 그는 결국 최고의 수비수로 발전했고, 빙판 위에서 강렬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스하키 결승전은 폐회식을 앞두고 벌어지는 마지막 경기다. 3월 18일 강릉하키센터에서 메달의 주인공은 누가 될지 관심을 갖고 직접 확인해보자.
선수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