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값진 유·무형 유산을 남겼다. 열악했던 강원도 교통망이 개선됐고 글로벌 스포츠 대회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경험은 개최 지역의 도약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나아가 ‘역대 동계올림픽 가운데 가장 콤팩트하다’고 평가받은 경기장은 대한민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이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경기장 시설과 운영 경험을 사후 활용할 수 있는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강원도는 평창올림픽을 전후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중에서도 이곳에 구축된 교통 기반 시설이 가장 눈에 띄는 유형 유산이다. 올림픽 유치 이후 강원도에는 1000㎞가 넘는 새로운 길이 뚫리거나 확장 및 포장됐다. 결과적으로 강원도는 수도권과의 높은 접근성으로 명실공히 수도권 시대로 진입하게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2017년 12월 개통된 서울-강릉 KTX는 강원도를 당일에 오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서울-강릉 KTX는 서울과 강릉 간 이동시간을 승용차 대비 1~2시간으로 단축하면서 대회 기간 주요 교통편으로 활용됐다. 이동 소요시간의 불확실성을 줄여 방문객 유입을 늘리는 효과도 거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대회 결산 기자회견에서 “KTX는 이번 올림픽의 가장 훌륭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기장을 비롯한 대회 시설 또한 평창올림픽이 남긴 주요 유형 유산이다. 뛰어난 공법과 기술로 경제올림픽 실현에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최첨단 제빙시설로 최상의 빙질을 유지했고 강릉 아이스아레나는 피겨스케이팅과 쇼트트랙 경기를 병행할 수 있는 제빙 시스템을 갖췄다. 정부는 올림픽에 사용된 12개 경기장 가운데 정선 알파인경기장,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강릉 하키센터를 제외한 나머지는 일반 국민이 활용할 수 있는 생활체육시설과 선수 훈련장 및 경기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강원도는 애초 일부 시설의 매각이나 해체 등의 계획을 세웠으나 수정 및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남북 스포츠 교류 확대와 2021년 동계아시안게임 남북 공동 개최 추진 등을 위해서는 시설 유지 가치가 높아졌다는 판단에서다. 개·폐회식장으로 쓰였던 올림픽 플라자는 관람석 3만 5000개와 가설 건축물을 모두 철거한 뒤 올림픽 역사기념관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 평창올림픽 참석을 위해 방문한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강원 지역 동계스포츠 인프라를 기반으로 동계관광 활성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연합
평창올림픽 연계 관광상품 발굴도
평창군은 모든 올림픽 과정을 기록유산으로 만들어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세 차례 도전 끝에 성공한 유치 신청 단계부터 개최까지 전 과정을 백서로 제작한다. 유치 이후 대회 준비 과정과 대회 모습은 영상기록물, 도서기록물로 구분해 정리하는 올림픽 기록유산 사업도 추진한다. 평창군 관계자는 “평창을 넘어 대한민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향후 메가 이벤트 개최 때 운영지침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지속 가능한 올림픽 관광 유산을 창출하기 위한 사후관리 4대 핵심과제 ‘P(Place)·O(Olympic)·S(Season)·T(Transport) 올림픽’을 발표했다. 우선 올림픽경기장과 용평리조트, 휘닉스파크, 하이원리조트 등 강원 지역 동계스포츠 인프라를 기반으로 동계 관광 활성화를 적극 추진한다. 경기장을 활용한 동계관광상품을 개발하고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을 대비해 동계스포츠대회 유치와 전지훈련 장소 활용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계획이다.
올림픽 브랜드를 활용한 대형 마이스(MICE) 행사도 유치한다. 2018 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PATA) 연차총회를 5월 강릉에서 개최하고, 2021년 국제시민스포츠연맹 올림피아드 총회의 평창 유치를 추진한다. 대회 기간 구성된 올림픽 스토리와 올림픽 스타를 바탕으로 한 고부가 관광상품 발굴에도 힘쓴다.
아울러 강원 지역의 계절을 소재로 활용한 ‘강원관광 4계절 콘텐츠’를 제작하고 봄·가을 여행주간을 활용해 올림픽 개최지로의 국내 여행 참여를 유도한다. 이와 함께 말레이시아 MATTA, 일본 투어리즘 엑스포 등 아시아 지역 5개국 10개 대형 관광박람회에 참가해 포스트 올림픽 홍보를 이어간다. 이밖에도 양양공항·KTX를 활용한 강원관광상품을 개발하고 평창코레일패스를 계속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한편 유관기관과의 협업을 통한 안내·교통체계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할 계획이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더욱 주목할 점은 선수와 관중 모두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대회 자체에 의미를 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선수들은 메달 색깔에 얽매이지 않았고 오히려 올림픽을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대로 삼았다. 대표적으로 쇼트트랙 선수 김아랑은 여자 1500m 결승에서 4위에 그쳤지만 “결과는 아쉽지만 만족할 만한 경기를 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이상화는 500m 결승전 이후 “은메달을 딴 게 아니라 은메달이 12년을 기다려 나를 차지한 것 같다”는 담담한 소감을 밝혀 호응을 얻었다.
베테랑 선수와 새롭게 등장한 신예선수들이 어우러져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보여준 가운데 몇몇 선수들은 특유의 발랄함, 선배 선수 못지않은 의젓함으로 눈길을 끌었다. 피겨 선수 민유라는 강릉선수촌 입촌식에서 ‘쾌지나 칭칭나네’에 맞춰 춤을 추거나 직접 준비한 오륜 안경을 쓰고 동료들의 경기를 응원해 흥이 넘친다는 뜻의 ‘흥유라’로 불렸다. 피겨 아이스댄스 쇼트댄스 경기 도중 유니폼 상의 끈이 풀어졌을 때는 “개인전에서는 바느질을 잘해서 오겠다”고 소위 ‘쿨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남자 빙속 대표팀 막내 정재원이 매스스타트 결선에서 보여준 의젓함도 빛났다. 매스스타트는 종목 특성상 협력과 희생이 중요한데 정재원은 이승훈이 체력을 비축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냈다. 경기를 마친 그는 “형이 치고 나가는 걸 보면서 ‘아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났구나’했다”고 회상했다.
관중들의 태도도 분명히 변화했다. 과거 성적에 치중하던 모습과 달리 선수들이 올림픽을 위해 흘렸을 땀과 눈물에 찬사를 보냈다. 유승민 IOC 위원은 “관중과 미디어 의식이 예전보다 많이 발전했다”며 “금메달을 따지 못해도 선수들이 노력한 과정과 투혼을 더욱 값지게 생각하는 것을 보며 제 현역 시절보다 성숙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