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북정상회담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부는 고위급 실무단을 꾸려 정상회담 준비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의제가 다뤄지겠지만 역시 한반도 비핵화, 군사적 긴장완화를 포함한 항구적 평화정착, 그리고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 이 세 가지가 주요 의제가 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실천 방안들이 합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항구적 평화정착이라는 현 정부의 한반도정책 기조 아래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를 이루는 데 집중할 것이지만,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남북한 통일의 기초를 확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북미정상회담에 더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북미 간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맞교환이라는 빅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 회담의 결과에 따라 남북관계의 추후 경로도 결정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변화도 예상할 수 있다. 즉,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합의 내용에 따라 남북한 간의 교류 성격과 규모가 결정될 것이며, 이는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체적 내용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대화에 나오게 된 두 가지 이유
현재 미국은 북한 핵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게 폐기(CVID)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한동안 미국이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폐기로 합의에 다다를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미국은 북한 장거리미사일 개발 완료 시점을 레드라인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장거리미사일의 정상각도 시험발사로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미비한 기술이 보완된다면 미국은 북한의 장거리 핵미사일로 인한 본토 타격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미국의 우려는 북한의 핵미사일로 인한 미국 본토 위협이 동맹국들의 안보 불안감으로 이어져 미국의 확장 억지력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동맹체제의 견고함을 약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1960년대 샤를르 드 골 프랑스 대통령이 언급했던 “미국이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을까”라는 말처럼 동맹국들의 우려감이 북한 장거리핵미사일 개발 완성으로 인해 현실이 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즉, 북한의 장거리핵미사일 개발 완료는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안보 제공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이는 동맹국들 간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가져올 수 있다.
데니스 힐리 영국 국방장관은 1960년대 당시 소련을 억지하기 위해서는 5% 신뢰도의 확장억지력 제공만이 필요하지만, 유럽인들에게 안보를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95% 신뢰도의 확장억지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북한이 핵을 갖게 되고 더군다나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미사일까지 보유하게 될 경우, 한국과 일본이 갖는 안보 불안감과 미국의 확장억지력 제공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매우 클 것이며, 이는 결국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는 동맹에 기반을 둔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제거로 만족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은 북한 핵이 확산(proliferation)되어 테러단체들의 수중에 놓이는 것을 더욱 우려한다. 북한 핵미사일보다 미국에게 더욱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핵 동결로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과연 북한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있느냐이다. 북미 간 정상회담을 어떤 의도로 제안했을까? 북한이 대화에 나오게 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제재와 압박 속에서 김정은의 인식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병진노선은 핵무력 건설 완성을 통해 인민들의 경제수준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데, 강력한 제재로 이 같은 목적이 힘들어지고 있다.
서구사회를 경험한 김정은은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만들고 싶어 하며, 이를 위해 핵 폐기라는 정책적 방향성을 선택했을 수 있다. 그러나 신중론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서는 북미대화라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과 함께 김정은이 남북정상회담을 만들기 위해 전략적으로 북미대화를 성사시킨 게 아니냐는 것이다. 즉, 비핵화보다는 남북정상회담이 목표라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체제보장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 미국은 어떤 체제보장카드를 북한에게 안겨줘야 할까? 이미 미국은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지속적으로 이행하고,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지속적인 대북제재를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즉, 기존에 북한이 주장했던 체제보장카드는 미국이 수용하기 어렵다.
북한에 확실한 체제보장카드 제시해야
남아 있는 카드는 북미 간 관계 정상화이다. 북미수교를 이루고 평양과 워싱턴에 북미 양국의 대사관이 설치된다면 북한을 어느 정도는 안심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이 이 정도로 체제 안전을 보장받았다고 느낄까? 아닐 것이다.
2004년 6월 리비아 트리폴리에 미국 연락사무소가 설치됐으며, 2006년 미국은 리비아와의 완전 관계 정상화를 발표했다. 리비아와의 관계 정상화는 카다피 원수가 전격적으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함에 따라 이뤄졌다. 이 같은 결과는 미국이 1980년 리비아와의 국교를 단절하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주도하며 리비아에 대해 무기금수, 자산동결 등의 조치를 이어간 결과였다. 이후 카다피는 2003년 사담 후세인이 체포된 지 6일 만에 대량살상무기 개발 계획 포기를 전격적으로 밝혔고, 이후 2006년 미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됐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2011년 카다피의 장기집권과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대와의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했으며, 이에 유엔 안보리는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에 대한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다국적군은 공습에 나섰으며, 결국 카다피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북한에 대한 확실한 체제보장카드를 제시하는 것은 한반도 국면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북한 김정은이 자신의 체제보장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할 경우 완전한 비핵화는 힘들어질 것이며 이 경우 한반도에서는 또다시 긴장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는 작년 10월 대북군사옵션 검토를 지시했으며, 4월에 검토가 끝날 예정이다. 현 대화국면에서 군사옵션 사용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적어도 사용할 군사옵션이 준비되는 상태에 이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소위 ‘코피 터뜨리기(bloody nose)’ 전략은 제한적 선제타격을 통해 북한의 장거리핵미사일 개발을 막겠다는 것이며, 동시에 강력한 전략자산을 동원해 북한의 군사적 보복까지 억지하겠다는 것이었다.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대북 군사옵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를 위협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게 될 것이며, 한국 역시 북한의 남침에 노출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평창올림픽 폐막식 참석을 위해 방한한 제임스 리시 미 상원의원은 최근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MSC)에서 북한에 대한 제한적 선제타격 구상인 ‘코피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만약 미국이 북한을 공격한다면 이는 “문명사상 가장 재앙적 사건 중 하나가 될 것이나 매우 빨리 끝날 것”이라고 발언했다.
만일 김정은이 북미 간 수교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어떤 체제보장카드를 제시해야 할까? 만일 남북한 통일 방안이 제시되고 동시에 주한미군이 지속적으로 주둔하게 된다면 김정은은 자신의 체제를 보장받게 된다고 느낄 수 있을까? 김정은은 한반도 통일로 인해 미국의 공격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까? 이어 북한의 비핵화를 확실히 견인할 수 있을까?
미국은 향후 북미 간 대화에서 북한 비핵화에 매우 엄격하고 강경한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입장이다. 지속적으로 대북제재를 진행시킬 것이며,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미국의 대북정책은 과거보다 더 강경하게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한국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중요한 이유이다.
김현욱│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