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이수성난(創業易守成難)’이란 말이 있다. 중국 당나라 태종이 “나라를 세우는 것과 지키는 것, 어떤 게 더 어려운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신하 위징이 “천하를 얻고 나면 마음이 느슨해지고 교만해져 정사에 게을러지고 나라가 기울기 쉽다”고 답했다. 지키는 게 더 힘들다는 뜻이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하던 일을 지키는 게 더 어렵다. 부모는 맨손으로 시작해 차곡차곡 발전해나가며 경험을 쌓았다. 품질 관리, 고객과의 관계, 상황 대처 능력 등 모두가 경영 자산이다. 반면 자녀는 부모가 쌓아온 경험을 하루아침에 터득할 수 없다. 또 부모의 일을 답습해서도 안 된다. 부모의 전통을 계승하고 시대 흐름에 맞는 서비스와 시장 개척 등 혁신을 더해야 한다.
창업 이상의 사전 준비 필요
김선화 가족기업승계연구소장은 저서 <가업승계: 명문장수기업의 성공전략>에서 ‘가업승계에 실패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째, 환경과 기술, 시장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을 인지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으면서 기업이 생존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둘째, 과도한 상속세로 기업의 활력이 저하되거나 성장이 위축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16년 중견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견기업의 78.2%가 가업승계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상속·증여세 조세부담 72.2%, 복잡한 지분구조 8.8%, 엄격한 가업승계 요건 5.6%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셋째, 후계자의 준비 미흡으로 리더십이 발휘되지 않는다. 넷째, 가족 구성원 간의 관심사, 목표 등 이해관계가 충돌해 가족분쟁으로 이어진다. 다섯째, 세대 간 경영 철학·경영 방식의 차이로 갈등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업승계에도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창업 이상의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시장과 업종을 분석해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진입해야 한다. 기존 부모의 경영 방식에서 부족했던 점은 무엇인지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가업승계 과정에서 가족은 든든한 파트너이지만 아킬레스건이 되기도 한다. 특히 경영 철학이 다를 때는 꽤 난감하다. 세대 간 접근 방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평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가업승계아카데미 주임교수는 “모든 갈등이 그렇듯 한쪽이 맞춰주면 순탄하게 해결되지만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는 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이럴 때는 “부모가 하던 방식을 유지하되 자녀가 꾸준히 설득해나가며 새로운 방식을 접목하는 게 좋다”고 권한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은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가깝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막말을 뱉을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부모는 명령조로 말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불쾌한 언사를 삼가야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부모와 자녀가 수시로 업무 관련 상의를 하는 게 좋다. 쉽지만 지키기 어려운 일이다.
역할 분담도 필요하다. 저마다 영역을 나누어 책임감을 높이고 서로의 역할을 존중해야 한다. 직장에서는 동료 사이에 업무가 명확하게 나눠져 있지만 가족끼리는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한편 일에 무턱대고 뛰어들기보다 자기 점검 과정이 필요하다. 부모 세대가 갖고 있는 사업체를 쉽게 생각하거나 본인의 적성에 맞지 않는데 억지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김 교수는 “무조건 가업을 이어받기보다 본인의 적성에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사전에 교육을 받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부모가 성공했다고 자녀가 모두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경영의 특성상 위험도를 감수해야 하고 한번 진입하면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전통시장, 단골 확보된 안정적 환경
정부는 중소기업 등의 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해 세제 지원을 확대해왔다. 관련 세제 지원에는 ‘가업상속공제’, ‘증여세 과세특례’, ‘상속세 연부연납’, ‘중소기업주식 할증평가 배제’, ‘창업자금 과세특례’ 등의 제도가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기업승계지원센터는 가업승계 방향 설정, 유형 이해, 의사소통 매니지먼트, 해외 장수기업 성공전략 등을 교육하는 ‘차세대 CEO 스쿨’을 운영한다.
전통시장은 단골고객이 많이 확보된 안정적인 경영환경을 갖추고 있다. 임대료와 권리금이 저렴해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기도 하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전통시장에서 가업승계를 지원하고 있다. 2014년부터 ‘청년창업 및 가업승계 아카데미’ 과정을 운영하며 전통시장으로 진출하는 가업승계 청년을 돕는다. 일자리 창출과 전통시장 활력 제고를 동시에 꾀하는 것이다.
전통시장 내 창업 또는 부모의 가업을 물려받거나 받고 있는 가업승계자가 신청할 수 있다. 주요 교육 내용으로는 전통시장 지원정책, 창업과 가업승계의 장점, 사업계획 수립과 실천, 기업가 정신, 견학 등으로 구성되어 신세계그룹(이마트)이 교육을 지원한다. 우수 수료자는 해외연수와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등에 입점하는 ‘전통시장 우수상품페어’ 기회가 주어진다. 공단이 지원하는 전통시장 청년창업지원사업 및 전통시장 청년몰 입점신청자 선발 시 우대를 받으며 창업자금을 7000만 원까지 저리의 융자로 지원받을 수 있다.
지자체에서는 대표적으로 경기도가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과 ‘소상공인 가업승계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가업승계자 2·3세에게 경영 지식과 마인드를 전달함으로써 백년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인재로 육성하는 방안이다. 참가자격은 경기도 내 동일한 업종으로 3년 이상 사업을 영위한 소상공인 2·3세 가업승계자(희망자)면 된다.
수료자들은 200만 원 한도에서 국내외 특허·실용신안 등 지적재산권 취득, BI·CI 등 브랜드 개발, 홍보물(누리집·카탈로그) 제작 등 사업화를 위한 지원을 받게 된다. 또 장수기업을 직접 찾아가 벤치마킹에 필요한 노하우를 습득해볼 수 있는 ‘국내 장수기업 연수’ 기회도 주어진다.
문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1357
●중소기업중앙회 기업승계지원센터 02-2124-3145~7
주의! 가업승계에 실패하는 이유
1 환경과 기술, 시장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
2 과도한 상속세로 기업의 활력이 저하되거나 성장이 위축된다.
3 후계자의 준비 미흡으로 리더십이 발휘되지 않는다.
4 가족 구성원 간의 관심사, 목표 등 이해관계가 충돌해 가족분쟁으로 이어진다.
5 세대 간 경영철학·방식의 차이로 갈등이 발생한다.
선수현│위클리 공감 기자